평론 그런 거 아니고 어느 시청자의 자격지심 보고서
얼마 전 성황리에 종영된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안녕이란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무한도전을 떠나보냈던 나는 한 동안 상실감에 빠져, 시청을 전폐하며 하루하루를 심장 리스한 좀비처럼 헛헛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건조 오징어처럼 퍽퍽한 나의 일상에서 수분 폭탄 미스트에 입수한 촉촉한 한치 마냥 ‘하시’는 내게 다가와 설레는 봄을 만들어주었다.
처음 하트시그널을 알게 된 것은 여자 친구 덕분이었다. 내 여자 친구는 시즌1부터 하트시그널의 애청자였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볼 때 손쉽게 여주와 접신을 하듯, 내 여자친구도 자신을 하시의 여성 출연자들에게 빙의하여 현실과 방송의 경계가 모호한 유체이탈의 경지에서 하시를 시청했다.
사실 나도 여자 친구와 하트시그널 시즌1 몇 회를 같이 시청했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과거 ‘SBS 짝’의 아성에 도전하기엔 무언가 애송이의 향긋함이 느껴졌을 테다. 그런데 이번 시즌2는 사뭇 달랐다. 시즌1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포맷임에도 불구하고 시즌2의 출연진들 각각의 캐미가 군더더기 없이 잘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 출연자 중 한 명인 ‘현우’의 등장이 신의 한 수였다. 대한민국 등장 씬 HOT 100에 빛나는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이정재의 등장과 맞먹는 아우라를 뿜뿜하며 모든 여성 출연자들의 하트시그널을 5G마냥 증폭시키는 장면에서 시즌2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역시나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고백하자면 그건 나의 자격지심과 수년간의 사회생활로 찌든 현실감각 때문이었다.
하트시그널의 몰입 방해 요소들
1. 도대체 저 시그널 하우스는 몇 평이고 얼마일까?
저런 아름다운 곳이 나와 같은 서울 하늘에 존재했다니, 저기 집주인은 집 비워 놓고 어디 갔을까? 근데 솔직히 저런 곳에서 사람들이 한 달이나 같이 살면서 맨날 맛있는 거 해 먹고 데이트하면 군대 선후임끼리도 사랑의 불씨가 싹트겠다. 너무 비현실적이야… 어떻게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샐러드와 과일 주스를 갈아 마시지? 역시 아침 조에 뛸 깅인가? 일어나자마자 조깅하고 요가하는 사람들이 현세에 있었구나. 출근 안 하나?
2. 출연자들이 평범한 척하는 거 가식적으로 느껴져…
현주가 말했다. “나는 여기 시그널 하우스 와서 난생처음으로 이런 대접받아요” 아닐걸!!!! 그게 진실이라면 너는 여초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거나 여자만 있는 여인 섬에서 살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것도 아닐 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내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할 수 있다. 현주 같은 외모와 애교를 가진 여자는 숨만 쉬어도 남자들이 꼬인다. 반경 50m 내에 점심이나 술을 사줄 똥파리들이 적어도 3인 이상 항시 대기다. 물론 백번 양보해서 현주 본인만 남자들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치자, 그럼 더더욱 현주는 반성해야 한다. 그런 언사는 그동안 현주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남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다시 말해서, 현주가 남자들로부터 대접을 못 받았을 가능성은 14,000,605 분의 1도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하하의 세계관처럼 행동한다.
3. 출연자 선발 기준이 무엇일까?
현우 지인으로 나오는 빵 굽는 누나는 마리텔에 출연했던 유명 파티시에. 장미 지인으로 나온 언니는 유명 디자이너 박윤희. 심지어 송다은은 배우 지망생. 현주는 국민대 디자인과 취준생이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홍대가 더 유명한데 내가 나온 홍대에는 왜 현주가 없었을까?
짝짓기 리얼 버라이어티에 한 획을 그었던 SBS 짝은 오히려 이런 면에서 훨씬 현실적이었다. 출연자 10명 정도 중에 외모 담당 한둘, 직업 담당 한둘, 로맨티시스트 담당 한둘 이런 식으로 정규분포가 잘 이루어졌었는데, 하트시그널은 출연자 모두 외모면 외모 스펙이면 스펙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엄친아들이라서 모두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 파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강남에 럭셔리 라운지 클럽 같은 곳을 대여해서 한 것 멋 부리고 파티한다는 게 꼴랑 칵테일 한잔씩 먹고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눕는다. 장난치나.. 진짜 파티에서 어떻게 노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5. 자동차를 왜케 번갈아가면서 타?
자가용 빌려주고 돌려 타는 거 아니라고 했다. 현실에서는 저렇게 차 번갈아가면서 타면 다툴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트, 사이드, 룸미러 위치 조정부터 실내 청소했네 안 했네까지.
6. 솔직히 남일 가지고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윤종신: 국내 탑클라스 싱어송라이터이자 미스트 엔터의 대표.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
김이나: 국내 탑클라스 작사가. 올해의 작사가 5회 수상. 대표작, 아이유의 좋은 날 너랑 나 외 300여 곡
원: 얼굴 국내 탑클라스
그 외 훈남 정신과 의사, 소유, 이상민 등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패널들이 나와서 남의 연애 상황과 심리에 대해서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저 사람들 얼마나 바쁘고 할 일이 많을 텐데, 상관도 없는 사람들 연애에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참~ 프로페셔널하다는 생각에 경의를 표하게됐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야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저런다고는 해도 남들이 연애를 하던 상처를 받던 사실 나와는 1도 상관없는 일인데...하는 생각이 현우가 현주를 선택할 때 비로소 문뜩 들었다.
하트시그널2 최종 선택이 끝나고 출연자들의 SNS 계정에는 시청자들의 악플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워낙에 이슈가 되고 몰입도가 높은 예능이라서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프로그램도 연출된 예능일 뿐이다. 출연자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몰입된 연기를 한 것이고 현실로 나온 출연자들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닌가 싶다. 하트시그널을 보면서 능력 좋고 외모도 훌륭한 출연진들이 호화로운 집에서 생활하며 멋진 외제차를 타며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은 TV 속 세상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네버랜드에 과몰입해 현실감각의 벨런스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말은 우리 현실 인생이나 똑 바로 살자는 말이다.
그나저나 나는 규빈이가 보석이라고 생각한다 영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