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이번 시간에는 지난 주 수요일 연남장에서 발행한 비어스픽:Book 콘텐츠의 본편 리뷰를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혹시 오리엔테이션을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확인해 주세요.
<주의: 본 리뷰의 콘텐츠는 벌써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시점에 작성되었기 + 적지 않은 양의 고도수 맥주를 마시며 콘텐츠에 참여했기 때문에 알코올성 치매작용으로 인한 허언증이 다분이 예상되기 때문에 = 어떻게든 재미있었다고 우길 MSG가 다량 첨가 될 가능성이 크므로, 광어마냥 담백한 리뷰를 원하시는 분들은 구독을 금지하여 주셔도 좋지는 않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공지했듯이 비어스픽:Book은 한권의 책과 어울리는 맥주를 미리 선정하여 책과 맥주를 51:49의 비율로 절묘히 쉐킷쉐킷하는 그런 오프라인 맥주 콘텐츠입니다.
그 첫 번째 시간에는 마르셀에메의 단편 소설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제주맥주의 펠롱소녀 오정현님이 '픽'한 네 가지의 맥주를 페어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현님이 '픽'한 맥주는 네 가지입니다. 키순서대로
세인트버나트 앱12
포햘라의 루쟝
파운더스의 베럴러너 in 럼베럴
코로나도 브루어리의 22주년 기념 더블 IPA
음.. 우선 제일 낮은 도수가 8%... 제일 알콜도수 높은 맥주가 11.4%!! 이런 알코올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잠깐. 우리는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는 콘텐츠가 아니다. 책을 읽고와서 맥주를 마시는 콘텐츠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알콜 도수 때문에 독서에 '지장'이 있을 거란 생각은 부동산 계약할 때나 하면 되겠습니다.
아무튼 인생의 참맛처럼 고도수의 쓰디쓴 맥주를 러브러브하시는 제주맥주의 오정현님께서 '픽'한 맥주와 함께 본격적인 Book & Beer 페어링을 시작했습니다.
-생존시간 카드 줄거리-
개인의 생존시간이 사회에 기여하는 생산성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농부나, 의사와 같이 생산성이 좋은 사람은 한 달을 꽉 채워서 사는 반면, 예술가나 노인처럼 생산성이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한 달은 짧게는 1주일 정도에서 15일 많아야 20일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의 강압적인 결정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시간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 결국, 생존 시간을 거래하는 일이 발생하고 혼란을 겪는다. 제법 그럴 듯한 허구적 이야기가 우리는 모두 상대적인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날카로운 메세지가 담긴 소설이다.
<생각해보니, 브런치의 글 콘텐츠 특성상 줄거리를 모두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생존시간 카드편만 쓰기로 하겠습니다. 결코 줄거리를 쓰기 귀찮아서가 아님을 밝힙니다.>
구성원들이 맥주를 보는 펠롱펠롱(제주방언으로 반짝; 제주맥주의 신상 제품 PPL맞음 주의)하는 눈빛과 함께 코로나도의 더블 IPA를 나누어 따랐습니다.
우선, 정현님이 '생존시간 카드'와 코로나도 22주년 한정판 맥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딱 한정된 시간 동안만 판매하는 코로나도 22주년 맥주와 한정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생존시간 카드'가 가진 함의가 비슷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가볍게 웃어 넘기면 되는 줄 알았던 소재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그 안에 숨겨진 메세지를 곱씹어 보게 되었어요. 생존시간 카드를 읽고 한 동안 그 이야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하고 취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런면에서 8%라는 도수에 비해 쓴맛은 없고 시트러스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목넘김 덕분에 꼴딱꼴딱 마시다 보면, 어느새 맥주에 취해있는 모양새가 절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정현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성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도 22주년 한정판 맥주의 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맛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습니다. <비어스픽의 책 콘텐츠는 책이 우선이기 때문에 맥주의 맛을 표현하는데 힘을 쏟지 않습니다. 결코 귀찮아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모두들 수준 높은 더블 IPA의 맛에 흡족한 반응이었습니다. 맛평가 끝.
생존시간 카드는 더블IPA의 바디감처럼 묵직하고 묵근한 메세지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입안에 남는 홉의 잔향처럼 계속해서 그 안에 숨겨진 맛과 메세지를 곱씹어 보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
여러분들 지금 보다 더 짧은 시간의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시죠? 아마도 각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진실입니다.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시간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고첼's오늘의 명언 한 마디-
뽀햘라 맥주에 대해서 짧게 설명하자면, 뽀햘라는 에스토니아의 맥주다. 우리는 에스토니아가 어디냐는 의구심으로 누군가 운을 띄웠다.
"에스토니아 딱 들어보면 루마니아 쪽 아니겠어?"
"아~ 맞네 동유럽 쪽인가보다 헝가리~"
"풋 다들 틀렸다. 에스토니아는 핀란드 아랫쪽에 위치해 있습니다요~"
"아~ 맞네~ 어쩐지 디자인이 북유럽식이자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다 누군가 말한 북유럽식 패키징 디자인이라는 말에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그만큼 깔끔 담백하고 모던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에 우리모두 이케아를 떠올렸던 것이지요.
그도 그럴것이 루장의 병뚜껑은 왁스로 밀봉이 되어있는데다가 11.4도라는 고도수 이기 때문에 10년 뒤에 마셔도 품질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뽀햘라 맥주는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떡상 중인 크래프트 브루어리입니다. 한 병에 1만원~2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몸값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서 맛을 보는 방식에 아주 최적화 된 맥주랍니다.
그 중에서도 루장은 에스토니아어로 'Creator'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만드는 과정이 이 베럴 저 베럴 옮겨 다니며 숙성하면서 새로운 장르의 맥주를 만들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네이밍인 것 같습니다. 라고 고도수 베럴에이징 맥주 요정 정현님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정현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처럼 마르셀 에메의 상상력과 매칭이 잘 되는 맥주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세 번째 맥주는 파운더스 브루어리의 벨럴 러너입니다. 이 맥주와 페어링 된 소설의 소재는 한 걸음에 칠십리를 걷게 만들어 주는 부츠가 생긴 소년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걸음에 칠십리 약 28키로를 훌쩍 뛸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우리 멤버들 중 대다수는 출퇴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 출퇴근에 찌들어 있는 수도권 전사들이여..) 또 어떤 분은 도대체 왜 이 책의 번역은 28키로가 아니고 70'리'인가 하며, 거리의 단위에 집착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모임은 주제에서 70리 만큼 삼천포로 잘 빠짐을 반영했지요.
하지만 책의 주인공 아이는 허경영 급 축지법이 가능한 부츠를 가지고도 우리처럼 삶에 찌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피곤에 쩌든 어머니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 어머니가 잠에 들자, 지구 반대편에서 찬란한 아침햇살 다발을 가지고와 잠든 어머니의 머리 맡에 둡니다. (뚜시.. 갑자기 모니터가 흐려진다....)
이 장면에서 우리의 속세에 찌들어 버려 다크다크해진 정현님은 순간 뜨거운 부끄러움이 차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반성하고자, 소년 앙투안의 순수함을 닮고 싶은 마음에 해적맥주 베럴러너!!를 골랐다고 합니다....
정면에 해적 모양이 뙇! 하고 자리잡을 지언정 결코 맛은 화사한 맥주, 앙투안처럼 순수한 아가 양을 닮은 해적들이 즐겨 마셨다던 해적의 술 럼 베럴에 2차 숙성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원피스의 해적왕 루피 마냥 순수한 마음이 베어나오는 듯한 그런 맛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맥주입니다.
마지막 소설의 주제도 우리에게 진정한 '성인'의 덕목은 무엇인가를 되새김 시켜줄 주제였습니다. 영업팀 김부장 님과 견주어도 손색 없을 상꼰대 아빠를 둔 우리의 주인공 소년 뤼시앵, 아빠의 무식함을 감싸 주는 성숙한 마음씨의 초딩이라는 주제였습니다.
그런 뜻에서, 뤼시앵이 성인이 되었을 때, 정현님은 이 맥주를 뤼시앵에게 권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마음씨로 아빠의 부끄러움을 감싸느라 힘들었을 거라며 이 독한 술을 나누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 순수한 어린 아이에게 말이죠. (농담)
참고로 이 맥주는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는 맥주 즉,'트라피스트'맥주면서 가장 독한 정도인 네 배를 뜻하는 쿼드루펠 타입입니다.
정현님이 가장 성숙한 타입의 맥주를 선정한 이유는 이미 성숙하고 넓은 마음씨를 가진 초딩 뤼시앵이 '聖人, Saint, 이자 성인 Adult라는 이중적인 뜻이 담겨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깊은 뜻이! 아이폰과 이어팟 정도의 완벽한 페어링!!)
즐거웠던 첫 번째 비어스픽:BOOK 콘텐츠가 발행됐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예상했던대로 폭풍활강 애드립이 난무 했지요. 이것은 나쁜 듯이 아니라, 그 만큼 이 콘텐츠에 다들 몰입 되었다는 뜻입니다.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읽고 느꼈던 점들을 다채롭게 뽑아 냈습니다.
심지어 시간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은 상대성이론을 거쳐서 양자역학과 양자얽힘까지 파고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이런 주제의 수다에 우리 모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상대방의 의견을 오롯이 교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게 맛있는 맥주와 재미있는 책이 함께 했기 때문이겠죠?
2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