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세 번 태어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부모님으로부터
두 번째는 배우자로부터
세 번째는 자식으로부터.
나는 내일 두 번째 이유로 다시 한 번 태어나게 된다. 살면서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올것이라고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오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마음가짐이 엄숙하다.
뭐랄까.. 아이돌들이 데뷔 전날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설레이면서 긴장되고 그렇다고 마냥 기쁘지만도 않지만 기대가 되는.. 무언가 만감이 교차한다는 진부한 표현을 기어이 쓰게 되는 그런 묘한 감정이다.
사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인생에서 단 하루있는 결혼을 앞두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어떤 감정이나 지금의 상황 또는 다짐따위를 하기 위해서 노트북을 연것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역사적인 순간을 단순히 기록하고 싶었다. 이것은 일기다. 먼훗날 나의 그녀와 아이들에게 보여줄 일기.
아이야.
지금은 이 아빠가 너의 엄마와 하늘이와 결혼을 하루 앞둔 밤이다. 시간은 정확히 11시 18분이란다.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이런저런 준비를 한탓에 눈꺼풀이 무겁지만 오늘만큼은 이 이야기를 꼭 기록하고 싶어서 글을 쓴단다.
오늘 나는 결혼을 앞두고 행복에 넘실거려도 모자랄 판에 하늘에게 굉장히 서운함을 느껴서 툴툴거렸거든. 그런데 평소면 그냥 넘겼을 정도의 서운함이, 결혼 전날이라서 그런가... 오늘따라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한 겨울 창문을 열어 둔 듯 서운한 마음이 나를 관통했단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오늘 아침부터 하늘이와 나는 굉장히 바빴다. 나보다 바쁜일정을 가진 그녀를 위해서 내 나름의 배려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 바쁜 와중에 내 생각보다 다른 것들을 먼저 챙겼다. 그녀의 세상에서 내가 빠진 느낌을 받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사소해서 일일히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무엇보다 서로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다른 잡다한 것들에게 내가 밀렸다는 것이 몹시 서운했다. 나를 조금만 생각했어도 하지 않았을 법한 선택이라는 생각에 너무도 화가났다.
그리고 이런일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아는 순간. 두려워졌다. 난 그런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부인이 남편보다 우선시하는 것들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더욱 많아 진다는 것을.
아이, 애완견, 취미....
나의 미래의 경쟁상대들이다. 저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야한다. 치밀한 방법으로 저녀석들을 물리쳐야 한다.
아이야. 그 날의 나는 하늘이에게 몇순위이냐? 아마도 최신형 로봇 강아지나 청소기에게도 밀리지는 않았겠지? 적어도 너에게는 지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미래의 내 경쟁상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