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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첼 Jan 28. 2019

결혼식 날, 아내에게 읽어 준 편지

하늘아.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네. 결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우여곡절 참 많았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당신이 내 앞에 서 있다니.. 아직 얼떨떨하니, 실감이 안 난다. 


응 맞아 이렇게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이 편지가 1주일 전에 쓰였기 때문이야. 상상만으로 써서 실감이 안 나는데,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은 당신을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온몸으로 찌릿찌릿 실감이 난다. 아~ 행복하다.... 


요즘은 결혼식에 주례가 없어서 이렇게 신랑이 나와서 신부에게 편지 낭독을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도 주례 없는 결혼식 몇 번 가봤는데, 막상 귀한 하객분들 불러다 놓고 대부분 한다는 말이 정말 가관이더라. 


예를 들어서, 자기들 연애스토리나, 내가 자기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천명하거나, 심지어는 신부 손에 물 묻히지 않겠다, 아름다운 눈망울에 이슬 맺히게 하지 않겠다는 등. 새해 다짐처럼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더라고.. 


귀하신 분들 모셔 놓고 이런 식상하고 진부한 이야기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저는 오늘 당신과 참석해주신 내빈들 앞에서 정말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첫 번 째, 서로에게 부모가 되어 서로를 성장시켜주는 배우자가 되자.


아주 현실적으로. 이제 우리는 각자의 부모님과의 관계보다 우리 서로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어. 부부는 0촌이 자나. 그 말인즉슨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며, 서로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니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일게. 


언제나 당신보다 먼저 일어나려고 노력할 것이고, 당신보다 더 많은 집안일을 할 거야. 책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싸울 땐 되도록 먼저 사과할게. 우리들의 부모님처럼. 


두 번째, 쪽팔린 짓 하지 말고 의리를 지키는 부부가 되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더라. 우리는 이제 절반 정도는 어른이 된 거겠지? 어른은 스스로의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초등학교 때 배웠어. 자신이 선택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 떳떳한 어른이 될게. 당신이 나를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스스로에게 쪽팔린 짓은 결코 하지 않을게. 이미 너무 해봐서 그 부분은 내가 잘 아니까 알아서 부끄러운 행동은 잘 거를게.


서로가 지켜보지 않아도, 강한 믿음으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난 이런 마음가짐이 참된 의리라고 생각해. 의리 있는 부부가 되자 하늘아.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자.

나는 자식을 낳더라도 당신을 누구누구의 엄마로 부르지 않을게. 당신도 나를 언제나 찬희 오빠 혹은 여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이 말은 언제나 자식보다 서로를 우선하자는 뜻이야. 나도 우리 부모님의 자식 이어 봐서 아는데, 자식은 키워 봤자인 것 같아. 특히 아들은 더 그런 것 같고. 만약에 우리가 딸을 낳게 되면 그땐 호칭을 다시 생각해보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을 진짜 옛날 말로 만드는 현대적인 부부가 되어보는 거야! 농담이고. 그만큼 서로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아끼자는 의미야 내 말 이해하지? 


하늘아 나는 얼굴 빼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남자자나... 이렇게 못난 나를 사람 구실 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남편으로 받아들여줘서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내 남은 평생 할부로 천천히 갚아 나아갈게. 사랑해 하늘아.


우리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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