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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첼 Aug 06. 2019

그렇게 아저씨가 되어간다...

2월에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6월 말이다. 독거 총각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와 동거를 시작한 지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가끔 지인들과 대화에서 결혼하고 무엇이 제일 좋으냐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 곤란한 질문이다.  대학 졸업 후 자소서마다 나를 괴롭히던 특기란에 칸을 채우는 느낌이다. 딱히 특기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것을 적어 넣자니 허풍 같고 그렇다고 공란으로 남기자니, 특기도 하나 없는 자신이 무쓸모 인간인 것 같은 곤란함. 딱 그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정말 좋은데 콕 집어서 말하기에는 별것 아닌 소소한 것들이고, <가령, 밤늦게 함께 먹는 야식,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락함, 휴일에 늦잠 자고 함께 게으름 부리는 것 등등> 딱히 좋은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내 결혼생활에 문제 있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인 그런 곤란한 질문이다.


대신에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 확실히 몇 가지가 있다.

관심사와 외모

결혼 이후 관심사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결혼 전에는 뭐랄까.. 언제 어디서 사냥감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긴장감으로 날이 곤두 선 차디 찬 툰드라 지역의 야생 사냥꾼 같았다. 그래서 항상 헬스장에서 몸매 가꾸기에 여념이 없었고 동시에 시베리아의 혹독한 칼바람을 이기기 위해 언제나 곁에는 술을 두었다. 지갑의 총알은 언제나 두둑했으며 최신 장비로 옷과 헤어를 단장했었다.


그런데.. 결혼이란 봄을 맞아 야생에서 안락한 집으로 회귀한 사냥꾼의 전투 본능은 눈 녹듯 사라져 갔다.


결혼 전에는 머리를 손질하지 않고는 집 앞 슈퍼도 나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출근할 때 조차도 비니나 모자를 자주 쓴다. (우리 회사는 복장의 자유가 확실하다.) 지속적인 야식과 꾸준한 무운동으로 팔다리는 얇아지면서 아랫배는 볼록하게 나오는 느낌이다. 느낌이 아니라 나왔다.... 불과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그렇게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결단코 싫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다. 생각해보면 외모를 가꾼다는 것은 남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나 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외모 손질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눈치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됐다. 총각 때는 솔직히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들에게도 외모적으로 잘 보이고 싶어 꾸몄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수컷에게 우월감을 느끼며 내 포지션에 대한 안정감을 확인하는 어리석음이었겠다.


불안감의 결이 바뀌었다.

취준생과 사회초년생을 거치면서 언제나 불안했다. 졸업 후 딱히 정해 놓은 진로도 없었을뿐더러 어찌어찌 들어갔던 회사에서 빠른 진급과 연봉 상승 외에 별다른 목표도 없었던 그 시절, 내가 겪은 불안감의 종류는 막막함이었다.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무한 경쟁 사회를 맞닥뜨렸을 때의 아찔한 아득함, 내게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만한 아이템이 없다는 좌절감, 한계가 정해진 듯한 깨달음. 뭐 누구나 겪었을 것이고 아무나 견뎌내는 종류의 불안감이었달까?


결혼 후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그 전과 결이 사뭇 달라졌다.


아침에 아내가 건네는 우유에 마를 간 음료를 한 잔 마신 후,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인사를 받으며 출근을 하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가도 생활비를 정산할 때면 이렇게 벌어서 아이 낳고 안락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취업 전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켜만 달라는 당당한 포부에 가득 차 있었다면 사회생활을 약 10년 가까이하고 난 지금에는 내가 가진 기술이 무엇이 있으며 이 기술과 실력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강한 경쟁력을 갖추었나 싶다. 객관적으로 부족함과 세상에는 어떤 분야 든 어벤저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CGV IMAX 보다 현실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엔드게임 마지막 전투신에서 일개 병사도 지구를 지키는 엔트리에라도 껴있는 실력자라는 사실의 위대함을 다시금 자각한다.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모님들은 쉴 새 없이 일하시고 몸을 혹사시킨 뒤, 쓰디쓴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셨나 보다.. 정신없이 바쁘고 주말에 알바하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버는 생활을 요새 하고 있는데 주말 내내 아내와 집에서 쉬거나 데이트를 할 때보다 몸은 힘들지만 불안감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아이를 갖지 않은 시점에 이런 경각심을 느낀 건 개인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경각심 없이 덜컥 아이라도 생겼다면, 아무런 대비 없이 마주한 쓰나미급 현실 폭풍에 멘탈이 쓸려 갔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진지하게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갈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비록 아저씨가 되어가지만 나쁘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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