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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첼 Dec 11. 2019

총각 때 헬스장에서 운동하면 들었던 생각.

오늘은 토요일 저녁 5시, 평일엔 회사 퇴근 후 장사, 주말에도 장사... 바쁜 와중에 그래도 살아보겠다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와서 운동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아... XX 무겁다 힘들다..' 몇 년 만에 체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잡다한 생각이 무작위로 튀어 오른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노래 가사처럼 나의 망상이 꼬리를 물며 정착한 지점은 몇 년 전과 같은 주말, 바로 이곳이었다.


 마시기 더없이 좋았던 어느 토요일 저녁 5, 오랜만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황금 같은 주말에 시멘트  색감이 칙칙하게 감도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한 지극히 객관적인 분석>


첫 째, 약간의 깔짝거림을 통한 안; 나는 주말을 낭비하지 않는 건강한 청년이라는 자기 최면과 함께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안 해서 그렇지 3개월만 바짝 조지면 권상우처럼 섹시한 근육질 몸매를 갖게 될 거라 믿는 명백한 사고의 오류 <자매품; 단백질 셰이크를 마술봉 마냥 흔들어대면 마법의 거울을 통해 식스팩을 볼 수 있다.>

둘째, 판타지 소설 작가로 빙의; 운동을 하다가 자꾸만 눈이 마주치는 매력적인 여성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하거나 또는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것이란 타임루프 장르를 그리기 때문이다.


팔딱팔딱 혈기를 뿜어내는 2~30대 젊은 수컷이 주말 저녁에 헬스장에서 멍청하고 무겁기만 한 역기를 들고 있다면 열에 여덟은 내가 언급한 저 두 가지 이유이고 한 두 명 정도는 헬스 중독자이다. 외모 경쟁력을 키우는 목적 없이 순수하게 건강을 위해서 무거운 돌덩이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내렸다 하는 청년은 없다는 것이다. (청년 = 건강함 이기에 사실 그럴 필요도 없긴 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40대 후반에 경제 활동이 왕성해져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게 될 터라  지금부터 꾸준히 체력관리를 해 놓치 않으면 내 돈으로 즐겨보지도 못한 채, 병원비로 탕진할 수 없다"는 계산 아래 순수하게 건강만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다른 목적이나 기대가 있을지 언정, 운동을 꾸준히 하면 어떤 형태로든 이로움이 크다. 하지만 이따위 목적으로는 그마저 심취할 수 있는 저 두개의 감정조차도 오래가지 못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며 우쭐대는 마음가짐으로 주말 저녁에 헬스장에 왔지만 사실은 단지 약속이 없기 때문이란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벤치프레스 몇 번 치고 핸드폰 보고, 스쿼트 깔짝 거리고 핸드폰을 본다. 그러다 가장 한가할 것 같은 녀석에게 이따가 시간 되냐며 술이나 한 잔하자는 문자를 보내거나 뭐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SNS를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렇게 또 SNS를 하다 보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지인들의 술자리와 연애 사진들이 고담시 뒷 골목에 하수구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꼴 보기 싫고 베알이 꼴린다. 이쯔음 대면 머릿속에 드는 온갖 생각은 사라지고 심장 깊숙한 곳에서 사무치듯 밀려오는 감정이 있다.


"외롭다...."


너무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이따위 아령을 들어서 무엇하나, 몸에 쫙 붙는 그레이색 레깅스를 입고 1시간 반 동안 약 11회 정도 셀카를 찍어대는 저 여인은 내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는걸...'  어깨쭉지를 소지섭만큼 쭉 피고 들어와 악을 써가며 역기를 들었던 초반의 의기양양함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외로움에 치를 떠는 얇디얇은 손가락만이 핸드폰의 화면을 이리저리 스크롤할 뿐이다. 누구라도 좋다. 오늘 밤 나와 함께 술 한잔만 기울여 다오..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다시 현재.


지금의 나는 그 전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같은 무게는 엄두도 못 내고 1 SET 반복 횟수도 적다. 운동의 루틴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휴식을 넉넉하게 취하며 운동할 여유조차 없다. 계획한 정도는 못 채워도 빠르게 운동하고 가게로 가서 재료 준비와 청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 혼자 장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하고 잔소리를 듣기도 싫다.


"외로울 겨를이 없다"

"로맨스 판타지 따위 관심도 없다. 어벤저스 캡틴 급 체력이 제일 필요하고 간절하다." (I can do this all day!) 

"여러모로 사는 게 빡세다..."

십 년뒤에는 자식도 있을 텐데, 진짜 지금보다 체력이 더 떨어지면 안된다는 절실함이 얇아진 내 허벅지에 긴장감을 더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과 똑 같은 장소에서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몸은 더 힘들지만 마음은 그때보다 훨씬 더 무겁고 단단하다. 당시엔 운동 후 몸에서 열이 났지만 지금은 운동을 좀 덜 해도 가슴에서 열이 나는 것을 느낀다. 멜로가 아니라 다큐가 체질인 것 같다는 결론도 내렸다.


주말 토요일 저녁 6시. 장사하러 가야 된다.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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