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열리는 나무 1화

by 고총
실과


"절대 열매를 땅에 떨어지게 해선 안 된다."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우리 집 마당엔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막 걸음마를 떼던 무렵부터 나를 나무 앞으로 데려가곤 하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나무에서 열린 것이 땅에 닿게 두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어느덧 말을 시작한 내가 이유를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건 우리의 가문을 지켜주는 나무이기 때문이지."


설명은 언제나 모호했다. 할아버지의 당부가 무색하게도 그 나무엔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책과 만화영화에 빠지고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내 관심은 나무로부터 멀어졌다. 열 살 무렵이 되었을 때,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앙상한 모습이었다.


"열매는 언제쯤 열려요?"


내가 질문할 때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들려주셨다.


"때가 되면 열릴 게야. 그때가 너무 일찍 찾아오지는 않기를 바라려무나."


처음으로 나무의 열매를 본 것은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이었다. 입학식을 맞아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작은 분홍빛 봉오리가 생겨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그것은 주먹만 한 크기로 자랐다. 나는 말라가는 줄기와 가지로 힘겹게 피워낸 결실이 대견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무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할아버지가 원인 모를 병으로 드러누우신 것도 같은 시기였다.


"민재야. 이 할아비가 오래 살았으면 하느냐?"


할아버지는 침상에 누워 내게 물으셨다.


"네, 할아버지. 저랑 같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앳된 손주의 말에 할아버지는 다정하게 웃으셨다.


"나도 너와 좀 더 함께하고 싶구나.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떠날 때를 알아야 해."


내 귀에는 그저 의례적인 노인들의 자조처럼 들렸다.

하지만 곁에서 함께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왠지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다.


몇 달 후, 할아버지의 침실에선 노인과 아들이 언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격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아버지는 밤이 늦어서야 눈물을 훔치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날 새벽 집을 나선 아버지는 날이 밝기 전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른들이 사망 진단을 받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며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나무에 달려 있던 열매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은 건 화장이 끝나고 며칠이나 지나서였다. 그 후로 한동안 열매는 다시 생기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는 다시금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솔직히 말해 민재의 재능은 이 동네에 두기엔 아깝습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집으로 찾아온 미술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나의 그림 실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관찰, 구성, 질감, 상징성…… 선생님은 침이 마르도록 내 재능을 칭찬하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저의 지도로는 한계가 있어요. 서울에는 공모전, 대학 부설 영재 센터, 장학 프로그램까지 민재에게 열어줄 수 있는 문이 훨씬 많습니다."


예상했듯 부모님은 난처하다는 반응이었다.


"도시 물가가 만만치 않아서…… 차편이며 숙식이며, 비용이 적잖게 들 텐데요."


아버지는 돈 핑계를 댔지만 나는 왠지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재 같은 아이는 환경만 조금 바뀌면 완전히 꽃 피우는 경우가 많아요. 좀 더 숙고해 주십시오."


선생님이 돌아간 후 부모님은 식탁에 앉아 오후 내내 말이 없었다.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식에게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에 기뻐하지 않는 부모란 없을 터였다. 뭔가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추측했다. 그게 무엇일까.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서울 가고 싶어요."


부모님은 내가 그 말을 할 줄 알고 있던 듯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걱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말했다.


"그림은 여기서도 충분히 잘 그리고 있잖니?"

"선생님 얘기 들으셨잖아요. 전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걸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어난 집을 떠나선 안 된다. 네 자리는 여기야."


나는 아버지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제 자리가 왜 여기로 정해져 있는 거죠?"


내 물음에 아버지는 갈등했다. 뭔가 이유를 말해주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팔을 잡고 지그시 만류하는 아내를 보더니 그는 끝내 침묵했다. 그날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부모님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선생님의 간절한 청원도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마을의 유일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학교의 전체 학생은 17명뿐이었다. 예체능 반은 따로 없었다. 미술실엔 오래된 화판과 마른 붓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난 등교 첫날부터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림을 계속하고 싶은 거지?"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래요."

"그래.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뭐든 도우마."


담임과 교무부장은 교내 회의를 열어 특별 예산을 조금씩 떼주는 걸 허가받았다. 학교 돈으로 공수한 드로잉 펜과 잉크, 커다란 화판과 태블릿을 비롯한 재료와 기기들을 지원받았다. 그렇게 매일 8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서울 유학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는 가능한 모든 원조를 받으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우환이 찾아왔다. 이번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원인 모를 병이었다. 할아버지와 같은 증상이었다.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유전병 같은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분명 다른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너무 걱정 마렴. 곧 일어나실 거야."


어머니는 날 안심시켰다. 하지만 스스로도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다독이는 그녀의 눈길은 줄곧 마당을 향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도 뒤따라 집 밖으로 옮겨 갔다.

앙상하게 말라가던 나무에, 또다시 열매가 하나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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