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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총 Oct 25. 2024

수상한 베이커리 3화

윤 총무의 기묘한 이야기


거래


찬우는 침대에 누워 얼떨떨하게 현실을 곱씹고 있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볼이 화끈거렸다. 왜 그런 소리를 했지. 여전히 얼얼한 자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찬우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미경이 손에 쥔 임신 테스트기를 본 순간 찬우의 마음속에선 당혹감과 두려움보단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이 앞다투어 치밀어 올랐다.


"내가 아빠 맞아?"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미경의 표정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말을 뱉는 동시에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고 다급히 덧붙혔다. 


"아니, 물론 의심하는 건 아닌데…"


하지만 수습할 새도 없이, 이를 악문 미경의 손이 찬우의 얼굴을 후려쳤다. 눈앞이 벌쩍하며 불꽃이 일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미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가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내가 미친년이지, 멀어지는 미경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찬우는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인터넷 창에 낙태 비용을 검색해보며 점차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평균 80에서 100만 원 사이의 가격. 하지만 피 검사를 포함해 전후로 자잘하게 들어갈 돈까지 고려하면 100만 원대 중반 정도는 마련해야 할 상황이었다. 골치가 아팠다. 찬우는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피임을 안 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역시 타고나길 재수가 없는 걸까. 아니, 정말로 내 애가 아닐지 누가 알아. 친자 확인을 검색해보니 20만 원 선에서 가능하다는 정보가 떴다. 하지만 미경이에게 얘기를 꺼냈다간 사지가 남아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냥 연락 끊고 잠수 탈까? 찬우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침대에 몸을 던지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먼 훗날 어떤 형태로 업보가 되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순간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낮에 들었던 유택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아기가 어릴수록 더 비싸게 값을 쳐준다는 거야."


찬우는 오 드 쥬방스 앞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던 여자들의 살벌한 모습을 떠올랐다. 하필 그 괴소문을 듣고 목격까지 한 오늘 미경의 임신 사실까지 알게 되다니? 마음 어딘가에서부터 스멀스멀 호기심이 번져 가슴속을 답답하게 채우고 있던 막막한 불안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필연적으로 그를 그 소름끼치는 빵가게로 인도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새벽, 찬우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오 드 쥬방스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주변 골목은 전부 암흑에 잠겨 있었지만 이 집만은 홀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베이커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붉은 빛의 조명이 흘러나와 어딘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4시간 영업'이라고 적힌 팻말을 얼핏 본 기억이 있어 반신반의하며 와 본 것이었다. 정말로 영업 중인 사실을 확인하자 찬우는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렸다. 뭐라고 물어봐야 할까. 찬우는 고민했다.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고 쫓겨나진 않을까? 아니, 그는 그냥 밤에 빵을 사러 온 손님이다. 분위기가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빵 하나 사서 나오면 될 일이었다. 찬우는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코를 간질이는 낯선 냄새가 가장 먼저 찬우를 반겼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빵 냄새는 아니었다. 그보다 뭔가 묘하게 비린 듯한… 


"계세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찬우는 재차 직원을 부르며 가게를 둘러봤다. 밖에서 가게를 밝히던 붉은 조명은 내부로 들어오자 오히려 보랏빛에 가깝게 느껴졌다. 빵들은 벽을 따라 좌우로 진열돼 있었다. 찬우는 진열대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언제 만들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말라비틀어지고 벌레 먹고 곰팡이가 생긴 것들이었다. 


"…빵 파는 집 맞아? 


찬우는 비위가 상해 옷 소매로 코를 틀어막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오세요. 오 드 쥬방스입니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제빵사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주름 하나 없는 앳된 얼굴이었다. 건조하게 찢어진 눈에 입꼬리만 웃음 짓고 있는 인상이 왠지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기분 탓일까. 어딘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빵 사시게요?"

"아… 네."

"어떤 빵을 원하세요?" 


찬우는 갈등했다. 공연히 시간을 축내기보단 단도직입적인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는 뭐라 말머리를 꺼낼지 잠시 고민하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뗐다. 


"아기를…"

"네? 아기요?"

"그러니까, 태아를 팔려고요." 


제빵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찬우는 불안한 심정으로 그의 반응을 살폈다. 이윽고 제빵사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가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찬우는 그제야 처음으로 제빵사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과도하게 큰 서클 렌즈를 낀 것처럼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 눈인 듯했다.  


"누구 아기인데요?"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찬우는 안도했다. 


"제 여자친구요."  

"임신 몇 개월 정도 됐죠?"

"확실히 모르겠어요. 얼마 안 됐을 거예요."


제빵사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더 올라갔다. 찬우는 오싹한 기분에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혹시 사실인가요?" 

"뭐가요?"

"아기가 어릴수록 비싸다는 거요. 태아는 더 많이 주신다고…."

"맞습니다. 어린 아기일수록 효과가 극대화되죠. 특히 태아로 만든 제품은 인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효과란 소문의 내용 대로 사람을 젊어지게 해주는 것일까. 하지만 찬우에게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잘됐네요. 확실하진 않지만 여친이 임신한지 아직…"


그때 제빵사가 손가락을 들어 찬우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태아의 경우 무조건 어리다고 해서 비싸게 사드리진 않습니다,"

"왜죠?" 

"태아의 주수만큼이나 인육의 양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건 20에서 24주차 사이의 태아입니다."


20주라면 거의 다섯 달이었다. 그때라면 이미 배가 불러와서 주변 사람들이 임신 사실을 전부 눈치챌 것이었다. 찬우는 갈등했다. 


"그냥 지금 당장 팔면요?"

"갓 임신한 태아는 30만원 안팎으로 책정됩니다. 수술 비용은 무료구요."


그 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수술비를 마련할 필요도 없는 데다 30만 원의 공돈까지 생긴다니.  믿기 힘들만큼 좋은 조건이었다. 그때 제빵사가 테이블 서랍을 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낡고 두꺼운 장부와 계산기였다. 


"가격이 아쉬우시다면 20주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래하셔도 되죠."


제빵사는 장부를 펼치고 계산기에 무언가를 두드렸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다 고등학생이시고… 이런 조건일 경우에 가격은…."


제빵사는 중얼거리며 계산에 열중했다. 찬우는 괜한 수고를 덜어주려 그를 만류했다. 


"아니요, 저희가  학생들이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기다릴 상황이…" 


하지만 제빵사는 금세 계산을 끝내고 찬우의 눈앞에 계산기를 들이댔다. 화면에 적힌 숫자를 본 찬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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