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무리 지어 학교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찬우와 유택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둘은 여전히 빵집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기가 어릴수록 더 비싸게 값을 쳐준다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료는 원래 클수록 비싸지 않나? 이제 막 태어난 아기라면 기껏해야 2, 3kg 정도일 것이다. 그걸로 빵을 만들어 봤자 몇 인분이나 나올까. 그걸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다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 듯했다. 찬우는 아기를 재료로 요리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도 돈 계산이 앞서는 스스로가 한편 오싹하기도 했다. 이토록 허황된 이야기가 사실일 리 없기 때문이야. 찬우는 마음속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유치한 괴담 같은 건 팍팍한 현실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끼게 해주는 일상의 윤활유였다.
때마침 두 사람은 오 드 쥬방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찬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김유미는 얼마나 받았을까?"
"본 사람 말론 엄청 큰 액수였대. 것도 현찰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아기였을 것이다. 어릴수록 후하게 준다는 건 복중에 있는 재료가 더 비싸다는 걸까? 수술은 누가 하지? 촌동네 제빵사가 의사 자격증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그때 유택이 무언가를 목격하고는 찬우의 팔을 툭 쳤다. 찬우는 고개를 돌렸다. 유택은 오 드 쥬방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거 봐!"
빵집 앞에서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두 여자 사이에 고성과 욕설이 살벌하게 오갔다. 유택과 찬우를 시작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집중되고 있었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쪽이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 도둑년이 무슨 헛소리야! 내가 먼저 사기로 했는데!"
"개소리하지 마, 이 아줌마야! 내가 먼저 예약했다고. 다 늙어 빠져 가지고 왜 남의 걸 탐내! 늙을 거면 곱게 늙어야지!"
"뭐? 이 싸가지 없는 년이! 너 말 다했어?"
찬우는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뭐 하고 있나 싶어 가게 쪽을 살펴봤다. 문 위에 설치된 차양 천막 아래에 서서 태평히 구경 중인 제빵사가 보였다. 얼굴이 그늘에 가려져 하관만 살짝 보이고 있었다. 햇빛에 드러난 입엔 묘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도 같았다. 손님들을 말리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새 재료가 들어왔단 소식이 퍼진 거 아닐까?"
"아… 김유미?"
값이 비싸다는 건 그만큼 효과도 좋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아기를 잡아먹어서 젊어진다니. 샤를 페로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저 여자들은 왜 저렇게 구경거리를 자처해 가며 싸우고 있단 말인가. 그때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마눌님'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찬우는 무시하고 주머니에 다시 폰을 집어넣었다.
"여친 아니야? 안 받아도 돼?"
"오늘만 벌써 네 번째야."
찬우는 요 며칠 사이에 유독 미경의 집착이 심해졌다고 느꼈다. 두 사람의 첫 잠자리 이후부터였다. 찬우는 관계를 갖고 나면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갈수록 그녀가 귀찮아졌고 그럴수록 미경은 찬우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려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싸움이 과열되자 누군가 신고한 모양이었다. 제빵사는 어느새 가게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찬우와 유택도 괜히 거추장스러운 일에 엮일까 하는 걱정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찬우는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찬우는 치솟는 짜증을 억눌렀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꺼버렸다.
"야, 이찬우!"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찬우는 놀라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니 교복 차림의 미경이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아, 미경아. 올 거면 온다고 말을 하지…."
"네가 전화를 안 받는데 어떻게 말을 해?"
미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찬우는 할 말이 없어 쭈뼛댔다.
"너 지금 나 피하는 거야?"
"뭐? 아니지! 피하긴 내가 왜."
"근데 왜 전화 안 받아?"
"미안, 바빴어…."
찬우는 그럴듯한 얘기를 지어낼 성의조차 끌어낼 수 없었다. 미경도 아는 듯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미경이 침묵을 깼다.
"할 얘기 있어."
"뭔데?"
"따라와."
미경이 홱 몸을 돌려 앞서 가며 말했다. 찬우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말없이 뒤따랐다. 미경의 얼굴을 마주하니 비로소 분명해졌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고 있었다. 이쯤에서 헤어지자고 남자답게 솔직히 말하자. 잠자리 한 번 한 게 무슨 대순가. 두 사람 다 앞으로 만남의 기회는 차고 넘칠 텐데.
둘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말이 없었다. 정작 이별 통보를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경이 먼저 입을 열길 기다렸지만 도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찬우는 견디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함께 있는 따분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말보다는 쉬운 방법 같았다. 그는 미경을 옆에 두고 핸드폰 게임에 열중했다. 그런 찬우를 바라보는 미경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뭔 얘긴데?"
미경은 대답이 없었다.
"할 얘기 없으면 간다?"
"왜 전화 안 받았어?"
"바쁘면 못 받을 수도 있지. 하루 종일 왜 그렇게 전화를 해?"
찬우가 버럭 짜증을 냈다.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성가셨다. 미경이 지퍼를 열고 가방 안을 뒤적였다. 뭔가를 찾아 꺼내더니 찬우의 코앞에 내밀었다. 그녀가 눈앞에 내민 물건이 무엇인지 깨닫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미경의 손에는 빨간 줄 두 개가 선명하게 그어진 임신테스트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미경은 눈물 고인 눈으로 찬우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