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베이커리 5화 (完)

by 고총


교환


미경은 숨을 곳을 찾아 주위를 살피며 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찬우가 숨을 헐떡이며 그 뒤를 쫓았다.


"거기 서! 일단 얘기를 좀…"


찬우의 절박한 외침에도 미경은 멈추지 않았다. 아까 전 낙태 수술을 한 여자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폐건물을 발견하고 안으로 사라졌다. 찬우 또한 그녀를 따라 전력으로 달려 건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쫓고 쫓기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건물 옥상에 도착해 있었다. 앞에 미경이 서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품에 쥔 가방을 더욱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찬우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화를 억눌렀다.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해야 했다. 그는 억지로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미경에게 다가갔다.


"가방에 든 거 돈 맞지? 수술하고 받은 거 아니야?"


미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찬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거 절반은 내 돈이야. 내가 아기 아빠잖아. 둘이 나눠 가져야지."

"웃기지 마. 처음부터 나랑 결혼할 생각 없었잖아! 나 꼬드겨서 이 돈 챙기려고 그런 거 모를 줄 알아?"


미경이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찬우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그런 거 아니야. 나 정말 그 돈으로 너랑 같이…"

"가까이 오지 마!"


잔뜩 겁 먹은 미경이 옥상 가장자리로 뒷걸음질쳤다. 끝에 다다르자 그녀가 멈칫하며 뒤를 내려다봤다. 찬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갔다. 그가 재빠르게 돈 가방을 움켜쥐었지만, 미경이 거칠게 저항했다. 둘의 몸이 뒤엉켰다. 가까스로 그녀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는 순간, 미경이 디디고 있던 바닥이 푹 꺼졌다. 찬우는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그녀는 30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메아리치던 미경의 비명이 끔찍한 쿵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몸을 일으킨 찬우가 무너진 자리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공터 바닥에 널브러진 미경의 몸 주위로 새빨간 피가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몇 주 뒤, 찬우는 침대에 드러누워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경찰은 한 평범한 여고생의 자살로 수사의 방향을 잡고 있었다. 찬우는 그녀의 임신 여부를 모르고 있었으며, 이 모든 사실을 숨겨오던 미경이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 하고 투신한 것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찬우의 침대 맞은 편 옷장 속에는 커다란 돈 가방이 얌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착하게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구나. 찬우는 생각했다. 하루 종일 돈을 어디에 쓸지 상상하고 계획을 짜는 게 요즘 그의 일과였다. 그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콜록콜록 기침을 뱉었다. 요즘 들어 자꾸만 목이 가려웠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학교 가지 말까… 귀찮은데."


찬우는 수중에 들어온 큰 돈에 정신이 팔려 대학 진학에도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섣불리 그런 행동을 보였다간 경찰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다음날 찬우는 수척하고 지친 안색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수근대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며칠 째 멎지 않는 기침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유택이 어김없이 말을 걸어왔다.


"야, 노처녀 쌤 얘기 들었냐?"

"뭔데?"

"학교에서 만류했는데 굳이 자기가 수업하겠다고 우겨서…"


그때 교실 문이 발칵 열리며 여교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커다란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낀 채 교탁으로 향했다. 몰라보게 달라진 외모였다. 이제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아진 체구에 얼굴은 어린 십대 소녀처럼 앳된 모습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어려지는 거야?"


유택이 말했다. 찬우는 여교사를 바라보며 연신 기침했다. 가래 끓는 소리가 마치 술 담배에 찌든 오륙십 대 중년의 것처럼 들렸다. 어려지다 못해 이젠 청소년기로 돌아가 버린 노처녀 교사와는 반대로 말이다. 찬우의 기침 소리가 거슬렸는지 주위 학생들이 짜증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돌아봤다.


"아무리 젊어지고 싶다고 저렇게까지 욕심 부릴 건 없잖아."


찬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유택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원해서 저런 게 아니라니까."

"그럼?"

"그 가게에서 뭔가를 사고 판 사람들, 전부 저주에 걸린 게 분명해."


저주라니 또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인가. 찬우는 유택의 말에 집중하기 위해 가까스로 기침을 억눌렀다.


"전에 얘기했던 여자애 있지? 임신했다 자퇴하고 그 빵집에서 낙태했다는."

"2반 김유미?"

"그래! 얼마 전에 또 거기 있는 걸 누가 봤대나 봐. 근데 걔 모습이 완전 호호할머니였대. 백발이 성성해서는 완전 쭈그렁 노인네처럼 말이야"

"에이, 그냥 모르는 할머니였겠지."

"아니라니까! 분명 김유미였는데 폭삭 늙은 노파가 됐더라는 거야. 애들 말로는 걔가 엄청 큰 돈을 지불하고 특제 빵을 사먹더래."


믿기 힘든 얘기였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 된 일이었다. 재료를 팔아 번 돈으로 다시 그 빵을 사먹는다니, 그런 비참한 신세가 또 있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찬우는 불현듯 몹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찬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수업 중이던 여교사와 학생들이 벙 찐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문이 세차게 열리고 찬우가 다급하게 베이커리로 들어섰다. 제빵사는 역시나 그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정면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헐떡이며 기침을 쏟아내는 찬우를 바라보며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또 오셨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아저씨, 전에 여기서 낙태 수술했던… 쿨럭!"

"소식 들었습니다. 자살이었다죠?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아니, 그거 말고요. 한참 전에 여기서 수술했던 여자애가 빵을 사러 왔었다면서요?"


제빵사는 입꼬리를 한껏 더 말아올리며 대답했다.


"아, 그 분 말씀이시군요. 네. 얼마 전에 저희 가게에 젊음을 사러 오셨답니다."

"젊음을 사다니, 걔는 저랑 똑같은 고등학생… 쿨럭!"


그 말에 제빵사는 그제야 무슨 영문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찬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마치 보험사 직원이 고객에게 약관을 설명하듯 사무적인 투로 말을 이어갔다.


"수술 전에 이미 동의하신 부분입니다. 물론 까맣게 잊고 계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동의라뇨? 무슨 내용인데요?"

"손님께도 설명 드렸지 않습니가? '생명과 젊음'을 팔고 돈을 받으시는 거라구요. 뱃속에 있던 태아의 생명과… 부모의 젊음 말입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찬우는 할 말을 잃고 제빵사를 멍하니 바라봤다. 기침이 잦아질수록 점점 기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는 어머니의 젊음이 대가로 소멸되지만 부재 시에는 아버지가 대가를 치르게 되죠. 그나저나…"


제빵사는 찬우가 힘겹게 기침을 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이윽고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손님께서도 앞으로는 저희 가게를 자주 찾아주실 것 같군요."


제빵사는 대답도 않고 혼자 키득대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찬우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가게를 나서려던 찬우는 무언가를 목격했다. 그리고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찬우가 보고 있는 것은 가게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노인 한 명이 주름과 기미가 가득한 몰골로 그를 마주 하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