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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Feb 07. 2023

반신욕

그 편안한 즐거움

  반신욕이 참 좋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집에 욕조가 있고 그 욕조를 보니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뿐 언제가 처음이었는지 왜 그러려고 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비루한 기억력이 한스럽다. 일단 물을 틀어 온도를 맞추는 순간부터 설렌다. ‘어느 정도 온도면 좋을까’, ‘그 물의 온도가 내 체온이랑 얼마나 잘 어울릴까’ 수전을 돌리면서부터 흐뭇하다. 촬촬촬 욕조를 채우는 물소리도 즐겁다. 욕조에 물이 차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즐거움이 있다. 애초 읽을 책을 준비하는 게 즐거움이었지만 아무래도 물이 가까이 있는 환경에 종이책은 버거움이 많았다. 한 번 보고 말 책이면 모르겠으나 소장할 책들이 대부분이니 향후 보관에 신경이 쓰였다. 직접 젖지 않더라도 습기에 의해 눅눅해진 부분이 나중에는 우글우글한 종이면이 되어 책이 부풀어 오르더라. 책이 상하는 게 싫어 선택한 것이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전자기기를 다룬다는 것은 훨씬 즐길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고 싶다면 전자책을 읽을 수 있고, 잡지도 골라 읽을 수 있다. 물론 각 종 sns를 훑어본다던지 유튜브 등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도 맘껏 즐길 수 있다.


  물이 적당히 차올랐을 때 - 욕조의 3분의 1 정도면 적당하다. 자칫 더 많은 물을 채울 경우 내 몸이 들어가면 욕조에 물이 넘쳐흐를 수도 있다. 물론 불룩 나온 배와 뒤룩뒤룩 붙은 살점들이 한 몫하는 것이겠지만 - 발가락을 가져 대 본다. 손으로도 가능하지 않냐 말할 수 있지만 왠지 손은 평소 겉으로 내놓고 생활해서인지 온도 변화에 무디다. 발가락으로 수온을 측정하는 것이 더 예민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얻은 뒤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발가락에서 살짝 뜨거움을 느낄 정도. 그 정도가 좋다. 처음엔 다소 뜨겁지만 금세 익숙해질 수 있는 온도, 그 정도가 딱 좋다. 그 온도가 섭씨 몇 도인 지는 온도계를 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약 40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대중탕에 온도가 표시되는 탕에서 탕욕을 할 때 그 정도 온도가 적힌 탕에서 비슷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발에서 시작하여 발목, 무릎, 허벅지 그리고는 조심스레 하체 전체를 굽혀 욕조에 앉는다. 물속에 하체가 다 잠기고 나면 앉은 자세에서 배꼽 위 어느 지점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그 정도가 좋다고 한다. 말 그대로 반신욕이니 몸의 절반을 물속에 담그는 것이다. 하반신이 아닌 상반신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아가미가 없는 몸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다. 눈을 감고 있을 때가 더 많은데 뭔가 집중하기에도 좋고, 피부에 느껴지는 물의 온도를 온전히 느끼기에도 더 좋다. 처음에는 다소 뜨거움이 느껴지지만 이내 무슨 보호막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익숙해진다. 그 기분이 참 좋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그 보호막이 망가지며 다시 뜨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뜨거움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신중해질 때에는 경건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 경건함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경박하고 촐싹대기 그지없는 내 일상에 이토록 경건한 순간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그 경건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으니 더 신중해지고 그 신중함을 유지하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다. 워낙 덜렁대고 진중하지 못한 내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반신욕 초반 이 신중한 시간이 참 좋다. 반신욕의 큰 매력이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노라면 피부가 열린다. 땀방울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코끝이 가장 먼저이고 인중, 이마 순으로 얼굴에서 먼저 땅방울이 맺힌다. 시차를 두고 목덜미와 어깨 나중에는 가슴골과 어깨아래까지 땀이 맺히고 이내 흘러내린다. 아시다시피 땀은 우리 몸에서 불순물과 노폐물을 내보내고 올라간 체온을 수분 증발을 통해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적으로 땀의 역할을 얘기하라면 이 정도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반신욕 과정에서 맺히는 땀방울은 거기에 더해 묘한 성취감과 쾌감까지 더해 준다.

  이렇게 땀이 흘러내린 뒤에는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며 시간을 보낸다. 준비해 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이때인데 그 시간은 길게는 30분, 짧게는 20분 정도 된다.  참 평화롭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순간에 읽는 글이나 보는 영상은 내 머리 속 기억장치에 더 잘 저장되는 듯하다. 다른 주변환경의 방해 없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고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들을 주로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정도 땀을 훔쳐내다 보면 수건이 축축해져서 무거워지게 되는데 그 정도면 반신욕을 끝낼 시간이다. 지나치게 길게 반신욕을 하는 것은 오히려 혈액순환에 방해가 되고 지나친 수분배출로 탈수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몸에 에너지 소모를 많게 해 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될 수도 있으므로 적당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욕조에 물을 빼내는 동안 흐르는 물에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반신욕을 마무리하는데 그 개운함은 대중탕에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겨 각질을 제거했을 때와 맞먹는다. 몹시 개운하고 상쾌하다.


  일상을 지내면서 온전히 내가 내 몸에, 내 정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반신욕을 하며 집중이라는 큰 가치를 조금씩 경험하는 요즘 난 그냥 반신욕에 홀딱 반해있다. 아직 내가 모르는 반신욕의 세계가 더 있을 것이다. 유튜브 콘텐츠나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더 좋은 반신욕법이나 효과, 재미 등이 찾게 되면 또 한 번 반신욕 찬가를 부를 것을 약속하며 이만 물이 다 받아진 욕조로 들어가겠다. 아~ 또 한 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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