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인종차별이라는 검색어가 자주 국가명과 함께 등장합니다. 오늘은 연말마다 인종차별 관련하여 패싸움이 벌어지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전통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12월 6일이 되면 어린이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종교 때문에 찢어지기는 했으나 전통적으로는 같은 문화권으로 Low countries(영어) / lage landen(네덜란드어)/ pays-bas(프랑스어)라고 명명됩니다. 요 아래사진은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인 니콜라스 성인인데요, 12월 5일 저녁이 되면어린이들은 신발 혹은 슬리퍼에 니콜라스 성인이 타고 온 말이 먹을 당근을 넣어 놓고, 니콜라스 성인을 위해서는 맥주를 준비해 놓고 잠자리에 듭니다(벨기에 어린이들이 볼 일은 없으니, 야덜아 그 맥주는 느그 아버지가 마신단다).
아침에 일어나면 니콜라스성인이 놓고 간 선물이 짜잔!! 하고 놓여있지요!
빨간 옷을 입고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니콜라스 성인이라...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풋 유어 핸썹! 혹시 싼타클로스??? 아니,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니콜라스 성인을 기리는 전통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에 걸쳐 있는데요 처음으로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그린 사람은 독일출생의 미국인 토마스 나스트 (Thomas Nast)였습니다. 자기 나라의 전통이었던 니콜라스성인의 복장을 모티브로 하였겠지요.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니콜라스 성인이 아닙니다.
독일어권에서는 니콜라스성인을 도와주는 Krampus라고 하는 동물의 몸에 악마의 얼굴을 한 조수가 있고, 벨기에와 네덜란드어에서는 zwarte piet (즈와르트 피트)라고 하는 조수가 있습니다.
1년동안 부모님 말을 잘 들은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고, 말은 안 들은 아이는 즈와르트 피트가 우리나라의 망태할아버지 처럼 아이를 자루에 넣어서 잡아간다고 합니다. 자루에 넣어 납치한다라니... 말 잘들어야 겠는데요. 무셔라.
이 즈와르트 피트의 생김새는 시꺼멓고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입술은 뻘겋습니다. 밑의 사진을 보십시오. 백인들은 얼굴을 구두약 같은 제품으로 시꺼멓게 바르고 저런 옷을 입고 즈와르트 피트의 코스프레를 합니다.
곱슬머리에 붉은 입술과 검은 피부, 흑인의 신체적인 특징들입니다. 인종의 Melting pot이라는 미국과 캐나다 정도는 아니지만 유럽도 점차 다인종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의 앤트워프의 어느 지역에 가면 초등학교 학급의 벨기에 백인 어린이의 비율이 10프로도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갈수록 전통적인 사상과 진보적인 사상이 충돌하기 마련하지요. 특히 그것이 인종차별적인 전통에 기반을 한 전통이라면 더 더욱이요. 벨기에와 네덜란드어 사는 흑인들은 즈와르트 피트를 흑인에 대한 모욕이라 여기고, 없어져야 할 식민지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콩고는 벨기에의 식민지였습니다. 저희 같은 제삼자가 보기에도 명백하게 이 즈와르트 피트는 흑인들의 신체적 특징을 희화화하고 더 부풀려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백인 벨기에 인들과 네덜란드인들은 즈와르트 피트를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으로 나뉩니다. 우리나라 전통인데 이게 싫으면 니네가 나가라 VS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문화와 전통도 변화를 수용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을 합니다. 아래를 보시면 즈와르트피트는 인종차별이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반대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니콜라스 수호성인 축제에 동심파괴 작렬이지요? 즈와르트 피트의 얼굴이 까만 이유는 니콜라스 성인을 도우려 굴뚝으로 들어와서 얼굴이 저리 까맣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통을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콘셉트인데 왜 이리 깐깐하게 구냐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굴뚝을 통해 들어왔으면, 왜 얼굴이 죄다 칠흑같이 새카맣게 되었습니까? 입술은 그럼 왜 빨간 건데요?
다행인 것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신종 즈와르트 피트가 등장했습니다. 정말로 굴뚝을 지나온 것 같은 재가 듬성듬성 묻은 루트 피트 (Roet Piet/ Roet는 네덜란드어로 재를 의미합니다.)이지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왼쪽이 루트 피트이고, 오른쪽이 즈와르트 피트입니다.
어떠신가요? 보기에도 왼쪽이 훨씬 자연스럽고 눈이 편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Image from the book Sinterklaas en Pieterbaas, by S. Abramz. Illustrated by J. G. Kesler. 1926
위의 그림은 1926년에 어린이들을 위해 발간된 니콜라스성인 동화책의 삽화입니다. 1926년이면 그 당시, 흑인과 백인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조차 없었던 시절이니 그렇다 치지만 지금은 2024년입니다.
현재 재가 뭍은 루트 피트는 이른바 배운자들이 많은 곳이나, 큰 도시일수록 널리 받아들여지고, 똥고집 저학력자들이 다수인 곳에서는 즈와르트 피트를 고수하겠다 몸부림을 칩니다. 저는 감성지능(EQ)도 지능처럼 배운 사람에게서 높게 나타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벨기에의 어린이 티비쇼 니콜라스 성인과 피트. 다행히도 재 뭍은 피트입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전통은 사라지거나 바뀌어야 할 전통이지,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치면 순장도 전통이니까 지금도 순장을 해야겠네요? 힌두교에는 사티(Sati)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미망인을 함께 불에 태워 산채로 화장을 하는 전통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이 법을 금지하기까지, 1900년대 초반 까지도 행해졌던 악습입니다.
저는 즈와르트 피트도 순장과 사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안이 있음에도 다른 인종에게 상처를 주면서 까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악습을 보호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할까요?
어떤 이에게는 그냥 웃고 즐기자고 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조니 소말리는 소녀상에 차마 쓰지도 못할 일을 저지르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습니다. 그 미국인 관종유튜버는 동상하나에 몹쓸 짓 했다고 사람 죽일 거냐?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위안부 소녀상은 그냥 동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제 직장에서 치러진 니콜라스 수호성인 축제에서 루트피트와 함께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 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선물을 받아 기분이 좋은 두 아들 되겠습니다. (제 직장은 인종차별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고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리고 어른이지만 동심을 가진 저와 제 동료들도 회사로부터 귀여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역시 선물은 언제나 기분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