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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국 유교어멈 여의도 눈썰매장 방문기

오늘 하루 어린이가 되어 봅시다

by 고추장와플

한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올리게 되네요.

그간 다시 출근도 하고, 아프기도 했거든요.


한국에 가서 제일 재밌었던 것은 여의도 눈썰매장 체험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너무 신나 했고, 저와 베짱이씨도 생각보다 높은 피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고 어른에게도 스릴 만점이었습니다.


여의도 눈썰매장을 가려면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저희는 구파발역 근방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9호선을 타려면 복잡하고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합니다.


지도를 보았더니 6호선 광흥창역에서 내려 서강대교를 건너가면 나오네요. 위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맞은편이고 광흥창 역에서 걸으면 35분 정도 걸린다고 나옵니다. 대중교통 거지 같은 벨기에에 단련된 체력이 있으니 걸어서 서강대교 건너는 것쯤은 껌이지요.


그런데 거리는 그렇다 치고 체감온도를 생각 못했네요. 서강대교를 건너는데 오돌오돌 떨립니다.

아, 춥네요.

저 멀리 63 빌딩이 보입니다. 초등학교 때 아이맥스 영화관으로 소풍 갔던 기억이 나며 추억에 잠깁니다.


한국에 살 때 자주 한강변에 와서 치킨 시켜 먹었는데 그때가 그립습니다. 억에 잠기는데 베짱이씨가 춥다고 징징거립니다. 짱이씨는 춥든 말든 제 알 바 아니고요, 애들이 추울까 봐 제 목도리를 감아줍니다.


치고받고 싸울 때는 언제고 제 목도리를 둘이 나눠서 걸고 나란히 걸어갑니다. 이럴 땐 참 예쁩니다. 언젠가 베짱이씨와 제가 세상에 없을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들 2호에게, 엄마 없으면 형이 엄마야.라고 종종 말하지만 2호는 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 같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지, 다리 위에는 시국의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발견됩니다. 이제 체포되셨으니 굿바이입니다. 그 사이 나라 경제와 국가이미지가 위태위태 해 진 것이 참 마음이 아픕니다. 국에 있으면 더욱더 국가이미지가 폭망 할 때 직격탄을 맞습니다.


걷고 또 걷고 입 돌아 가게 추워도 걸으니 드디어 여의도 눈썰매장에 보입니다. 이 정도 추위는 우리 아이들도 견딜 수 있어야지요. 인생 사는데 이 정도의 어려움도 못 견뎌내면 쓰겠습니까? 저는 제 아이들이 잡초처럼 컸으면 좋겠습니다.

입장료는 아주 착한 6000원입니다. 소인, 대인 할 것 없이 모두 6000원으로 동일합니다. 2025년 2월 16일까지 개장한다 하니 참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낵코너에는 회오리감자, 떡볶이, 어묵, 핫도그와 컵라면을 팔고 있습니다. 가격이 그다지 착하지는 않지만 추운 곳에서 놀고 나서 먹는 핫도그(4500원)는 미슐랭스타 레스토랑 부럽지 않습니다.

날은 차지만 화창합니다. 서울시민들을 위해 여름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눈썰매장으로 사용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곳에서 추가요금을 내고 빙어 잡기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만 저희는 오로지 눈썰매 타기에 올인합니다.


2호를 위해 어린이용 슬로프에 갔는데 반응이 뜻뜻 미지근합니다. 그래서 높은 슬로프로 갑니다. 7세부터 부모 없이 혼자 탈 수 있다 합니다. 때마침 우리 2호가 지난달 7세가 되었으니 알아서 타라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 혼가 가는 것, 알아서 타는 거지요.


안전요원분이 출발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합니다. 이분들은 저희 아이들의 더 큰 잇몸웃음을 위하여 출발과 동시에 아이들의 튜브를 빙글빙글 돌려줍니다. 그럼 뱅뱅 돌며 밑까지 더 재미있게 가지요.

여의도의 마천루와 눈썰매장의 조합이라니 특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들도 엄청 많이 있습니다. 중국, 동남아, 유럽 가리지 않고 외국인들이 많네요. 특히 프랑스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패션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인플루언서인 것 같습니다.


한참 신나게 탔더니 출출합니다. 아까 보았던 스낵코너로 갑니다. 가격을 보니 다른 곳보다 좀 비쌉니다.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한강에 있는 눈썰매장에서 핫도그를 먹겠습니까. 아이들은 핫도그를 사랑합니다.

야무지게 먹고, 또다시 신나게 썰매를 타니 이제 어둑어둑 해 지며 눈썰매장 폐장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합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밖에 나가 있어서 춥기도 합니다.

추운데.... 우리는 서강대교를 다시 건너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해가지니 더 춥습니다. 다시 입 돌아 가게 추운 서강대교를 걷고 또 걸어 광흥창역에 도착합니다. 서강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석양이 얼마만인지... 너무 아름답습니다.

베짱이 조련은 당근과 채찍입니다. 걷기 싫어하는 사람을 하루종일 굴렸으니 이제 당근을 줄 시간입니다. 베짱이가 좋아하는 양꼬치로 꼬셔서 합정에서 내려 홍대골목을 걷습니다. 한국에 살았을 때 홍대 근처에 살아 홍대에 자주 왔었는데 또 추억에 잠깁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이 근처에 살았다 말해 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제가 살았던 홍대 근처에 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네요. 20대 초반의 꿈 많았던 아가씨가 이제 나이가 들어 아이 둘을 데리고 같은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영희 모형 앞에서 사진 찍어 달라고도 못하고 혼자 셀피를 찍고 있길래, 찍어줄까?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합니다. 그 덕에 우리도 가족사진을 부탁해 봅니다.


역시 젊은이의 거리라 그런지 젊은이가 많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빼면 저와 베짱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아직 청춘입니다.


드디어 양꼬치집에 왔습니다. 애들은 오늘 유난히 사이가 좋습니다. 원래 치고받고 틈만 나면 싸우는데 오늘은 화기애애합니다. 자기네들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고 킥킥대고 난리입니다.

너무 많이 시켰나 봅니다. 지금 못 먹으면 또 언제 먹나 싶은 마음에 일단 꾸역꾸역 입에 집에 넣습니다. 많이 시켰다고 해 놓고는 결국 다 먹었습니다. 먹었으니 소화시킬 겸, 홍대입구에서 바로 지하철을 타지 않고 성수에서 타기로 합니다. 또 걷습니다. 엄청나게 걸었는데 불평하지 않고 잘 걸어 준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오늘은 광흥창-국회의사당-합정-홍대-성수를 걸었습니다

35000보가 찍혀 있습니다. 춥고 신나고 재밌고 추억에 젖고 맛있었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네요! 불과 이 주일 전의 일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한국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여의도 눈썰매장 아직 가지 않으셨다면, 2월 16일까지 개장이니 꼭 가보세요.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놀 수 있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합니다. 강추입니다.


https://hangang.seoul.go.kr/www/facility/map.tab?srchCd=9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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