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합니다
저는 사서입니다.
지금은 학술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있지만, 10년 전쯤에는 벨기에의 무슬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위험하고,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운 지역의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했던 지역은 단지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위험한 지역이 아닙니다.
이민 2세대 3세대들이 종교적 이유,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으로 인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주로 정부가 지원하는 영세민주택단지에서 살며 패싸움과 마약판매같은 불법적인 행위를 하기 때문이지요.
복지의 천국이었던 스웨덴이 최근 들어서 마피아와 갱단이 점거한 나라가 되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요, 벨기에의 문제도 이와 유사합니다.
사회 문화적 통합보다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던 벨기에는 결국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무슬림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게토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유교녀 벨기에 생존기에서 이 경험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에피소드에서 더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48
이 빈민가에서는 자그마한 아파트에 자녀를 4-5명 정도 두는 것이 보통이기에, 아이들이 놀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들도 주로 이민 2세대 3세대들이 부모가 살던 나라에서 데려온 신붓감이기 때문에 현지어 구사율도 떨어지고, 저소득가정에 돌아가는 혜택이 있어도 언어문제 때문에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는 부모눈치 안 보고 마음껏 책을 읽고, 컴퓨터도 사용하고, 색칠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제가 일 했던 도서관이었습니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빈민가의 길거리에서 각종 범죄와 위험에 더욱 노출이 되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조용한 도서관을 사용하는 방법에 낯설었던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힘들게 일을 했습니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던 곳에서 저와 제 동료는 정말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 열심히도 일을 했습니다.
다른 인종에 대한 상식과 예절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로부터 힘든 일을 당하기도 했고, 도서관 사서에게 온갖 잡일을 부탁하고 번역까지 물어보는 빈민가의 이용객들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가 뿌린 씨앗이 언제 가는 작은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작가들을 섭외해 북토크 시간도 기획을 하였지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숙제도 봐주었습니다.
색칠공부와 만들기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요.
도서관이 아니라 도떼기시장같이 떠드는 소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가면 쓰러져 잠들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이 밖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도서관에서 저와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집에서 충분한 교육의 기회도, 믿음도 받지 못하고 "집 좁고 시끄러우니까 나가서 놀다 잘 때 되면 들어와",라고 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던 아이들이었지요.
저를 도와 도서관 책 정리도 해 주고,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려 경찰까지 불러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언젠가는 단 한명일 지라도 이 빈민가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빈민가아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번듯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이코패스 상사가 그 도서관에 새로 부임해 모두를 떠나게 할 때까지 저는 그곳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아이들이 책 한자라도 더 읽고, 작가들과 만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이곳 학술도서관에서 일 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고등교육기관 도서관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곳은 연구하는 사람, 교수, 학생들만 출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빈민가 도서관의 단골손님이었던 유네스라는 친구를 다시 조우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었지요.
항상 사촌들과 도서관으로 출근하던, 꼬맹이 유네스가 지금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변신을 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니, 바로 저를 알아보며 저를 향해 빙긋 웃으며 "잘 지내셨어요?"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또 다른 우연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학생이 저를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수년 전에 XX도서관에서 근무하지 않으셨나요?"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낯이 익습니다.
그 도서관에 자주 오던 친구네요.
이름은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참 반가웠습니다.
"와, 오랜만이구나. 여기서 무슨 전공을 공부하니?"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어요. 시간 참 빠르죠? 저 그때 말 드럽게 안 듣던 꼬맹이었는데... 그때 저 때문에 힘드셨죠? 지금이라도 사과드리고 싶어요."
"사과는 무슨, 나는 네가 대학에 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너무 좋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 했습니다.
제 노력이 세상을 1% 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요.
그리고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뿌렸던 씨앗이 열매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브런치에서 제 본업과 관련된 일들을 잘 언급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이 빈민가 코찔찔이 꼬맹이에서 멋진 청년으로 자라 준 이 두 청년의 이야기와 사서로서의 자랑스럽고 행복한 순간을 나누기 위해 글을 써 봅니다.
사라져 버리는 노력은 없습니다.
노력은 여러분들의 손에서 시작해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한 노력은 분명히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