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슐랭 빕구르망 레스토랑에 가다

미슐랭이 선정한 가성비 좋은 식당

by 고추장와플

지난 주말 베짱이씨와 결혼 1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징글징글하게 오래도 같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만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겠지요? 저의 징글징글한 고집과 성깔을 참아내며 17년을 함께 한 베짱이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습니다. (징글징글한 베짱이의 베짱이스러움을 참아낸 저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특별한 날이니,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 근처에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 있는데, 궁금했던 차에 그곳에 가려고 예약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미슐랭 혹은 미쉐린 등급을 알고 계시겠지요?

한국어로는 미쉐린으로 표기하는 것 같습니다만, 프랑스지역에서는 미슐랭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미슐랭이라 더 많이 회자되는 것 같아 미슐랭으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외에도 빕구르망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스타급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부담이 덜한 가성비 식당이지요.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구웃 콸리티 앤 구웃 밸류 쿠킹이라 적어놓고 있습니다.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의미합니다. 1997년 미쉐린 가이드에 빕 구르망 픽토그램이 공식 소개된 이후 전 세계 미식가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들은 스타 레스토랑을 평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빕 구르망 레스토랑 발굴과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출처: 미슐랭가이드 매거진 코리아


한국에는 현재 77개의 식당이 빕구르망 타이틀을 받고 영업 중입니다.

빕구르망 레스토랑들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방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https://guide.michelin.com/kr/ko/article/features/what-is-the-bib-gourmand-award-copy1




이곳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예약은 필수입니다. 슈니첼이라는 식당인데요, 슈니첼은 오스트리아의 돈까스입니다. 이름이 왜 슈니첼인지는 모르겠지만, 메뉴에 슈니첼은 없었습니다. 왜 일까요?.


미슐랭은 프랑스의 미식 등급으로 잘 알려져 있고, 유럽에서 어느 식당이 미슐랭 뭐라도 받았다 하면 시골 동네에서 동네주민 김 아무개 씨 집 자식이 서울대 간 것 마냥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인기식당이 됩니다.


1,2,3 스타뿐만이 아니라 빕구르망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앞에 걸린 빕구르망 표시


들어갔는데 저희가 너무 일찍 왔나요. 아직 한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비어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완전 만석이 되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레스토랑에 먼 친척 할머니의 거실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한국도 레트로가 힙한데, 이곳도 할머니스타일이 인기입니다. 레. 트.로 말 입죠. 조명도 할머니 거실처럼 어두침침합니다. 노란빛 웜톤조명이라 편안함과 동시에 잠이 오려고 합니다.

개별메뉴는 따로 없고 5코스(45유로), 6코스(55유로), 7코스 (59유로) 요리를 고를 수 있는데요 저희는 5코스 요리로 골랐습니다. 사실 5코스 요리를 45유로(7만 원가량)에 먹을 수 있다면 가성비가 좋습니다만 여기에 식전주, 물, 코스마다 제공되는 각기 다른 와인까지 다 더 하면 가격은 많이 올라갑니다.


앉으니 아뮤즈부쉬로 렌틸콩과 땅콩으로 만든 후무스와 크래커를 줍니다.

아뮤즈부쉬: 코스요리에 들어가기 전, 맨 처음으로 나오는 주전부리


저는 바로 밥을 먹자 했는데, 유럽인들은 아페리티브라 하여 식전주를 마시는 문화가 있습니다. 어차피 밥 먹으면서 또 와인 마실텐데 왜 마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스페인에서 물처럼 마셨던 베르무트를 베짱이가 시키자고 조릅니다. 저는 가격을 보고 정신이 확 들어서 시키기 싫었지만, 자꾸 17주년 타령을 해서 결국 시켰습니다. 오늘 베짱이가 시킨 술값 덕분에 배 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으이구, 인간아.


다른 점이 있다면 스페인에서는 한 잔에 2.5유로, 4천 원이고 이곳은 8.5유로 (약 만 사천 원)라는 점이죠.

https://brunch.co.kr/@gochujangwaffle/201

안 시키려 했으나 베짱이 때문에 시킨 비싼 베르무트. 맛은 좋았습니다.


식전빵이 나오고 올리브오일이 나옵니다. 빵은 프랑스식으로 구운 밖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면서 약간의 신맛이 있는 호밀빵입니다. 올리브오일은 가볍고 꽃향이 살짝 나는 풍미가 좋은 맛있는 오일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코스요리가 시작됩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에서 나눠먹는 것처럼 음식이 한 접시에 나와서, 모든 코스요리를 둘이서 반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양의 코스요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라 신기했습니다.


1인분이 아니고 2인분입니다.

첫 번째 코스는 그릴로 구운 콜리플라워에 쇠비름샐러드, 머스터드와 참깨 페이스트인 타히니를 섞은 드레싱이었습니다. 사실 서양음식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는 경우가 많고, 특히나 이런 코스요리를 먹으면 야채가 별로 많이 나오지 않아 느끼한데, 콜리플라워를 메인재료로 사용하고 서양인들이 거의 먹지 않는 쇠비름샐러드를 밑에 깔아서 완전 신박하고 먹으면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다른 코스들에도 유럽에서 소위 Forgotten vegitable(잊혀진 채소들)로 불리는 먹고살기 힘들 때, 전쟁 났을 때나 먹었던 유럽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식재료들을 많이 사용하여 너무 반가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나물로 많이 먹고 있는 재료들입니다.

그다음 요리는 이탈리아식 감자떡인 뇨끼에 튀긴 케일의 한 종류를 올리고 호두와 크림소스를 사용한 요리입니다. 케일을 저렇게 바싹 튀기니 김과 식감이 비슷하면서 바삭바삭 맛이 좋았습니다. 뇨끼도 부드럽고 호두크림소스와 잘 어울렸습니다.

다음 요리도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성대라고 불리는, 학명은 Chelidonichthys lucerna인 생선에 부야베스 (프랑스식 생선탕) 소스를 꾸덕하게 만들어 생선위에 올린 음식인데요, 같이 나온 푸릇한 채소는 서양사람들이 먹지 않는 명이나물 어린잎입니다. 생선 껍질도 같이 나왔는데 바삭바삭하고 비리지 않게 요리되어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이나물의 톡 쏘는 맛과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감자칩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고기육즙 가득한 라비올리와 미역샐러드


다음 요리는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에 서양무, 열무, 그리고 무의 줄기 부분까지 함께 나왔습니다. 열무김치를 먹는 한국인에게 무의 줄기 부분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버려지는 부분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 셰프를 보며, 와우! 대단히 창의적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비올리에 고기로 속을 가득 채워 육즙이 넘쳤고, 만두피와는 약간 다른 식감, 좀 더 꾸덕한 식감이지만 부드러웠습니다. 오른쪽의 미역샐러드와 함께 나왔는데, 미역과 양배추에 약간 톡 쏘지만 너무 강하지 않은 와사비크림 드레싱도 상상이상으로 맛이 좋았습니다.

루바브 무스, 루바브 소르베와 루바브 타르트

다음은 디저트입니다. 루바브라는 식물로 만들어진 디저트들이었는데, 루바브는 한국에서는 대황으로 불립니다. 이 식물로 유럽에서는 쨈이나 무스를 만들어 먹는데 시큼한 맛이 특징이고, 분홍빛을 띱니다. 루바브 무스에 루바브 소르베에 시소라는 일본의 깻잎 비슷한 식물을 가니시로 내었습니다. 오른쪽은 루바브로 만든 타르트인데, 버터쿠키처럼 바닥 부분은 딱딱하고 안은 케이크처럼 부드러웠습니다. 디저트도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인에게 디저트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달지 않고 맛있다 이지요? 딱 그 찬사에 100프로 충족되는 디저트였습니다. 너무 맛있었지요.


솔직히 셰프의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창의력에 정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습니다. 저는 원래 분자요리, 무슨 맛 거품, 뭘 추출해서 구슬모양으로 만들어낸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파인다이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수하지만, 본연의 맛을 살린,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있는 음식들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5코스를 먹고도 느글거리지 않고, 건강한 식사를 한 느낌은 정말 만족스럽스럽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식재료와 너무 멋 부리지 않고 본연에 충실한 요리들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자 이제 계산서를 받았습니다. 이 인간이 정말 등짝 맞을 짓을 했습니다. 제가 싫다고 싫다고 했는데 코스요리에 맞추어 나오는 와인코스를 시켜 1인당 28유로 추가, 디저트에 또 디저트와인 추가 10유로 하여, 총 181유로(30만 원)가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와인 한잔만 시키고 5코스요리만 먹어도 차고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술을 굳이 시키지 않았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술값으로만 90유로 지출이라니 맙소사...


결혼기념일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마디 했겠지만, 17년을 함께 산 날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참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미슐랭 빕구르망 레스토랑 체험을 하고 돌아온 몸에서 사리 나올 고추장와플이었습니다.


혹시 벨기에의 앤트워프에 오셔서 이 식당에 가보고 싶으신 분들, (아마도 없겠지만요) 아래 미슐랭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https://guide.michelin.com/be/nl/antwerpen/be-antwerpen/restaurant/schnitzel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누가 재즈를 따분하다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