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축복인 것을 몰랐다
지난 두 달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니, 싱숭생숭한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전복되는 느낌이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도 조마조마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내가 팔팔한 줄 알았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팔팔할 줄 알았다.
내 나이가 되면 다들 하는 검사를 하고
두 달이 지나서야 의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MRI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고.
검사를 하고 두 달이나 지나 전화로 통보를 받은 탓에
그냥 멍했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한국인이 한국인의사에게 가서 진단을 들으면
한국말이어도 긴가민가 싶은데,
남의 나라 말로 듣는 진단은 마치 불투명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느낌이었다.
젊은 나이에 이곳에 와서 대학원도 나오고,
이 나라 말을 먹고사는데 지장 없이 하지만
언제까지나 건강할 줄 알았기에 의학용어 공부는 해 본 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학잡지라도 구독할걸 그랬다.
한국이었다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 병원예약도
이곳에서는 세월아 네월아에 내 속은 시꺼멓게 타 들어갔다.
한 달 반 후에나 가능했던 예약을 마치고
검사 전날 파업 때문에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다시 한 달을 기다리며,
마음속은 하루에도 몇 번씩 최악을 상상했다.
MRI는 아직 찍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죽음 앞에 초연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악바리처럼 살았고,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에 데려다 놓은 두 놈이 마음에 걸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후회할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엄마가 곁에 없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이 아이들에게 큰 죄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날들을 지나
MRI를 찍고 의사의 통보를 기다리다 지쳐,
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결과지를 읽어보았다.
섬유종이 있으나 악성종양은 아닌 것으로 판단됨.
두 달 넘게 내 머릿속에서 빙빙 돌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밀어내 본다.
매일 하던 말싸움도,
말 좀 잘 들어라 빽빽 소리치던 등굣길 아침의 실랑이도,
마음에 천불을 일으키던 반찬투정도,
가기 싫어도 출근해야 하는 그런 아침도,
그저 감사한 것이었다.
그냥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어찌 보면 가장 큰 선물인 것을
혼자 두 달간을 끙끙 앓고 이제야 알았다.
안 죽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