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이라 도둑으로 몰렸다

결국 영원한 이방인인 것인가

by 고추장와플

해외에 오래 살면 이곳이 내 집 같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또 '여긴 죽었다 깨어나도 내 집이 될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문특 처량하고 슬퍼진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처럼 17년을 악바리처럼 잘도 버텼다.


집도, 직장도, 자식도, 남편도 이곳에 있으니 나는 귀신이 되어도 이곳의 귀신이 되어야 맞을 터,

하지만 아직도 한번씩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어제처럼 도둑으로 몰린 날에는...




우리 집 근처에는 무인 꽃집이 있다. 무인 꽃집인데 꽃밭이다. 허허벌판에 꽃밭이 있고, 자기가 직접 꽃을 꺾어서 금액을 알아서 계좌이체 하는 시스템이다.



아래의 사진과 비슷한 표지판이 꽃밭 입구에 세워져 있다. 한 송이당 가격, 계좌번호와 휴대폰번호가 적혀있다.


봄이라 그런지, 예쁜 꽃이 많다. 이곳에 와서 가끔 꽃을 사가곤 했다. 꽃집보다 싸고 양심으로 운영하는 주인장의 철학도 마음에 들어 종종 집안에 화사한 분위기를 주고 싶을 때 와서 이곳을 이용하곤 했다.


오늘도 여느 날과 같이 즐겁고 기분 좋게 꽃을 꺾어 계좌이체를 하려 휴대폰을 누르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 허공에서 "저기요, 표지판에 적힌 휴대폰번호로 전화 좀 주세요."라고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카메라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을 이용하며, 카메라를 주의해서 보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주인장이 말한 대로, 표지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인장: 지난주 목요일에 오후 8시쯤에 와서 꽃 꺾어가지 않았습니까?

나: 지난주에 여기 온 적이 없는데요.

주인장: 혹시, 종종 여기 오지 않나요?

나: 종종 와서, 유기농 계란도 사고 꽃도 사가고 하지요.

주인장: 지난주 목요일에 온 사람이 꽃을 꺾고 돈을 안 내고 도망쳤어요. 그런데 당신이랑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아시아인이었고요. 그래서 확인하는 겁니다.

나: 저는 지난주에 온 적도 없고, 가끔 오긴 했지만은 저는 꽃을 꺾어 가져가면 항상 돈을 지불했습니다.

주인장: 그때가 좀 어둑어둑했고, 아시아 사람이어서 물어본 겁니다. 아니면 됐고요.


꽃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동양인 도둑취급을 받으려고 그리 힘들게 공부를 했나 싶고,

이러려고 이렇게 악바리처럼 열심히 살았나 싶었다.

같은 인지능력을 가졌더라도 외국어의 한계가 있기에 더 열심히 해서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고,

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내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생각이 든 이유가 또 그깟 꽃 몇 송이 때문이라니...


한 연구에 따르면 타인종의 얼굴을 구별해 내는 것, 타인종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을 읽는 것이 매우 어렵다한다. 그 주인장에게는 나도 동양인이기 때문에 '그 도둑일 수 있다.' 생각한 것일 테고, 그 주인장이 동양인의 세세한 차이를 밤이 어둑어둑한데 구별해 내는 것은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이해는 한다.


그런데 서럽다. 17년 내 젊음을 불태워 나 자신을 증명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동양인이라서 용의자의 물망에 올랐다는 것이.


물론 그 도둑이 백인이었다면, 나를 용의자로 생각도 안 했겠지만 말이다. 그랬다면 백인이 백인얼굴 가려내는 건 쉬운 일이니, 아마도 잡아 냈겠지.


아무리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을 하려 해 봐도 억울하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계속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마음에 걸린다.


그래, 그냥 지금껏 내가 살아온 대로 노빠꾸로 가 보자.

내 방식대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어제 전화했던 휴대폰번호로 장문의 글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로 말씀드렸던 일에 대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번 기쁘게 무인 꽃집을 방문했습니다. 올해는 4월 2일과 5월 4일에, 작년에는 9월 1일을 포함해 몇 차례 더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꽃이 있는지 보기 위해 잠깐 들른 적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가져갔다면 항상 정당하게 계산을 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대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직함과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는 저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가치입니다.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간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의 삶의 자세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제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꽃을 가져간 사람과 닮아서 그런 오해를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인종이나 외모 때문에 그런 의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점은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이 일로 당혹스럽고 속상하여 이렇게 메시지를 드립니다.


저는 이 무인 꽃집이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갈 수도 있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다음번에는 의심의 눈초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XXX드림


(본래의 메시지는 네덜란드어로 작성했고, 본 글에는 한국어 번역을 올린다.)


Beste,

Gisteren had ik telefonisch contact met u over een voorval dat mij diep geraakt heeft. Ik ben de voorbije jaren meerdere keren met veel plezier in uw pluktuin geweest: dit jaar op 2 april en 4 mei, en vorig jaar onder andere op 1 september, naast enkele eerdere bezoeken. Mogelijk ben ik ook eens gewoon binnengelopen om te kijken welke bloemen er beschikbaar waren, maar telkens wanneer ik iets meenam, heb ik correct betaald.

Ik ben moeder van twee kinderen en geef les aan de Universiteit. Eerlijkheid en respect voor anderen zijn voor mij vanzelfsprekend. Het idee dat ik andermans eigendom zou nemen zonder te betalen, staat haaks op wie ik ben — als persoon, als ouder en als docent. Daarom was ik erg verrast en gekwetst toen ik hierover werd aangesproken.

Mogelijk leek ik op iemand anders, maar het idee dat mijn huidskleur of afkomst een rol zou spelen in de verdenking, maakt het extra pijnlijk. Ik hoop dat u mijn verontwaardiging en verdriet hierover begrijpt.

Ik waardeer uw initiatief enorm — een pluktuin gebaseerd op vertrouwen is bijzonder mooi en waardevol. Ik begrijp dat het in de praktijk niet altijd eenvoudig is. Toch hoop ik dat ik bij een volgend bezoek gewoon welkom ben, zonder argwaan.

Ik wens u verder veel succes toe en hoop dat we dit misverstand achter ons kunnen laten.

Met vriendelijke groeten,
XXX



그리고 문자를 보낸 지 2분 만에 전화가 왔다.


본인은 절대 인종 때문에 의심을 한 것이 아니라, 그날 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간 사람이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어둡기도 했고, 카메라로 잘 보이지 않아서 확인을 한 것이라 했다. 본인도 완벽하게 양심에 맡기고 원래대로라면 카메라도 설치하지 않아야 했는데 워낙 훔쳐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안 되니 이해를 좀 해 달라고... 다음번에 오면 꽃 몇 개 더 꺾어 가시라고...


이 주인장도 혹시라도 내가 정부에 인종차별문제로 클레임을 걸까 봐 식겁을 했던 모양이다. 주인장이 이해는 간다. 그래도 이 걸쩍지근 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속 시원하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보니, 그나마 좀 낫다.

이것마저 안 했더라면 내 가슴은 얼마나 쓰렸을까.

일단 사과라도 듣고, 변명이라도 들으니 좀 살 것 같다.


나는 이 무인 꽃밭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데 주인장 눈치 보여 가지 않을 일은 적어도 없다.

그걸로 만족한다. 오늘은...


내가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인지의 문제는 생각해 볼 시간이 많으니 오늘은 이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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