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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의 끌로드 모네 씨가 명상을 하라는데

우렁찬 실렁스 실부쁠래 (Silence, S'il vous plait)

by 고추장와플

튈르리 정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오랑주리 뮤지엄(Musée d'orangerie)에 왔다. 이 뮤지엄은 튈르리 정원 내에 있다


한 때 프랑스와 북서부 유럽의 국가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등의 국가의 왕실, 귀족들에게 오렌지나무를 가져다가 키우는 것은 최첨단 유행이었고, 본인의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오렌지, 레몬등의 시트러스 계열의 나무를 길가의 가로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쎄고 쎘지만, 이 나무들은 추운 날씨에 취약하기 때문에 사실 프랑스 중부 위쪽의 모든 지역은 생육환경으로 적절하지 않다.

내가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예시이다. 유명한 사람 데려다 쓰기, 그 나라의 상황에 빗대어 예시를 주기 등등이다.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라 생각한다. 래서 이해하기 쉽게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유럽의 귀족들이 굳이 추운 데서 잘 자라지도 않는 오렌지를 키우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사대부 집안에서 자라는 데 더럽게 오래 걸리고, 키우기 까다로운 난을 키우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어려우니까 키우는 거다. 자기 능력과 부를 보여주려고. 쉽게 자라는 잡초를 집에다 고이 모셔두고 기르지는 않겠지 않은가.

키우기 어렵고 꽃 피우게 만들기는 더 어려운 춘란과 풍란

어제, 오늘과 같은 타는듯한 날씨는 북서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날씨다. 특히나 춥고, 비도 많이 오는 겨울은 오렌지나무들에게는 쥐약 같은 환경이다. 그래서 빡센 북서유럽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오렌지나무의 보관실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오랑주리(orangerie)이다.


그래서 오주리라는 이름은 이 곳 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 있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도 오랑주리가 있고, 다른 도시의 권세가 좀 있던 귀족들의 영지나, 성에는 오랑주리가 딸려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지명이나 이름이 아니라 오렌지나무 보관실인 셈이다.

어디선가 가장 사람이 없는 시간은 4시에서 6시 사이라고 읽어서 4시에 줄을 섰는데 사람이 없기는 뭐가 없나. 우리는 뮤지엄패스를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왼쪽, 뮤지엄패스 구입하고 예약까지 마친 사람들은 오른쪽에 줄은 선다. 예약자도 줄을 서긴 했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줄이 매우 빠르게 줄어든다. 우리는 거의 30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왼쪽은 예약 안한 자들의 줄, 오른쪽은 예약자들의 줄. 예약자들 다 들어갔다
끌로드 모네- 수련

안으로 들어가니 그 이름도 유명한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두 개의 대형 타원형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모네가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였고, 그의 여러 요구 조건들을 충족하여 오량주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개관하였는데 자연채광을 이용하여 감상하게 할 것, 그리고 명상할 수 있게 할 . 을 요구했다고 한다.

벨루치언니도 감탄한 수련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수련의 인상
일몰경의 수련
가까이서 보면 붓으로 짓이겨 놓은 것 같은데 어쩜 이리 아름다울까
붓이 훓고 지나간 자리는 꽃이 되었다

수련이 자연광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들을 그렸는데, 일출, 일몰, 안개 낀 날, 여러 가지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이 필요 없이 아주 아름다웠고, 물감을 오묘하게 섞어내서 붓터치만으로 살아나는 수련을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의 붓터치 하나하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너무 행복했다. 여행 내내 코웃음을 날리던 벨루치 언니도 이번에는 너무 아름답다며 극찬을 했다. 역시 예술인의 예술혼은 국적에 상관없이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자, 사진에서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교적 덜 붐비는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많았고, 타원형의 감상실에서는 관람객들이 말을 하느라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났다. 애초에 끌로드 모네가 의도했던 메디테이션 룸으로서의 감상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웅성웅성 거리는 관람객들의 소리보다 더 컸던 소리는 뮤지엄직원들의 호통치는 소리였다. 5분에 한 번씩 실렁스 실부쁠래(조용히 해 주세요, Silence, S'il vous plait)를 외치는데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기차 화통을 점심으로 삶아 잡솼나.


끌로드 모네 씨에게 일러바칩니다. 관람객들이 아니라, 뮤지엄에서 일하는 직원소리가 더 크대요. 저분들부터 조용히 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모네의 수련을 전시한 메인 전시실을 나온 뒤 직원에게 물어봐 내가 곧장 달려간 곳은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나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를 굉장히 좋아한다. 길고 우아한 목, 슬픔을 담은 눈동자 없는 눈, 그의 그림체에는 쓸쓸하면서도 우아하고, 독특하다. 그의 마지막 연인 잔 에뷔테른과의 사랑이야기도 나의 마음을 울렸다.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지 못하고, 가난과 질병, 약물에 시달리다가 그는 33세에 미술생도였던 잔 에뷔테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약물과 질병으로 병색이 짙었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딜리아니를 너무도 사랑했던 잔 에뷔테른은 그가 죽은 다음 날, 산달이 거의 다 된 뱃속의 둘째 아이와 함께 5층 창문밖으로 몸을 던졌다.


첫째 아이, 잔 모딜리아니는 연인이었던 잔 에뷔테른의 가족에 의해 키워졌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성장했다고 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삶과 작품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작품세계와 평전등의 모딜리아니 관련 작품들을 집필하는 미술사학자가 된다.


안타깝게도 그가 살아생전 그린 그림들은 생계를 위해 지인에게 거의 무료로 주거나, 몇 푼 되지 않는 가격에 팔았다 한다. 래서 그녀는 아버지의 작품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군청색 푸른눈
이 미술관은 미술상 폴 기욤의 컬렉션이 주를 이룬다, 모딜리아니의 찐친

이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은 1900년대 초기 몽마르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들의 작품들이며,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끌로드 모네, 세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를 아우르는 프랑스 근현대 미술의 엑기스를 우려 놓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대형 박물관에 비해 컬렉션이 작기는 하지만, 작품들만 놓고 보면 밀리지 않는 곳이며 비교적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초기 작품

특별전시회가 기획이 되어 있었는데 다들 모네의 수련을 보느라 특별전시관은 한산했다. 초점이 나간 것 같은 작품들을 골라 전시했는데 아주 참신하고 즐거운 관람이었다.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현대미술이었는데, 의외의 작품이 이곳에 떡 하니 있었다.

이것은 모네의 정원의 수련이 아니던가. 이거 진짜 맞아?, 복제화 아니야? 란 의구심이 들어 발로 구사하는 나의 막무가내 프랑스어로 직원에게 물었다.


"Est-ce que c'est un original ou une reproduction?"

이거 진짜예요? 아니면 복제예요?


"Bien sûr que c’est un original. Nous n’exposons jamais de copies. Cette œuvre a été spécialement prêtée par le musée d’Orsay pour cette exposition."

당연히 진짜죠. 우리는 복제는 전시 안 해요. 특별히 이 전시를 위해 오르세 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것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은 발로 하는 프랑스어라도 일단 프랑스어로 말을 걸면, 체감상 확연하게 친절도가 확 달라진다. 잘 쓰지는 않지만 배워놓길 잘했다. 발로 하더라도 일단 알아만 들으면 되는 거지.


진짜 이번에도 운이 기가 막히게 좋다. 나는 오랑쥬리에만 갔을 뿐인데 오르세가 나에게 왔다. 키야, 나란 여자는 운이 억세게 좋다! 이렇게 아무도 안 보는 모네의 그림을 나 혼자 앞에 서서 여유롭게 감상했다.


오랑쥬리 뮤지엄, 구경 정말 잘했다! 오래 줄을 섰어도, 사람이 많아도, 호통치는 직원이 있어도 모딜리아니와 오르세에서 데려온 꽁꽁 숨어있던 모네의 그림이 보상을 확실히 해 주었다.

열심히 관람을 했더니 슬슬 배가 고프다. 역시 한국인은 치즈와 빵 쪼가리로는 안 된다. 밥을 좀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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