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함의 끝판왕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10살에 천안으로 이주를 하여,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을 하였습니다. 출생만 서울이지, 학창 시절은 모두 천안에서 보냈으니 충청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부모님 댁도 충청도의 한 시골마을이어서, 서울에 살 때도 충청도 사투리를 어릴 적부터 자주 들었고, 학창 시절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사투리를 자주 사용했지요.
충청도인들이 하는 큰 착각 중의 하나는, 본인들은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말의 끝을 늘리는 것, 억양이 거의 없는 충청도의 사투리는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와는 달리 조금만 노력해도 금방 서울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서울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충청도의 말투는 아무리 서울말을 사용하더라도 가려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한번 꼬아서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기 때문인데요, 이 것은 서울 말을 배운다고 해서 쉽게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충청인이 해외에 나와 살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벨기에에서 살고 있고, 이곳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학술도서관의 사서로 일 하고 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도 5년간 일을 했지만, 학술도서관은 이벤트와 각종 액티비티로 가득한 공공도서관과는 매우 느낌이 다릅니다. 연구를 하고 공부를 사람들로 가득해, 아주 엄숙한 분위기이지요.
벨기에의 지인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저는 시니컬함의 끝판왕으로 불립니다. 이 것은 충청도인의 표현을 이곳에서 사용하는 네덜란드어로 바꾸어서 사용하여 생긴 것인데요, 한 번 꼬아서 말을 하기 때문에 이 것은 서양에서는 시니시즘 (Cynicism)으로 표현이 되지요.
비단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도 제 충청도인의 꼬아 말하는 버릇은 사라지지 않아서,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언어 영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그리고 서바이벌 수준의 프랑스어를 사용하여도 사람들은 제가 말하는 것이 참 웃기다고 생각을 합니다.
엄숙한 분위기의 학술도서관이지만, 그중에는 말을 더럽게 안 듣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남들 집중해서 공부하는데,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도서관 내부에서 취식을 할 수 없는데, 뭔가를 먹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이렇게 말을 하지요.
Het eten is niet toegelaten.
취식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Wil jij een beetje stiller zijn?
좀 조용히 해 주세요.
그런데 충청도인의 꼬아 말하기는 해외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Ga jij 5 sterren geven op google review voor het bibrestaurant?
구글리뷰에다 도서관식당 맛있다고 별 다섯 개 줄 겁니까?
Zal ik jou een microfoon brengen?
왜, 아예 마이크를 가져다 드릴까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동료들은 그야말로 웃느라 뒤집어집니다. 이런 식의 말투를 어디서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시니컬함, 비꼬기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저희 할머니께 "할머니 저 이제 40 넘었어요."라고 말을 했을 때도, "아이고,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먼."이 할머니의 반응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는 "내가 오래 살아서 네가 40 되는 것도 보고 참 좋다."라는 표현이라는 것을요. 이건 대로부터 이어진 충청도인의 표현방식인 것이죠.
어느 동료가 그러더군요. "너 한국말을 해도 말 그렇게 하니"라고요. 그래서 "이것과 똑같거나, 아니면 좀 더하거나?"라고 했더니 헐....이라고 반응을 합니다.
충청도 출신의 코미디언은 최양락 씨, 남희석 씨, 장동민 씨, 이영자 씨를 포함하여 여럿이 있지요.
그분들이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그분들 특유의 표현 방식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한 번을 꼬아 말하는 시니시즘의 최고봉인 분 들이시지요.
충청도 사투리를 쓰니, 제가 사용하는 외국어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모두가 다 뒤집어지는 그런 웃기고 시니컬한 말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도 분위기 메이커, 웃기는 동료, 재미있는 동료, 시니컬함의 최고봉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충청도 사투리에 더더욱 각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해외에 살면서도 저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은 아마도 충청도 사투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충청도, 저기, 그 목 아래 왼쪽, 그 짝에 있는 그것이 아직도 자넬 향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