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이야기 9
자전거 페달을 구르는 그 15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잘 있을까? 불이 나거나 집이 폭발했으면 어쩌지? "
집주인이 우리 이름으로 올라가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래서 화재보험도 안 들어 놨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오만가지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을 밀어내며 헐떡거리며 땀에 푹 절어 아파트에 도착했다.
저 멀리 아파트 건물 밖에 서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무사했고 아파트도 폭발하지 않았다. 서둘러 남편과 건물관리인 라시드에게 전화를 했다. 라시드는 자기 친구가 가스검침 기계가 있다며 친구를 부르겠다고 했다.
아들의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숙제를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더니 아들은 그 와중에도 숙제를 다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아들친구가 가고도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오들오들 떨며 밖에서 기다리고 나서야 라시드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무전기처럼 생긴 기계를 여기저기 갖다 대더니 보일러가 있는 수납장을 연다. 갑자기 삑삑 소리가 나며 라시드 친구라는 사람의 얼굴이 납빛이 되었다.
"가스 새는 거 맞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한다.
"조금 새는 정도가 아니라 안 죽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입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인덕션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지, 만약 가스레인지였다면 당신들은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었어요."
벨기에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이미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었다니 놀랍다. 지금 우리 가족은 죽을 고비를 넘긴 거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집공사 때문에 시집으로 들어갔다가 시집살이가 서러워 두 달만 살 아파트를 얻어 나왔는데 여기서 죽었으면 너무 억울할 뻔했다. 사람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매 순간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처음 온 날부터 조금이지만 약하게나마 가스냄새를 맡은 것 같다. 아주 약해서 내 착각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다가 다시 냄새가 안 나서 잊었다가 또 아주 약하게 가스 냄새가 났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새고 있었을 줄이야.
둘째를 학교에서 데리고 남편도 곧 아파트에 도착했다. 라시드의 친구는 가스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난방 없이 자야 한다는 말인가. 11월인데 난방 없이, 그것도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창에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야 한다고?
내일은 주말이다. 이 새는 가스관을 고칠 사람에게도 주말이란 뜻이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라시드가 말한다.
"내 다른 친구 중에 가스배관 고치는 친구도 있어요. 내가 내일 오라고 할게요. 걱정 말아요."
다행이다. 내일이면 해결된다니. 어찌어찌 두껍게 입고 꽁꽁 싸 매고 자면 하룻밤은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건물관리인 라시드는 내일 친구가 도착하면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입이 돌아갈 것 같은 찬 바닥과 코가 시린 추위에도 우리는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