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이야기 11
난방 없이 지낸 지 6일이 지났다.
주말에 오기로 하고 이미 한번 노쇼를 한 라시드 2, 라시드의 친구는 다시 정한 날짜인 월요일에도 역시 통보 없이 오지 않았다. 토마스는 처음부터 자기에게 이야기하지 그랬냐고 했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다. 세상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나. 6일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은 되도록 집 근처 카페에서 지내려 노력했고 아이들은 책을 가져가서 따듯한 핫초코를 마시며 읽었다. 힘들고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힘든 것에만 집중해 보았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이들과 함께 나와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나름 긍정적인 효과다. 11월의 입 돌아갈 추위가 준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맞긴 하다.
커피와 핫초코로 나간 돈만 해도 꽤 됐다. 솔직히 이쯤 되면 월세를 좀 빼 주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이미 지인가격으로 아파트를 내주었으니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하지만 오늘도 가스 배관 고치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정말로 월세를 깎아달라고 해 볼 생각이었다.
드디어 토마스에게 전화가 왔다. 토마스에겐 우리 아파트의 열쇠가 있었고 자기가 알아서 수리공이 오면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새는 배관이 교체되었다. 오늘부터 다시 따듯한 집에서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가스배관이 더 이상 새지 않는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수고 많았어요, 토마스. 그럼 이제 난방 켜도 되는 거죠?"
"아, 근데 그게..."
고쳤으면 고친 거지 왜 "근데 그게..."라고 하지? 또 느낌이 싸하다. 토마스가 눈을 질끈 감고 나머지 문장을 마저 말했다. 마치 우리의 원망을 자기가 다 받아내겠다는 듯.
"배관은 다 수리가 되었고 가스도 안 새지만 가스검침원이 공식적으로 와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증명서를 발급해야 가스를 다시 사용할 수 있대요."
똥은 씹어 본 적 없지만 아마도 내 얼굴은 똥 씹은 얼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오늘도 난방 없이 자야 한다는 이야기일 터!
"그래서 검침원은 언제 온다는데요? 약속 잡았어요?"
"약속이 이미 다 잡혀서 가장 빠른 게 다음 주 수요일이래요."
"...................."
침묵이 흘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또다시 7일을 난방 없이 보내라고? 11월 중순에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내 눈치를 보며 토마스가 말했다.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 사람들도 다 예약이 꽉 차 있어서 힘들다고 해서요...."
그간의 벨기에살이를 생각해 보면 계속 우겨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건 '안 될 일'이었다. 내 인생에 남을 가장 추운 11월이 될 것 같다.
얼어 죽기 딱 좋은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