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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균 Sep 04. 2017

우리가 몰랐던 번호표의 비밀

#30. 번호표에 숨겨진 넛지 전략

사람이 많이 오는 은행, 식당, 관공서 등에는 꼭 번호표가 있다.


우리는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tv를 보며 주어진 순서를 기다린 뒤, 내 번호가 나오면 자리에 가서

나에게 필요한 업무를 본 뒤, 회사로 다시 향하거나, 집으로 간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흔한 일상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번호표를 놓은 심리학적인 이유를 알고 있는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순서를 정해

질서 있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번호표를 놓은 것도 심리학적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번호표는

사람들이 기다림으로 소요되는 시간에 대해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 느끼게 하는 넛지가 있다.

물론 그들이 앞서 이야기한 넛지를 애초에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전략을 발견한 뒤 번호표를 놓는 공간에선

번호표를 어디에 놓는지, 주위에는 어떤 장치들을 놓아야 하는지 등을 철저히 고려하여 사람들이 최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했다. 오늘은 '번호표' 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번호표의 기능 ; 번호에 '의미' 를 부여하는 사람들

사실 번호표가 만들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번호 하나만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숫자와 서열에 관한 사람의 심리와 연관성이 있다.

'

자, 다음 숫자를 순서대로 나타내 보자.

1 0 2 6 5 3 4


당신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0, 1, 2, 3, 4, 5, 6' 순으로 배열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질문을 할 때 숫자가 작은 순서대로 나타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즉 나는 저 숫자를 큰 숫자부터

배열할 수도 있으며, 홀수를 먼저 배열할 수도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숫자의 순서대로 배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굳이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작은 순서대로 배열을

했는가? 이는 두 가지 원인 중 하나인데, 원래부터 우리가 저렇게 배열하는 것에 익숙하거나, 혹은

순서(1등, 2등...)적인 요소가 숫자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6이 큰가, 1이 큰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6이 크다고 대답한다. 이는 숫자가 순서를 만나지 않았을 경우

단순한 수의 크기를 따지는 질문이다. 반면 6등이 높은가, 1등이 높은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1이 더 높은 숫자라고 대답한다. 이는 숫자가 순서를 만났을 때에는 순서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단순한

숫자의 크기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단순한 숫자에 대해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호표는 사실 단순한 숫자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158이라는 숫자에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158' 을 뽑거나 받는 순간, 당신은 158이라는 숫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158번째 순서', '158이

불려야 나의 차례' 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158이라는 숫자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번호표는 우리가

번호를 순서로 인식하게 하여 스스로 순서를 만들고, 주어진 순서를 기다리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번호표의 또 다른 기능 ; 주관적 시간 줄이기

번호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다림에 대한 개인의

주간적인 시간을 낮춰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관적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루 시간은 24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라는 시간을 인식할 때, 공부 1시간 56분, 잠 8시간 12분 등

객관적으로 시간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주관적인 시간, 즉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에 따라

시간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0분의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시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지거나

혹은 1시간만 논 것 같은데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가는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주관적인 시간을 통해 사고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의 속성보다는 주관적인 생각을 통해

시간의 양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림의 주관적 시간은 대체로 객관적 시간에 비해 길게 느낀다. 즉 과대추정을 한다. 어떤 경우에서건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 긍정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기다림이라는 상황은 사람에게 정신적 압박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기다림의 주관적 인식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관적인 인식이

높아지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한 가지였다. 기다림이 끝나는 대략적인 시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기약 없이 기다린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을 했던 것이다.

만약 번호표 없이 무작정 줄을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라면, 몇 분 간격으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대기자가

몇 명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그들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알 수 없다. 사람은 보통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라면 불확실성이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관적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될까? 이에 대한 답변은 꽤 직관적이다.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시간 흐름의 정보를 주면 되었다. 즉,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번호표는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인한 불만을 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번호표를 뽑게 되면 자신의 대략적인 순서를 알 수 있고(순서에 대한 이야기는 전 내용에 언급했다), 

번호표를 뽑을 때, 작은 글씨로 써져 있지만, 내 앞의 대기인 수도 몇 명인지 알 수 있다. 번호표를 통해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대략적인 추론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기피하는 불확실성의 경향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고, 불확실성으로 인해 늘어난 주관적인 시간을 줄여 

사람들이 기약 없는 기다림(불확실성)으로 인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숨은 넛지 전략이다. 

이처럼 번호표는 질서 유지뿐 아니라 사람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길게 느끼지 않게 만들어 이탈을 방지한숨은 선택설계였던 셈이다.


결론 ; 번호표는 사람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넛지다

번호표는 이처럼 사람들이 중도에 이탈하지 않고 기다림이라는 행동을 지속하도록 해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넛지 전략이다. 번호표로 인해 매장은 사람들에게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라고

고래고래 외칠 필요 없이 순서에 따라 사람들을 들여보내면 되었고, 사람들은 번호표를 통해 공급은

한정되어 있지만 수요가 넘치는 과잉수요의 공간에서 대략적인 체류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하여

굳이 사람들에게 몇 분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대략적인 시간을 예측하도록 만들어

주관적인 시간관념을 낮춘 결과를 가져왔다.




인생에는 번호표가 없었으면 좋겠다.

왜냐고? 만약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과감히 줄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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