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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균 Jul 18. 2017

왜 담배는 계산대 앞에 있을까?

#5. 담배 위치의 비밀

* 참고 : 흡연을 권장하는 글은 아닙니다.

편의점에 가면, 물건을 살 때 점원 앞에 담배가 저렇게 일렬로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군대에서 줄을 서는 군인처럼 그 각이 정말 질서정연하여 모서리에 손을 베일(?) 정도니까.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담배 판매대에도 기가 막힌 넛지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편의점의 담배 판매대는 사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놓여진 넛지다. 즉, 현재의 위치에 있기까지

다양한 위치에서 있다가 결국 다른 물건과 따로 떼어진 격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 담배 판매대엔

어떤 설계들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초창기엔 담배를 '진열' 했다

서울민속박물관 내 구멍가게.

1993년생인 나는 '슈퍼' 세대였다. 아주 가끔 큰아버지의 담배심부름을 갔을 때 담배 판매대는

지금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옛날을 살아왔던 인생선배의 조언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어르신들이 살고 계시는 지방으로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곳에서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초창기 담배는 지금과 달리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고 담배를 사러 들어오면 주인이 아래에서

담배를 꺼내 재화와 교환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담배를 볼 수 있는 곳은 문 밖 진열대가

전부였다는 소리다. 물론 그렇게 해도 무방한 것이, 그 당시에는 피우는 담배가 외국산 담배보다는 국산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경쟁의 강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담배를 취급하는 가게에서는 담배보다는 생필품을 좀 더 중요하게 취급했기 때문에 굳이 담배를

매장에서 보여줄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담배규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지속된다. 어느 곳에는 생필품을 파는 곳 옆에 담배를 따로 놓는 가게도 있었다.


'규제', 그리고 청소년 흡연

물론 담배 판매대가 만들어진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돌아봤을 때

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시행된 담배 규제를 어기려는 청소년들로 인한 부분이 지배적이다.


과거엔 담배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관대했다. 굳이 담배 판매대를 만들지 않아도, 그리고 생필품과 같이 놓여도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 과거 정상회담끼리의 대화에서도

재떨이와 담배가 놓인 것이 전 세계에 중계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 되자 급격하게 담배에 대한 규제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담배에 대한 규제정책은 금연 권장, 금연서비스 이용 시 금연 관련 비용을 지자체에서 지불, 세금 증세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 하는 말인 '하지 말라 그러면 더 해요' 처럼, 사람들은 규제가 시행되자 규제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강제성을 띠는 상황에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욕구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담배를 살 수 없는 연령인 청소년 세대는 담배를 사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담배 가격이 세금으로 인해 올라갈 때는 사재기 현상을 벌이기도 하고,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흡연을 하는 등의 행동을 벌인 것이다. 즉, 강제성이 전제되는 규제가 흡연율 감소에 효과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없는 행동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던 것이었다.


규제로 인해 흡연율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강도 높은 규제로 인한 결과치라고 하기에는

2000년대 이후로 조금 부족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느낌이다. 심지어 규제에도 불구하고 07년부터 10년까지는

흡연율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의 금연정책으로 인해, 가게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규제는 국민의 건강수준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기존에 팔던 것처럼 담배를 팔았던 가게들은 

생필품과 함께 진열된 담배가 없어지는 상황을 겪기도 했고, 혹여나 청소년이 담배를 구매하다 적발된 경우엔

가게에 갑작스럽게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담배가

어느 순간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가게 문 앞에 종이로 '청소년은 담배 금지' 등의 문구를 써 보기도 하고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지만, 강제적인 정책이 생각보다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방금 금연정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 그렇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들에겐 변혁이 필요했던 것이다. 


담배 진열 위치 바꾸기 ; 계산대 앞으로!

그들은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담배를 계산대 앞에 진열한 뒤 사람들이 담배를 살 때 다른 물건과

구분해서 살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들이 그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담배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담배만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가게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다.

담배를 따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주문하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담배를 훔치는 사람이나 담배를 사지 못하는데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겠지?)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엔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에 담배 구매를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담배를 판매하는 위치를 바꾸었을 뿐인데 담배 구매에 대한 문제와 절도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생필품과 함께 담배를 놨을 땐 담배가 없어질 가능성도 존재했고, 생필품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담배를 충동적으로 구매할 확률은 판매대를 놓을 때보다 낮았다. 하지만 담배 판매대를 설치하고 그 위치를

계산대 앞에 가까이 놓음으로 인해, 담배가 없어지는 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담배를 구매하려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신분증검사 등이 그 예다). 

보통 계산대는 고객의 재화/서비스 구매가 끝나는 시점이다. 자신이 사고자 했던 물건을 모두 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마지막 지점인 것이다. 그들은 담배를 사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담배를 사지 못하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긴장할 수 있도록 조치했고,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고민하도록 만들면서 뒷사람이 오면서 빨리 계산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통해

담배 구매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는 다른 제품들과 달리

기프티콘이나 교환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강도 높은 규제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담배 구매의 구조와 기프티콘/교환권이 맞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담배를 피우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소하게 지나치는 담배 판매대에도 어쩌면 수많은 고민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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