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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코더 Dec 01. 2020

도정한 글이 맛있고 속이 편한 이유

백미처럼 읽기 쉽고 편한 글이 돼야 합니다.

백미를 먹게 된 이유


" 글이란 쌀이다. 쌀로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쌀은 주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글은 육신의 쌀이 아니라 정신의 쌀이다. 그것으로 떡을 빚어서 독자들을 배부르게 만들거나 술을 빚어서 독자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은 그대의 자유다. "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쌀 씻는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는 아직도 정겹습니다. 정돈된 백미를 밥통에 넣고 조금만 기다리면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뿜어낸 연기의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의 퍼집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엄마 오늘 반찬 뭐야?"라고 꼭 질문을 하고는 했습니다. 쌀은 우리가 먹는 주식이자, 살면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곡식이자 추억을 함께한 음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들녘에 노랗게 익은 벼는 가을의 상징입니다. 무거워진 머리를 숙이는 시기가 되면 콤바인을 통해 결실을 수확합니다. 베는 즉시 탈곡이 되어 가마니에 담아진 벼는 그다음 태양 밑에서 건조 과정을 거칩니다. 16%~17%인 수준 함량을 13%~14%까지 낮추어 줍니다. 이제 쌀을 만들기 위해서 정미소로 가져갑니다. 첫 번째로 할 일은 벼의 겉겨인 왕겨를 벗겨내는 일입니다. 껍질을 벗겨내면 알갱이가 나오는데 이걸 "현미"라고 합니다. 


 현미는 백미가 되기 이전인 미강과 쌀눈이 그대로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는 아직 씨의 형태이기 때문에 심으면 싹이 나옵니다. 책이나 티브이에서 자주 나오는 키워드는 현미의 효능입니다. 미네랄, 비타민, 섬유질, 식물성 지방 등 좋은 영양소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당뇨 예방에도 좋고, 다이어트 효과도 물론이고 중금속 배출, 항암 효과, 노화 방지, 피부 건강 등 좋은 것 투성이라고 합니다. 현미에서 이 좋은 영양분을 모두 깎아내면 만들어지는 게 우리가 흔히 먹는 하얀 쌀이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린 현미가 아닌 백미를 먹는 걸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다르지만 기본적인 이유는 "소화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서 현미밥을 먹고 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아주 오래 씹어서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있지만 소화가 잘되지 않는 사람이거나, 어린아이 그리고 밥 먹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바쁜 현대인에게는 현실적으로 이 영양가 많은 곡식을 대중적으로 섭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즐기수 있도록 우린 정미소에서 벼의 알갱이를 사과 깍듯 미강까지 깎아낸 백미를 먹게 된 이유입니다. 



일기란 내 안에 도는 피 

 

 예전에 중학교 시절 이사를 갔던 제 방에 노트 한 권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전 주인의 가족 중에 한 명이 놓고 간 잔여물인 듯합니다. 페이지를 넘겨보니 일기장이었고 대략 기억났던 거는 신입생 환영회와 학교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쓰여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기록을 보고 있자니 궁금증은 조금 생겼지만 이내 몇 페이지 못 읽고 쓰레기통에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만이 느낌을 적은 일상의 이야기들은 별로 궁금하지도 재밌지도 않았던 거 같습니다. 물론 그 노트의 주인이 유명한 연예인이거나, 내가 짝사랑하던 여자의 일기라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열심히 누군가 기록한 이야기도 떡이나, 술처럼 가공되지 않으면 그저 누군가의 넋두리뿐이 되지 않습니다.


 은유 작가의 <출판하는 마음>에서는 글과 책이 다른 이유를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 체험한 경험, 생각, 감상들의 진지한 개인의 생각을 기록하는 걸 일기라고 말합니다.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지만,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기가 막힌 문장은 나의 피가 될 수는 있지만 도정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일기입니다.



도정이 필요합니다.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출판하는 마음>, 은유


 글을 장식하는 각종 미사여구를 이용한 멋들어진 표현은 뭔가 있어 보여서 문장이 화려해 보입니다. 그런데 소비하는 독자들은 이 지나친 표현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고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책을 덮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도정되지 않은 글을 읽는 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명한 작가들과 글쓰기 강사들은 항상 공통된 의견을 말합니다. 담백한 읽기 편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슈퍼스타 K2"에서 힙통령이라고 불리며 엉뚱한 라임을 선보여서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가수 지망생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부른 랩은 본인이 듣기에는 그럴듯했지만 그걸 소비하는 방청객에게는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9년 후에 넘치는 개성을 잘 깎아내어 멋지게 아이돌로 데뷔합니다. 대중성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며 공감할 수 있어야 그때서야 대중가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에 좋은 현미를 감싸는 영양분 가득한 아까운 미강을 벗겨내어 누구나 먹기 편한 백미로 만들듯 글도 누군가 먹기 쉽고 이해할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도록 '도정'이 필요로 합니다. 좋은 재능을 갖추었더라도 독자를 위하지 않는다면 한낱 일기장을 공개한 거뿐이 되지 않습니다. 만들어 낸 책이 나에게만 뜨거운 기운을 주는 게 아닌 독자들을 뜨겁게 혹은 좋은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도록 도정을 해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좋은 글은 현미를 깎아낸 백미처럼 누구나 맛있고 소화가 잘되는 그런 글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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