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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코더 Nov 23. 2020

"불편한 골짜기"를 만들어 내는 에세이

거짓된 나를 보여주는 글쓰기

글은 거울과 같습니다.



 은유 작가는 열 명의 젊은 출판인을 직접 만나 묻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인터뷰집을 펴냅니다. 그의 책 서론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책을 쓸 때만큼은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글은 너무도 깨끗한 거울 같아서 글 쓴 사람의 태도와 생각, 마음의 잡티까지 정직하게 반영한다. " -출판하는 마음 중 -


 작가(作家)의 한자어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집을 짓다"라는 뜻입니다. 건축은 언제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건물주의 사상이 완성되는 예술의 한 종류가 바로 건축입니다. 유현준 건축가는 인터뷰에서 동양은 관계 중심적이고 서양은 기하학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문화와 어울리는 양식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작가 즉 집을 짓는 행위입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이 묻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글은 나를 그대로 투영하는 또 다른 나를 그려내는 일입니다. 아주 정직하게 자신을 투영하는 게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거나 영상으로 담아낸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 낯설게 보입니다. 내가 아닌 나를 너무 닮은 듯한 익숙하지 않은 나를 볼 때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글은 불쾌한 골짜기와 같다.

 불편한 골짜기라는 단어는 로봇공학에서 탄생한 단어입니다. 로봇이 인간과 가까워질수록 호감을 느끼다가 사람과 너무 흡사해지면 강한 거부감이 드는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면 다시 호감도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완전히 닮음이 아닌 "거의 가까운 닮음"에서 느끼는 일시적 감정입니다.


 예전에 유명한 기독교 베스트셀러에서 목사님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말했던 죄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몰래 버린 죄",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넌 죄"등 대외적으로 공개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그럴듯한 죄를 고백하는 기록 하며 진심으로 참회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매우 불편한 골짜기를 느꼈습니다. "60년 평생을 살아온 최고의 죄가 겨우 그거라고?" 스님처럼 모든 걸 등지고 절에 들어간 사람도 아닌,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죄의 크기가 겨우 그거라니, 그분이 글에서 지어낸 가상의 인물은 저로 하여금 거의 닮은 거처럼 속이는 불쾌한 골짜기를 느꼈고 큰 거부감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글에서 거짓된 자신을 투영하는 건 독자로부터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럴듯한 지어낸 이야기를 하거나, 오버스러운 허언을 일삼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럴듯한 속임수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감정선이 높은 독자에게는 불쾌한 거부감을 드러나게 합니다. 저는 그래서 에세이에서 이러한 교묘한 거짓된 생각만큼 나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를 표현하는 글 에세이


 나라는 존재를 거짓으로 꾸미고 만들어 내고 싶다면, 나의 거짓된 생각을 교묘하게 들어내고 싶다면, 소설이라는 훌륭한 장르가 존재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자신을 투명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건 거짓말 가득한 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쓰인 글은 보이지 않는 작가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내가 없는 공간에 내가 만들어져 독자와 이야기하는데 이런 나의 분신을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면 과연 그건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사이비 종교를 가리켜 이단(異端)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뜻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해석하면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은 비슷해 보이지만 끝은 거짓됩니다. 교주를 섬겨야 하거나,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는 등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걸 이단이라고 합니다.


 에세이는 이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됩니다. 만약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후폭풍이 두렵다면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나를 투영하지 못한 글은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골짜기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나를 대신한 글을 읽는 독자에게 진심된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다면 깊은 나의 이야기를 펼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세이고 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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