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속도로 가는 중입니다만

오지랖 그만! 나만의 속도로 가기

by 고코더

속도 제한

속도 표지판


자동차를 운전하면 항상 신경 쓰이는 게 있습니다. 물론 주차도 난관이지만 운전자를 가장 예민하게 만드는 건 속도제한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로 위에 동그란 표지판에 빨간 동그라미 그리고 안에 박힌 아주 굵은 글씨 그 안에 써져 있는 숫자는 현재 도로 위 속도 제한을 표시한 것입니다. 만약 제한 속도를 벗어나면 일명 '벌금 딱지'를 끊게 되고 그럼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그리고 자동차전용도로나 고속도로에서는 반대로 최저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느리게 가면 과태료를 무는 것입니다. 뚜벅이 시절에는 느리게 걷나 뛰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동차에 탑승하게 되면 속도를 제한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도 이러한 표지판이 있습니다. 있어도 너무 많은 표지판들이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 적힌 표지판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곧 30인데 결혼해야지!!"

"청약 넣고 있니? 40전에는 아파트 장만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애 낳아야지!"

"나이도 많으면서 무슨 사업이야?"

"무슨 벌써 결혼을 해? 나이가 몇인데?"

"젊을 땐 남 밑에서 배워야지 무슨 창업이니?"


한국의 오지랖 문화는 참 지독합니다.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를 위해"라는 핑계로 끊임없이 이래라저래라 남의 인생의 표지판을 세워둡니다. 그리고 없던 걱정까지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표지판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는 바로 '나이'입니다. 나이가 인생의 속도 제한 표지판도 아니고 정해진 속도를 넘겨도 문제, 못 넘겨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나이로 속도를 측정해 끊임없이 잔소리로 벌금을 물게 하며 불안까지 선물합니다. 걱정을 해주는 건지 걱정을 만들어주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나이에 맞는 속도를 강요받아야 할까요? 나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는 없을까요? 심리학에서 이런 압박을 '사회적 시계(Social clock)'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시계란


'사회적 시계'는 1965년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버니스 뉴가튼(Bernice Neugarten), 존 무어(Joan W. Moore), 존로(John C. Lowe)와 함께 제시한 개념입니다. '사회적 시계'는 사회, 문화의 체제 안에서 사람들에게 관습이 된 인생 주기를 일컫습니다. 쉽게 말해 사회적 시계는 사람들에게 시간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하나의 기제를 말합니다. 특정 사회나 문화 체제 안에서 관습처럼 여겨지는 인생 주기를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등 특정 나이대에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발달과업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일컫습니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사회적 시계의 압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과 기준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은 연령 규범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압력에 못이겨 사람들은 사회적 시계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지만 특정 나이에 타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면 불안과 조급함을 느끼며 '실패한 느낌'에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의 기준이 과거에 비해 대폭 증가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데도 불구하고 과업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누구보다 노력은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기 시대에 사는 그들에게 사회적 시계의 압박까지 가하는 건 고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도 제한이 없는 도로

아우토반

모든 도로가 속도제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속도가 무제한인 곳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에 있는 아우토반(Autobahn)입니다. 독일어로 고속도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막상 아우토반 가보면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똑같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펼쳐진 도로 그 위를 100~120Km로 달리는 평범한 차들 마치 영화 매드맥스처럼 분노의 질주만 가득할 거 같은 도로는 너무나 평온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1차로에 총알처럼 날아가듯 달려가는 차들을 볼 수 있습니다. 거진 200Km는 족히 넘게 달리는 차가 멈추지 않고 아우토반을 가로지르는 걸 보면 이곳이 정말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우토반을 이야기 한 이유는 속도가 중요한 도로일지라도 그 제한이 없는 곳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우토반 1차로를 주행하는 차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회의에 늦은 회사 임원', '오늘 마저 지각하면 낙제받는 아들을 위해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 '비싼 고성능 차를 인계받고 스피드를 즐기고 싶은 새차 주인', '답답한 게 싫어 그저 빠른 속도가 좋은 사람','실수로 1차로에 진입해서 속도를 맛본 초보 운전자'등 다양한 이유로 그들은 1차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차선을 벗어나면 바로 과태료 대상이지만 제한받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도로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면 사회적 시계에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도 될까요?



나만의 속도

나만의 속도

사람들은 무언가를 쫓을 때 다른 사람보다 몇 걸음만 늦어져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과 초조를 느끼고는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당신은 뒤처지지 않았고 자신의 시간대에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의 소셜 웹 사이트 '레딧'에서 화제가 되었던 글이 있습니다. 그 전문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New York is 3 hours ahead of California, but that doesn’t make California slow.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 빠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뒤쳐진 것은 아닙니다. )

Someone graduated at the age of 22, but waited 5 years before securing a good job.

(어떤 사람은 22세에 졸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5년을 기다렸습니다. )

Someone became a CEO at 25, and died at 50.

(어떤 사람은 25세에 CEO가 됐습니다. 그리고 50세에 사망했습니다. )

While another became a CEO at 50, and lived to 90 years.

(반면 또 어떤 사람은 50세에 CEO가 됐습니다. 그리고 90세까지 살았습니다. )

Someone is still single, while someone else got married.

(어떤 사람은 아직도 미혼입니다. 반면 다른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 )

Obama retired at 55,& Trump started at 70.

(오바마는 55세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70세에 시작했습니다. )

Everyone in this world works based on their time zone.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합니다. )

People around you might seem to be ahead of you & some might seem to be behind you.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앞서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보다 뒤처진 것 같기도 합니다. )

But everyone is running their own race, in their own time.

(하지만 모두 자기 자신의 경주를, 자기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

Do not envy them & do not mock them.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놀리지도 맙시다.)

They are in their time zone, and you are in yours.

(그들은 자신의 시간대에 있을 뿐이고, 당신도 당신의 시간대에 있는 것뿐입니다. )

Life is about waiting for the right moment to act.

(인생은 행동하기에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

So, relax.

(그러니까 긴장을 푸세요. )

You’re not late.

(당신은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

You’re not early.

(이르지도 않습니다. )

You are very much on time.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아주 잘 맞춰서 가고 있습니다.)


그중 첫 문장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뉴욕 시각은 캘리포니아보다 세 시간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캘리포니아 시간이 느려진 건 아니다. 출처를 찾지 못했지만 영화 속 대사를 인용했다고 합니다. 같은 미국이지만 큰 땅덩어리 덕분에 뉴욕과 캘리포니아는 시차 때문에 시간만 다를 뿐 결국 다른 건 없습니다. 이렇듯 나만의 시간대에서 나의 시간을 잘 계획하면 됩니다. 삶은 행동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죠.



나만의 속도로 삽시다!

종이접기

일본 우주공학 박사인 '고료 미우라(Koryo Miura)'는 자신의 시간대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종이 접기에 푹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종이 접기로 낭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공 분야에 대한 이상과 포부까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료 미우라는 종이 접기가 너무 즐거웠고 최선을 다해 종이접기를 연구했습니다. 그 후 그는 '미우라 접기'라고 불리는 놀라운 종이접기 방법을 발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우라 접기'는 항공우주 분야의 접이식 태양에너지 패널부터 의학 분야의 인공혈관 지지대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면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했던 그가 오히려 압박을 못 이겼다면 '미우라 접기'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사회적 시계 개념을 정립한 세 사람 중 버니스 뉴가튼(Bernice Neugarten)은 이 이론을 제시할 때 사회적 시계는 각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나이는 관습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시계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 자신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타인의 속도로 걱정을 들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 의무감을 깨고 변화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들조차 주변인들과의 대립은 둘째치고 자기 내부에 남아 있는 통념 때문에 더 힘들어한다. 사회는 생각보다 느리게 변한다. 머리는 변해도 몸과 마음은 그대로라서 사회적 인식이 뼛속까지 변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리더나 책임자가 되는 일도 사회생활에서 연차가 쌓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져왔다. 회사에서뿐만이 아니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이라는 말에는 성숙, 의무, 일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거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럴 때, 아니, 그럴수록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상의 시계에 맞춰 나의 속도와 다르게 꿈꾸고 있다면 이제라도 내 속도에 맞춰야 한다.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자의 말로는 편치 않은 얼굴뿐이다.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 같은 것은 없다. 성숙과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꼭 해야 하는 일도 없다. 자기만의 시간과 호흡을 지키 며 살면 얼굴이 천진해진다. 그 아름다움이 진짜 성숙이지 않을까?

- 김유진, 『매일 하면 좋은 생각』, 위즈덤하우스(2022) -


자기만의 시간으로 살면 얼굴이 '천진해진다' 라고 표현하는 김유진 변호사님의 이야기로 마무리 합니다. 제 속도로 살면서 천진해진다의 뜻 처럼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자연 그대로 깨끗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 출처

- 황양밍 장린린『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미디어숲(2022) -

- https://introvertdear.com/news/infp-meaning-status-money

- https://milavidabreve.tistory.com(번역 출처)

- 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1968

-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2/02/05/RSJ7ZL45JJHSXLLBXLV4BPIV3Q/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371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의 조깅으로 걱정을 덜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