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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코더 Sep 15. 2020

개발자에게 글쓰기란?

고코더가 글쓰기를 권유하다

 

그 옛날 컴퓨터

 어릴 적 제 방에는 그 당시 모든 어린이들의 소망인 데스크톱 컴퓨터가 한대 있었습니다. 삼성에 다니는 아빠는 직원가를 이용해 아주 싼 가격으로 귀하고 귀한 삼성 컴퓨터를 내 방에 들여주셨습니다. 뒤통수가 튀어나온 에어리언처럼 생긴 CRT 모니터 때문에 책상 절반을 잡아먹었지만  좁아진 크기보다 디지털 화면으로 새롭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모니터는 신세계였습니다. 컴퓨터 본체는 성능에 비해 너무 크고 튼튼한 케이스로 제작되어 있었습니다. 그 큰 부피 덕분에 책상 밑에 놓고 발 받침대 사용하였습니다. 삼성 로고가 박힌 키보드도 역시 크기가 유난히 크고 넓이가 컸었습니다. 두더지 게임을 하듯 타자를 쳐도 고장 나기는커녕 오히려 튼튼해졌던 착각이 들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났습니다. 옛날 컴퓨터는 부팅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하지만 윈도 98이 보여주는 화려한 창문 애니메이션에 눈에 사로잡혀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멍하게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조금 일찍 체험한 삼성 컴퓨터 덕분에 남들보다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을 일찍 꾸게 되었습니다. 


 초중고부터 장래 희망은 항상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개발자가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일 야근해야 하는 3D 업종과 같이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좋고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아서 특목고 컴퓨터 게임제작과를 입학하기를 원했지만 어이없게도 경기도 하남까지 서류를 내러 가는 길을 헤매 서류 접수도 못하고 떨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일반적인 사무직을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다시 개발자로 뛰어들었습니다. 운 좋게 집 앞에 있는 벤처기업에 인턴으로 합격하였고 그 기점으로 지금까지 개발자라는 직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교보문고라는 회사에서 개발자로 만족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원을 간단하게 만드는 게 바로 정리

 코딩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복잡한 생각의 풍선을 만듭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은 휘발성에 가깝습니다. 중요하지 않는 정보는 금방 날아가게 되고 까먹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의 힌트를 남기기 위해 어딘가에 적어두고 정리해놓으면 다시 꺼내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윈도 기본 프로그램인 메모장에 열심히 정리하였습니다. "java 배열.txt", "닷넷 함수.txt" 이런 식으로 하나의 정보를 하나의 텍스트 파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날아가면 그동안의 기록한 파일이 한 번에 사라지는 걸 경험하였습니다. 그때 남긴 메모는 지금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하였습니다. 이전에 방식과 동일하고 저장 위치를 네이버 클라우드에 폴더를 만들어 업로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도 큰 단점이 존재하였습니다. 매번 클라우드에 접속하고 업로드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생산성은 매우 떨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기록에 대한 고민을 하다 에버노트를 만났습니다. 각종 코딩 기록을 이곳에 남겨두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편리한 인터페이스 덕분에 쉽게 기록하고 정보를 찾을 수 있어서 점점 노트의 양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코딩 정보만 저장하다가 독후감, 일기, 맛집 정보, 일상정보 등 다양한 자료까지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버노트 데이터베이스 용량은 20G에 4000개가 넘는 문서로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혼자만 간직하기 조금 아쉬워서 활용할 방안을 찾다가 온라인에 다른 개발자들을 위해 정보도 공유하고 자료들도 다시 정리하기 위해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코딩 레퍼런스를 하루에 평균적으로 강의 형식으로 매일매일 쉬지 않고 3개 이상의 글쓰기를 하였고 꾸준하게 3년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꽤나 많은 방문자 수가 접속하는 일명 파워블로거가 되었습니다. 협찬이나 각종 제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개발자를 위한 캔들부터 국립 미술관 홍보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블로그 운영으로 알게 된 건 제가 글쓰기를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일명 글쓰기 근육이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고 흥미를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블로그 한쪽에 코딩과 섞여서 가끔 쓰던 개발자 에세이를 좀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서 플랫폼을 찾던 중 작가 서비스인 브런치를 시작하였습니다. 

직접 그린 연필

 작가 심사 합격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지만 용기 있게 그려왔던 웹툰 3개로 심사를 받았고 운 좋게 한 번에 통과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써왔던 개발자를 위한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전과 달리 코딩 강의가 아닌 나의 생각을 담아내는 수필 형식의 에세이였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구독자수가 약 700명이 되었고 한 IT 출판사는 자기 계발적 에세이 글인 '개발자 청춘 상담실'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정말 운 좋게 개발자지만 인문학적 글을 쓸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생겼고 오늘도 열심히 집필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발자와 글쓰기란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고 하지만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감을 줍니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외롭게 빈방에 홀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은 창문이 있는 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삶을 개척 해내가며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방에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꿈을 키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고 창의력을 만들어 내는 고귀한 작업입니다. 개발자는 코딩을 합니다. 이를 좀 더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컴퓨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어쩌면 언어만 다르게 글쓰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직업 중에 하나가 개발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개발자분들에게도 글쓰기를 도전해보기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사람들보다는 글쓰기 근육을 부족할 수 있지만 결국 쓰는 사람만이 글쓰기를 할 수 있고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평범한 코딩 일상을 탈피하고 위해 또 나를 위해 자신의 생각을 담아 좋은 인사이트를 주는 글들을 써 내려가길 겁 없이 권유하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참조 문헌 : 

유영만, 『 오늘부터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려면 결심해야 하는 단 한 가지 』, CBS, 세바시 12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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