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코더 Nov 16. 2020

마감기한 안 지키는 작가

조기마감이 좋은걸까?

마감


 마감이란 단어는 많은 곳에서 쓰입니다. 학교 시험 시간이 마감되면 더 이상 문제를 풀지 못하고 제출해야 할 때부터 마감과 인생은 함께 시작됩니다. 회사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심지어 오늘 타고 온 지하철도 운행하지 않는 마감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마감을 향해 나갑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허무합니다. 끝나기 위해 시작하는 것, 태어나는 것도 죽기 위해서 마감하기 위해 모든 게 탄생하는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책을 쓰는 과정은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의 첫 글자가 쓰이면 마감의 순간까지 달려갑니다. 첫 단행본 서적인 "개발자 청춘 상담실(가제)" 1차 원고 마감을 15일 정도 앞당겨서 제출하였습니다. 책은 보통 3차 원고 마감 후에 출판됩니다. 1차 원고는 보통 방향성을 잡기 위해 작성하며, 출판사에 따라서 1/3 정도의 분량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30페이지에 분량을 채우고 2번 정도 탈고 후에 1차 마감을 했습니다. 평소에 부지런한 성격 때문인지, 급한 성격 때문인지 11월 30일까지 느긋하게 좀 쉬려고 했지만 예전부터 기획하던 "저녁 작가 프로젝트"를 이번 연도 안에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마감을 앞당긴 이유도 있습니다.


 보통은 마감기한에 치여 있는 작가들의 후기를 많이 읽어보았지만, 조기 마감한 작가의 심정은 없는 거 같아 남깁니다. 문과생이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기쁨도 잠시 또 다른 마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마감 기한, 계약직 마감 기한 첫 사회생활은 곧바로 끝을 향해 달려갔고, 그 끝은 매우 허무하고 상처만 가득한 기억이 납니다. 큰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으로 열심히 이직 준비를 했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도 역시 이미 지난 간 것에 대한 감사와 만족보단 또 앞으로 이겨내야 하는 마감들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못하면 어떡하지?, 과장 진급은 될 수 있을까? , 정년퇴임은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린 그렇게 죽을 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다음 마감기한까지 해내야 할 것들을 만들어 가는 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1차 원고 조기마감 후에 잠시 몸살이 났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또 2차 마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반차를 쓰고 집에 일찍 와서 예전에 본 영화를 아무 의미 없이 계속 돌려봤습니다. 그렇게 브런치에는 저녁작가의 자격을 말하면서 매일 꾸준하게 글 사료를 먹고 글을 쓰라고 권유하고 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저 영양가 없는 군것질로 의욕 없이 그저 그렇게 흘려 보냈습니다.



조기마감 보다 중요한건 



 점점 사회는 급하게 서둘러 가는 걸 권유합니다. 이른 나이에 조기 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강연에서 최연소를 자랑하며 자신의 자랑을 멋들어지게 늘어놓습니다. 또 느리게 가는 게 마치 죄악시되기도 합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해서 퇴근을 했습니다. 이유도 모른 체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페달을 밟아대고 오늘은 몇 시에 도착했지 하면서 시계를 보고 퇴근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방향을 잘못 튼 자전거가 평소에 지나던 공원 안으로 안내했고 2년 가까이 지나온 그곳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호수와 초록색 나무들이 쉼을 주었고 그 후로 겨울을 제외한 계절은 항상 퇴근길 공원에서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집에 늦게 오던 기억이 납니다.


 개발자에게는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생에서도 빠르게 성공하는 게 만사일까?라는 고민을 합니다. 그렇게 빨리 달려가서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속도로 인해 일그러진 형형색색의 잔상 속에 남은 네온사인 빛으로 보인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남을까 생각합니다.


 조기마감을 했다는 건 목적에 사로잡혀, 글 쓰는 기쁨을 잠시 내려두었던 몇 달이 아니었을지 되새겨 봅니다. 




 그런데 결국 오늘도 글을 적었네요.
 


작가의 이전글 함께 하는 글쓰기가 주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