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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코더 Nov 25. 2020

"출근이라는 자존심의 다림질"



 구름 너머 해가 뜨기 시작한 아침, 안개와 같이 자욱한 미세먼지가 눈앞을 가립니다. 마스크를 손에 쥐고 있었더니 벌써 콧속에 노폐물이 잔뜩 쌓인 기분입니다. 겨우 몇 백만원을 벌려고 출근하는 우릴 비웃는 래퍼들의 돈 자랑 멜로디가 화장품 가게에서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골목을 지나 대로변을 걷습니다. 삐뚤빼뚤한 보도블록이 엉성하게 이어 붙여져 있고 더러워진 그 위를 걷습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느낌이 가는 잔여물들이 오늘도 널려 있습니다. 한가득 버려진 '담배꽁초', '일회용 커피잔', '야릇한 전단'까지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길거리 쓰레기들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던 어린아이는 없어졌고, 익숙한 듯 버려진 이 물건들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걸어가는 어른만 남아 있습니다.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신호등 불이 깜빡이듯 생각도 고민도 하나씩 바뀌어 갑니다. "전월세 대란", "임금동결" , "정리해고" , "물가상승" ,  "건강"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지하철 입구를 따라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갑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부를 계층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가난한 기택의 반지하 집을 들어서는 것처럼 나의 자리인 거 마냥 계단을 따라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비싼 집 값을 자랑하는 동네의 지하철 역은 오늘도 앉을자리가 없습니다. 원래 그랬던 거 같습니다. 나의 자리는 항상 가장 불편한 입구 쪽 모퉁이였습니다. 자리가 나면, 먼저 탑승했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먼저 탄 사람은 항상 앉아 있었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지정석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열차 칸 중앙을 비집고 들어가 빈자리를 악착같이 욕심내서 차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눈가를 찌푸리게 하면 단 10분이라도 앉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1시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며, 내 자격에 맞는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자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복도 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습니다. 5살이나 어린 신입사원 덕분에 끝자리는 이제 모면했습니다. 입사한 순서대로 발급받은 사 번을 입력하고 컴퓨터를 로그인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크롬을 실행합니다. 첫 페이지가 자동으로 인트라넷에 접속합니다. 환영 메시지가 뜨고, 코로나 문진표에 팝업창에 의무적으로 이상 없음 버튼을 클릭합니다. 컴퓨터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8시 50분을 가리킵니다. 10분 동안의 짧은 휴식시간이란 여유를 뒤로하고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에 밟고 지나온 쓰레기들처럼 어제의 내 자존심을 구겨놓았던 '상처 주는 말', '냉혹한 평가', '차별' 따위 들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나는 장롱 속에 처박아둔 셔츠처럼 주름져 있습니다. 구겨질 때로 구겨진 나의 자존심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나라는 존재를 빳빳이 세우기 위해 출근이라는 다림 짐을 합니다. 저녁이면 다시 주름지고 구겨지고 얼룩이 묻어나겠지만, 내일 다시 아침 꾹꾹 눌러 또 다림질할 것입니다.


어제의 나를 다림질하기 위해, 내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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