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그림자

by earl grey

한때 '아름다움'은 우상이 되어 나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은 아름다움에 따라 평가되었고, 아름답지 않다면 존재할 이유조차 없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L 사의 디자이너가 된 후 내 감각기관은 더욱 민첩하게 움직였고, 국내외 유명브랜드의 신상을 파악하고 핫하고 힙한 장소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아름다운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촌스러운 것들은 죄악이 되었다. 스타일이 올드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능력치가 절반쯤 깎여 보이는 병에도 걸렸었다. 디자인 시안의 색상이나 레이아웃이 완벽하지 않으면 짜증과 분노가 섞인 감정이 온종일 나를 쥐고 흔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마다 나는 주말이면 강박증 환자처럼 하나의 음악만 재생해서 듣곤 했다. 옆방에 있던 동생이 나에게 제발 다른 음악을 틀어달라고 사정을 했을 정도였다.


내 가치판단의 우선순위는 ‘아름다움’이었고, 어떤 철학이나 신념 같은 건 내 삶에 자리 잡을 틈도 없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나는 별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일상의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고, 누군가는 툭툭 내뱉는 내 말투에서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기에 미안하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낯선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나는 항상 그런 건 아니었지만, 꽤 유머 감각이 있었고, 표현하지 않아도 정도 많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며 연소하여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영혼은 작은 한숨 소리에도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쯤 학교 선배가 여유를 좀 가지라며 한 공연에 초대했다. 공연이 끝나고 빈곤 국가 아이들을 위한 후원 독려 홍보영상이 상영되었다. 한 5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뭇가지를 물에 적셔가며 무덤가 흙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하지만,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매일 무덤가에 간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문득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나에게 36색의 크레파스를 사주셨던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원하면 가질 수 있었던 선물들, 내가 잘하면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당황스럽고 화가 나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홍보영상 팸플릿을 하나 챙겨 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겨울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바람이 내 영혼 구석구석까지 숨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내 영혼은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끊임없는 질문들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뭘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를 위해 힘껏 애쓰며 달려왔던 일들이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것을 매일 보고 만들면서도 정작 내가 아름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퇴사했다.


잠시 일을 쉬면서 아름다운 것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들에 귀를 기울였다.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인문학 강의도 들으며 삶의 본질을 탐구했다. 여전히 아름다움은 내 삶의 일부였지만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다. 나는 시선의 중심을 잡으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했다. 호주 친구가 보여준 영상은 내가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본질을 흔들어놓았다. 그 영상의 한 장면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거칠고 둔탁한 손, 날카로운 비명, 그리고 멍한 눈빛.

그것은 나를 멈춰 세웠고,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질문으로 이끌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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