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 않는 겨울의 흔적

by earl grey

매년 겨울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두 가지의 걱정이 든다. 하나는 겨울 한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한파 소식만 들어도 몸이 움추러들고 에너지가 방전되는 듯하다. 차가운 작업실로 가서 히터와 난로를 켜기까지 시간은 늘 힘들다. 그래도 이건 괜찮다. 조금만 참으면 노곤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또 다른 걱정은 겨울에 더 선명해진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녹지 않는 이 걱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쩌다 보니 나는 14년째 비건 패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비건 패션은 동물의 희생이 없는 제품을 사용하고 동물을 도구로 이용하는 활동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비건 패션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이 일이 내 허영심과 이기심을 매일 마주하는 불편한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편하지 않다. 매년 친구들의 SNS에서 어그 부츠와 구스 패딩을 볼 때마다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며 씁쓸함을 삼키는 나 자신. 이 모든 것이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한다.


나는 종종 이런 불편한 일들이 시작됐던 때를 기억해 본다.

그날은 1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 호주 친구에게 영어를 배우기로 했었다. 윤기가 흐르는 라쿤 털이 풍성하게 달린 모자와 오리털이 빵빵하게 들어있는 야상점퍼를 뽐내며 집 근처 카페로 걸어갔었다. 기분 좋게 영어수업을 마치고 못다 마신 커피를 마시며 친구는 물었었다.

“ 지영, 네 옷에 있는 털이 뭔지 알아?”
“응, 라쿤 털이야. 다 리얼퍼야!”
“그럼 그 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알아?”
“음. 잘은 모르는데 양털처럼 깎아서 만들겠지? 아마도?”
"음.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영상 하나 보내줄게. 보기에 좀 힘들 수도 있어. 괜찮겠어?"

“응, 괜찮아!”
다음날 친구가 보내준 영상을 보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불편하고 피로하고 슬픈 날들을 보내게 될지. 그리고 동시에 나의 삶에 단단한 평온함이 스며들게 될 줄 알지 못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