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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Feb 10. 2023

"기자에서 연구원 되니 어때요?"

쪼하의 부캐 이야기-직장 편(1)

거의 만 6년을 기자로 일했다. 한국일보 인턴과 교육 전문 매체에 잠깐 몸담았던 시절을 포함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기자 외길 인생을 살았다. 중간에 공백기(2020년)가 있기야 했다. 교육 전문 매체를 거쳐 IT 전문 매체에 입사해 2018년 블록체인/가상자산 취재를 시작했고 2021년부터는 아예 블록체인/가상자산 전문 매체로 옮겼다. 지금도 여전히 블록체인/가상자산 전문 매체에 다니고 있다.


기자들이 대체로 종합지 또는 경제지, 통신사에서 경력을 쌓아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이력인 셈이다. 함께 언론사 취직을 준비한 친구들 중 전문지만 전전하는 기자는 나밖에 없다. 보통은 전문지에서 경제지 또는 종합지로 넘어가거나 아예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한다.


특출 나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특히 가상자산 전문 매체에 합류한 후 여러 굵직한 단독 기사도 썼고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제정에 영향을 준 기획기사도 내보냈다. 물론 나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었다. 다소 끈기가 부족한 나를 끌어당겨준 편집장취재 방향을 같이 고민해 주던 선배들,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이 있었다.


2021년 국내 스캠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취재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회사의 도움으로 잘 해결하고 또 어찌어찌 기자 일을 이어나갔다.


그런 내가 전직(?)을 하게 된 이유는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몇 건의 단독 보도를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전문가인양 자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오만이었다. 전문가로 불려 나간 방송에서 꽤나 치명적인 실수를 한 스스로를 보면서 '이대로는 밑천이 드러나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2018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가 주최하는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1회 행사를 취재했었다.


그때부터 기사거리로 들여다보지 않던 보고서를 꼼꼼히 읽게 됐다. 이전에 다니던 지면 매체에서는 "웬만하면 보고서는 기사로 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미 공개된 자료를 기사로 내보내봤자 새로운 소식(news)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당시 다니던 매체에서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덕분에 여러 양질의 보고서를 기사로 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일과 공부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다. (꿀이다!!)


그렇게 한 번 보고서의 세계로 빠져드니 이동 중에 틈틈이 보고서를 챙겨볼 정도로 재미가 붙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은 보고서들을 통해 모듈러/모놀리틱 블록체인 등 기술적인 용어도 알게 됐다. 여러 밋업과 세미나에서 하는 기술 얘기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침 비들 아시아(BuidlAsia),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KBW) 등 굵직한 블록체인 행사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자처해서 코즘와즘, 스타크웨어 등 다소 난해한 프로젝트 대표의 인터뷰를 맡았고, 그 기사들이 나간 시점부터 트위터에 올린 글이 공유되기 시작하고 팔로워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블록체인, 그리고 웹3는 정말로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분야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기술적인 기사만 쓸 수는 없었다. 많이 공부해서 깊게 쓴 기사보다는 굵직한 특종이 파급력도 좋았다. 조회수부터가 뚜렷하게 차이 났다. 예전의 단독 기사 조회수는 인터뷰 기사 조회수의 10배를 훨씬 웃돌았다.


또한, 가상자산 거래소 또는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단독 기사들은 매번 쏟아져 나왔고 기자로서 해당 기사가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물론, 매일매일 내 기사도 써야 했다.


흔히 한 매체에서 단독이 나왔을 때 다른 매체들은 '물을 먹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기자일 적의 나는 이렇게 믿었다: 기자는 물을 먹은 만큼 남들에게도 물을 먹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빠져 죽을 수도 있다. 그 위기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2019년 말 지면 매체를 그만뒀을 때의 번아웃이 스멀스멀 살아났다. 인생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저 이제 연구원 할래요." 2022년 10월, 지금의 회사 <디지털애셋>에 합류하기 전 대표님을 만나 그렇게 말했다. 브런치에서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를 연재한 점과 트위터에서 분석 글을 올리며 팔로워를 끌어모은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지금의 나는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고 있다.

 

그래서 어떠냐고? 훨씬 좋다!

그런데 뭔 일을 하냐고?


앞으로 '쪼하의 부캐 이야기-직장 편'에서는 연구원으로서의 일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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