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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Jul 30. 2022

케이블 방송 고정 패널 썰

쪼하의 부캐 이야기 - 방송 편(2)

<쪼하의 부캐 이야기>는 방송 패널, 강연자, NFT 창작자 등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풀고자 합니다. <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와는 별도로 진행하는 코너입니다.


부캐 이야기 1편으로 지상파 방송에 출연했던 이야기를 풀어봤다. 그때로부터 몇 개월 후 회사를 통해 케이블 TV 고정 패널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신규 방송인 데다 전문가 패널 역할이라 처음부터 PD님·작가님과 기획부터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웠다. 업무와의 병행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후회해도 일단 해보고 후회하기로 했다. 


당시 M 채널에는 암호화폐 프로그램이 없었다. 경쟁사인 H 채널의 암호화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뒤늦게 기획에 나선 것이다. 출연 제의를 받은 2021년 10월 비트코인이 상승세를 이어가던 점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테다.


방송 시작 전 PD님과 작가님을 만나 프로그램 제목과 구성, 진행자·아나운서 섭외 등을 논의했다.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 의식은 '암호화폐 산업을 무조건 좋게 보지 않고 그 주의점도 진단해보자'였다. 그 주제 의식을 담아 프로그램 제목은 <코인레이더>로 결정했다. 최대한 직관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다.


프로그램은 주요 뉴스/전문가 주제 진단/암호화폐 스캠 소개/한 주의 시황 이렇게 4개의 코너로 구성됐다. (암호화폐 스캠 소개 코너인 '코인주의보'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시는 손수호 변호사님이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진행을 맡으셨으며, 주요 뉴스와 한 주의 시황은 신입 아나운서님이 담당했다.


암호화폐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하는 PD님과 작가님, TV 출연은 많이 하셨지만 진행자는 처음 맡는 변호사님, 고정 패널이 처음인 나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으신 아나운서님. 그렇게 서툰 5명이 모여서 만든 방송이 8개월 동안 이어졌다. 34회를 끝으로 현재는 막을 내렸지만, 처음 해 본 방송치고 꽤나 오래갔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




<코인레이더>는 스튜디오 녹화 방송이었다. 방송으로 송출되는 시간은 30분 내외였지만, 녹화는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코인레이더>의 주요 코너 '코인 탐구생활'에는 진행자, 나, 전문가 패널 이렇게 셋이 등장했다. 암호화폐를 하나도 모르는 진행자의 질문에 나와 전문가 패널이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진행자가 암호화폐를 잘 모르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었다. M 채널의 주요 시청자 층이 암호화폐에 이제 막 투자하려는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변호사님이 정말로 몰라서 던진 질문이 오히려 예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방송에서 내 역할은 고정 패널+섭외 지원+대본 감수 등이었다. 고정 패널에 보조 작가의 역할까지 겸한 셈이다. 주제가 정해지면 알맞은 전문가를 내가 추천했다. 그 과정에서도 뒷얘기가 있었다. 처음에 잘 모르고 추천한 전문가 때문에 다른 교수님이 방송 출연을 거부한 것이다. 같은 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본인 평판에 흠이 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해결된 일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전문가를 추천할 때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매주 방송에 출연하다 보니 어떤 주제가 지금 시기에 적합할지 감도 잡혔다. 처음에는 PD님 또는 작가님이 정한 주제만을 따라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제시한 주제가 채택되는 경우가 늘었다. 작가님이 내 의견을 반영해 대본을 일부 수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문가로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방송 준비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목요일 오전 방송이 끝나고 PD님, 작가님과 다음 주 주제를 상의한다. 금요일까지 주제를 확정하고 내 추천을 받아 작가님이 월요일까지 전문가를 섭외한다. 이후 질문지를 월요일 저녁에서 화요일 낮까지 주시면 내가 화요일 밤까지 답변을 달아서 보낸다. 수요일에 완성된 대본을 받아 발음 연습 등 방송 준비를 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수요일은 저녁 술 자리를 피해야 하는 일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특히 수요일 밤에 술을 마시면 방송에 얼굴이 팅팅 부은 채로 나오는 것을 보고, 8개월 동안 수요일 저녁에 술 자리는 잡지 않았다. 답변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모습이 카메라에 어떻게 잡히는지도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해당 방송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기에 회당 OO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출연료는 프리랜서 소득인 만큼, 회사에서 해주는 연말정산 대상은 아니다. 이는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 심지어 국세청 웹사이트 '홈택스'에서 종합소득세 신고 과정에서 자동으로 소득이 잡히질 않아서 꽤나 번거로웠다. 이럴 때는 본인의 소득을 조회하면서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M 신문 본사 7층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마다 녹화를 했다. 지상파 방송 출연 때와 달리 고정 패널인 만큼, 방송사에서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줬다. 이를 위해 적어도 45분 전에는 분장실에 도착해야 했다. 머리 손질이 서툰 내게 헤어 선생님의 솜씨는 늘 놀라웠다.


하지만 연예인이나 스튜디오 촬영을 앞둔 예비신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화장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메이크업 선생님과 헤어 선생님이 내게 피부 화장 리터치, 속눈썹 붙이기, 립 화장과 하이라이트 리터치와 머리 웨이브 정도만 해줬다. 다른 아나운서분들도 리터치와 머리 손질 정도만 받고 방송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잘 모르고 세 번째 녹화 때 선크림까지만 바르고 들어갔다가 메이크업 선생님이 아연실색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 방송을 앞둔 분장실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메이크업 선생님과 헤어 선생님께 "언제 출근하냐"라고 묻자 "기본 5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메이크업 선생님이나 헤어 선생님이 방송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기에 본인 가게를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처음으로 내 화장을 봐주던 선생님은 가게와 방송사 업무 병행으로 인한 과로로 그만두셨다. 


분장실에는 의자가 두 개밖에 없었다. 동시에 두 명만 화장 또는 머리 손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메이크업 선생님 한 분, 헤어 선생님 한 분뿐이라 시간을 제대로 맞춰 오지 않으면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화장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갑자기 5분 후에 생방송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분장실에 뛰어오는 패널들도 종종 있었다. 그 경우 화장을 받다가도 잠시 자리를 양보해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분장실에 들어가면 늘 해당 방송사의 간판급 아나운서분이 화장을 받고 계셨다. 간판급 아나운서인 데다 경력이 상당하신 분이라 그런지 그 위압감이 남달랐다. 그럼에도 메이크업 선생님과 헤어 선생님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며 새삼 방송인의 삶도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방송이 중간에 한 시간 미뤄지면서 더 이상 분장실에서 간판급 아나운서분을 뵐 일은 없었다. 대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아나운서 분과 나란히 화장을 받게 됐다. 내 또래로 보인 그분과는 MBTI 얘기가 상당히 잘 통했다. 메이크업 선생님과 헤어 선생님과도 MBTI, 사주 등으로 수다를 많이 떨었는데 돌이켜봐도 좋은 추억이었다. 



이번 케이블 TV 방송 출연 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정 패널은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해준다. 그러나 연예인이나 예비신부가 아니다! 90% 정도는 화장을 완성해서 가자.


2. 고정 패널은 월급이 아닌 '회당 출연료'로 받는다.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된다고 보면 된다. 연말정산이 아닌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도록 하자.  


3. 아침 분장실은 전쟁터다. 그 점을 감안해 녹화 시간보다 45분 정도 일찍 분장실에 도착하자. 


다음 편에서는 케이블 방송사의 스튜디오는 어떤지, 방송 녹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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