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이가 아이를 낳았네."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육아 관련 게시글에서 가끔 저런 답글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엄마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그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 말이 참 마뜩잖았다. "요즘 보통 30대면 아이 낳던데 그 정도면 어른이지, 뭘 아이라고 한담?" 이러면서 입을 비죽 내밀었다. 유독 그 말이 거슬렸던 건,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어른으로 취급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내가 마주한 것은 양가 어른들이 내미는 '성인이 된 데 대한 채무' 상환 통지서였다. 결혼 전까지는 아무도 내게 최고(催告) 하지 않아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던 빚이었다. 갑자기 부모 봉양 의무에 자녀 양육 의무가 더해졌으며 며느리로서의 도리까지 이자처럼 따라왔다.
그동안 명절은 장대비처럼 시간이 아프게 쏟아져 내리는 듯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와 같았다. 결혼 후에는 자의든 타의든 전을 부치느라 명절에도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일을 쉰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법하지만, 그 시간마저 시댁에서 보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예 삭제되다시피 했다. 매일매일 자로 반듯이 줄을 그으며 시간을 단위로 쪼갰고 시간이 그 줄을 넘어가지 않게끔 최대한 빨리 주어진 할 일을 끝내야만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다가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삶인가? 그렇다면 어른 따위 되고 싶지 않았어."라는 혼잣말을 내뱉기도 했다.
혼잣말과 한숨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탈을 하기에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있었고 시곗바늘을 돌려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세뇌했다. 나는 어른이라고,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만 한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은 더 침체됐지만 친정 부모님이나 친구한테 하소연하지도 않기로 했다. 어른이니까, 어쨌든 '퇴사'라는 선택에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터였다. 아무리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 들 그만둔 건 내 선택이니까, 그로 인해 야기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오롯이 내가 끌어안아야만 했다. 그렇게 입을 다물어 버리자 몇몇 친구들은 내가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한 것처럼 여겼다. 친정 부모님은 나에게 왜 이리 말수가 줄었냐고 했다. 행여 내 마음을 들킬까 싶어서 다른 날 친정 엄마와 전화할 때는 "옆동네까지 와서 계란을 싸게 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나 역시도 "아이가 아이를 낳았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아직도 덜 자란 것 같은 내가 지금의 삶을 꾸려나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는지 누군가는 알아주길 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뾰족해졌다. 풀타임 워킹맘으로 일하는 친구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친정의 도움을 받아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그래서 그 친구의 한탄을 들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나도 내 상황이 나름대로 힘든데도 삭이려 노력하는데도 너는 왜 다 쏟아내는 거야'라는 반발심이 들었다. 남편에게는 "네가 휴직하면 내가 하는 정도로 집안일하지 못할걸?"라며 공격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사실은 "나도 밖에서 돈 벌던 사람이라 집안일 안 해봤음에도 지금 이 정도라도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대단하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뾰족해진 날 조금은 둥글게 갈아준 것 역시 "아이가 아이를 낳았네"라는 말이었다. 최근 몸이 안 좋아서 본가로 요양을 갔다. 친정 엄마한테 부부 사이가 예전만 못 하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해줬다.
"너나, 네 남편이나 둘 다 아이인데 아이 낳아서 기르느라 모두 힘들어서 그래. 30대면 어리지. 내가 너희 키우던 시절을 돌아보면 참 아이였다 싶다."
그 말이 뭐라고, 마음이 말랑해졌다. '아이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라는 말에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이 유독 싫었던 이유는, 오히려 위로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