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연애 괴담 1
지난 연애들을 돌아보면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말도 안 되는 주옥같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는 디자이너였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그는 나름의 디자인 철학이 있었고, 취향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진중한 사람이었다. 차분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와 금새 가까워졌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호기제가 강해서 이상한 사람은 빠르게 알아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와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밤, 그의 한마디가 유난히 거슬렸다. 입에 못담을 욕설이나 이상한 말은 아니지만, 굳이? 싶은 특이한 말이었다.
며칠이 지나고도 자꾸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물어보자, 더 반응이 안좋았다. 나도 참 이상했는데 주변의 친구들까지 이상하다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일까? 당분간은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자꾸 그와의 약속대신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게 되었다.
어떤 금요일 저녁, 나는 친구들과 소소하게 저녁약속을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밥을 먹던 친구가, "야!" 이러면서 휴대폰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피드 속에는 그가 올린 저격글이 올라와있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친한 친구와 금요일 저녁 데이트 대신 약속을 잡았을 뿐인데, 그는 수많은 감성사진, 그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피드 사이에 떡하니 나에 대한 공개 저격글을 올린 것이다.
정말 띠용-하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라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곧이어 바로 글을 내리고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이미 멀어진 마음에 난데없는 공개 비난글까지 맞은 나의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나는 헤어짐을 결심했다. 이미 멀어지던 사이었고, 오래 만난 것도 아니었으니 어려운 결심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사과는 그래, 받을 수 있다고 쳐도, 친구사이도 아니고 남자친구라는 사람에게 공개저격글을 받는 일이라는 것은 내 머리로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인스타그램이 뭐라고... 그리고 도대체 그에게 나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이길래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금요일에 약속을 잡은 것에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일까..? 살면서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일을 머리속으로 꼭꼭 곱씹어 보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되지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행동이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카톡으로 이별을 고했다. 솔직하게 내가 느끼는 바를 전달했고, 장문의 편지 같은 글을 주고받았다. 미안하다고 하던 그는 이내 알겠다고 하고 쿨하게 서로의 안녕을 빌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다음날 그는 다시 한 번 만나보자는 회유의 카톡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로 희망을 주기 싫어서 싫다고 했고, 논리적으로 어려운 이유를 전달했다. 그는 알겠다고 하더니 이내 납득이 안된다는 눈치였다. 한번이라도 만나서 해결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몇 번 달래고 어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인턴을 시작하던 때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에 적응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다. 슬슬 지친 나는 더이상 그의 카톡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 거센 기세로 아침저녁으로 카톡을 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출근길에 확인하면 아침부터 정말 미안하다고 저자세로 나오면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런 답이 없으면 몇 시간 후엔 아니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곤 했다. 마지막엔 십분 단위로 전화가 걸려오더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무지막지한 말을 남겼다.
나는 정말 무서웠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선의 냉탕과 온탕을 혼자서 계속 왔다갔다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내가 누굴만났던 건가 후회가 밀려왔다.
게다가 집주소를 아는 그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데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나는 본가가 가까워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는 뉴스에만 나오던 다양한 그림이 그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무섭다고 그에게 말을 했는데도, 그에겐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계속 너무 무섭다고 이렇게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그가 하고 싶은 말만 늘여놓았다. 길게 만나진 않았지만 짧은 연애 기간동안 그의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음에도 욕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관이었다.
결국 그를 소개시켜준 친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와 그를 동시에 아는 친구들이 나를 대신해 그를 말렸고, 나도 한 번만 더 연락 오면 접근근지라도 신청해야 하는 건가 심각하게 결심한 날 이후로는 연락이 멈춰 마무리되었다. 그에게 이별을 선고한 후로 나는 그 당시 내가 자취하던 원룸에 돌아가지 않았고, 그토록 무시무시한 이별과 함께 나의 아름답지 않던 대학시절 자취의 역사는 끝나 버렸다.
나라고 네이버에서 "접근근지 명령 신청" 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게 되는 날이 있으리라 알았으랴. 하지만 검색결과는 더 절망적이었다. 접근근지를 신청한다고 한들, 아무런 법적인 제제가 가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약한 경고같은 거였다. 그게 과연 미친 사람들에게 실효성이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시간을 두고 돌아보면 그 스스로도 후회스러운 행동을 계기로 나에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은 것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토록 매달린 걸까? 하며 애써 그를 이해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지독한 공포였고, 상대방이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고 범죄다.
그가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겠다던 그 자취방은 그 뒤로 방을 빼는 날빼고는 돌아가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지만 이사하는 날 혹시라도 그가 서 있을까 내가 얼마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이따금 남자 친구였던 존재에게 맞아 죽은 여성들의 사연을 보면서 나는 그저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돌아갈 본가라도 있었지만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그들은 얼마나 매 순간이 두려웠을까.
이런 세상에 살다 보면 어린 시절 남자란 다 조심해야 한다고 공포심을 조장하던 우리 할머니가 내 안에 깨어나는 기분이다. 나를 지키는 엄숙한 다짐으로 오늘도 도시의 연애 괴담을 피해 간다.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