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능력자다.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글을 쓰려는데 우선 낯부터 뜨거워진다. 남과 다름을, 남보다 우월하다는 전제로 혹시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라고 오해받을까 봐서이다.
사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목적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귀찮긴 하지만 마음 모질게 먹고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겸해 등산하러 문밖을 나선 것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이 부족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만큼 요사이 몸도 마음도 다 풀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언감생심(焉敢生心)도 유분수(有分數)지, 감히 어디라고 초능력자라니!
며칠 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전쟁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전장(戰場)의 참혹한 현장은 굳이 종군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해주는 실시간 방송이 아니더라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이 있고, 우린 또한 분단국가의 국민이 아니던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겪는 전쟁 상황이 아니라 한 개인이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전장이란 위험한 곳에 내던져졌을 때 마주칠 두려움과, 상상조차 못 할 비 인륜적 행위를 몸소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전쟁을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내 생애에 있어서 ○○은 없다'라고 단언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변적이든 불가변적이든 삶의 모든 요소들은 웬만해서는 살아생전에 한 번은 반드시 겪게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머릿속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익혀왔던 일들이 내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현실로 나타난 경우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예를 들자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등과 같은 수많은 인재(人災)나, 연평도 폭격이나 천안함 피폭(被爆)과 같은 생각지도 못했던 북의 도발, 포항 지진과 같이 생활 속에서 실제 겪었던 자연재해, 눈을 밖으로 돌리면 9ㆍ11 테러와 동일본 지진과 그에 이은 쓰나미, 지금도 진행 중인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어릴 적 전쟁놀이를 한 경험이 있다. 놀이에서 이겼든 졌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꿈 속에서 정말 상상 속 같지 않은 전쟁터로 내던져지곤 했다. 총을 맞던, 칼에 베이든 생사의 기로에서 몸서리치며 눈을 떴을 때 현실 속에 살아 있는 나는 늘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뿐인가? 어느 날 꿈에는 멀쩡하던 땅이 흔들리거나 갈라지고 내가 딛고 있던 건물이 송두리째 무너지기도 했다. 불이 난 집에서 어린 동생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느라 밤새 악몽에 시달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에겐 꿈에서나 있었던 일들이 현실 속에선 다른 사람들이 실제 겪고 있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대구 앞산 어딘가에 있는 암자에 다녀오시더니 스님으로부터 단 한 자의 글자를 축문(祝文)으로 받아 오셨다. '정(正)'이란 글자인데, 아마도 바른 마음가짐으로 바른 삶을 살면 모든 복이 함께 할 것임을 스스로 다짐토록 한 것임이 분명했다. 어린 나는 어머니로부터 바로 그 계(戒)를 이어받아, 곤혹스럽거나 어떤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순간과 마주칠 때면 마음속으로 '정'을 되뇌곤 했는데, 어떤 일들은 거짓말처럼 내가 뜻한 바대로 풀려 내심으론 크게 놀란 적이 많았다. 정말 이럴 때는 이 마음속 게송(偈頌)으로 말미암아 내게 없던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허황된 생각을 갖기도 했었다. 물론, 철이 들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잊고 지냈지만 말이다.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담임한 반의 학생 수는 62명이었다. 지금은 한 학급의 학생수가 많아도 스무 명 안팎이니 정말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절로 느껴진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수업까지 정규 편성된 수업시수가 24시간인데 학급활동 시간이 더해지면 25시간이 되고, 아침과 저녁 보충수업이 금요일까지 이어져 모두 10시간인데 토요일 오전 보충수업 한 시간이 또 더해져 주당 보충수업만 해도 11시간이다. 여기에 서울대 반이라 해서, 영어와 수학 특강이 격일로 야간에 2시간씩 3일을 해야 했으니 이 수업 또한 6시간이다. 또한 특설반 보강 수업을 주에 최소 2시간 정도 따로 편성해서 주말 당번할 때마다 학생들을 지도해주곤 했다. 어림잡아보니, 수업한 시간이 주당 44시간 정도는 된다. 가히, 담임을 한 학생수로 보나 주당 담당한 수업 시수로 보나 아무리 생각해도 초능력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수치들이다. 이런 세월을 아무런 탈없이 견뎌낸 것이다.
한 번은 선배 선생님과 함께 경북도교육청으로 출장을 갔다. 아마 3학년 대입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 이전의 대학시험 형식)를 앞둔 출장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는 대구와 포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굳이 경주를 경유하는 경부고속도로를 택하지 않은 것은, 평일 오전에는 오히려 국도가 더 한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운전은 차주(車主)인 선배 선생님이 했는데, 회의시간이 오후 2시여서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운전을 하던 참이었다.
안강을 지나 영천으로 가자면 상당히 긴 오르막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마침 시월 중순의 늦가을로 접어들던 때여서 주변 산들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를 구경하면서 막 비탈길을 돌아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 얼핏 보기에도 차체(車體)가 긴, 빈 트레일러 한 대가 굽이진 길을 돌아서 내려오고 있었다. 양방향 2차선 길이라 속도를 늦추긴 했으나, 트레일러가 지나칠 때는 마침 계곡으로 심한 바람이 불어대는 데다 차체에 의한 풍압(風壓)으로 인해 우리가 탄 차가 잠시 비틀하며 흔들리는 듯했다. 그리고선 긴 트레일러의 꽁무니가 막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갑자기 강관(鋼管)이나 화물을 괴어서 고정하는 큰 침목(枕木) 하나가 차에서 풀렸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도로 위로 타당 소리를 내며 떨어지더니 바로 우리 눈앞에서 튀어 올라 차의 지붕 위로 타 넘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우측 계곡 비탈길로 굴러 내려가는 침목을 보고 있자니 마치 현실이 아니라 꿈인 듯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차를 잠시 세우고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정말이지 조상님들의 돌봄이라도 있었던 것 같아 당장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현대판 흑사병인 코로나의 시대이다. 영어 교사를 40년 가까이했으면서도, pandemic이나 endemic 같은 단어들은 교재의 영어 지문 속에서 과연 다룬 적이 있었던가를 기억을 더듬어가며 하나하나 들춰봐야 할 정도로 각각 희소성을 갖춘 어휘들이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이 현실 속에서 매일같이 마주쳐야 할 일상어(日常語)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느닷없이 죽었고, 아직도 죽어가고 있으며, 예고조차 없는 죽음은 이제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누군가가 죽었더라에서 그 사람이 죽었대를 거쳐 이젠 가까운 지인들이나 혈육마저 죽어나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도 코로나가 시작되던 바로 그 해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요양병원에서 거의 격리된 상태로 1년 가까이를 버티시다가 자식들의 면회조차 불가(不可)한 참담한 상황에서 유명(幽冥)을 달리하셨다. 다시 말해, 이 감염병의 시대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도 사람 없는 그런 세상이 도래(到來) 한 것이다.
오늘 질병관리청에서 4차 백신 접종 안내가 왔는데, 3차 접종을 맞은 지 120일째에 접어드는 사람은 예약을 미리 해두던지 아니면 당일로 4차 접종을 하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능력자다!' 돌이켜보니, 지난(至難) 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그 시절을 용케 견뎌 오면서, 더러는 타인의 죽음을 목도(目睹)하며 애절(哀切)해 한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횡액(橫厄)의 그물 속에서 잘도 버텨 온 세월이 아니었던가! '이제부터라도 더욱 바르고 겸손하게 살아가야지',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삶의 원점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밤에는 꼭 꿈을 꾸어야지! 꿈속에선 어김없이 난 초능력자일 테니, 이번만큼은 꼭 새로운 삶을 한번 그려 보리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마법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전쟁 없는 세상, 재해나 질병, 가난과 차별 없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서로 마주 보게 하리라. 틀림없이 그들 속에는, 서로 손 맞잡은 채 반갑다며 웃어 줄 아버지와 내 그리운 누이가 함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