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가가 부른다'라는 TV 가요 프로그램에 전인권이출연해서 존 레넌의 'Imagine'을 우리말로 개사(改詞)한 '사람'이란 노래를 오프닝 곡으로 불렀다. 존 레넌의 원곡 가사가 물질주의를 없애고, 국경을 구분하지 않으며, 종교의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Imagine)하도록 격려하고 있다면, 전인권의 노래 '하루'는 존 레넌의 노래를 매개(媒介)로 스스로를 평화와 자유, 그리고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 정의를 하면서 반복되는 원곡의 후렴구(後斂句)를 그대로 따라 부르고 있다.
워낙 널리 알려진 노래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전인권의 노래는 귀에 익숙한 원곡의 잔잔한 리듬과 함께 호소력 짙은 그의 탁성(濁聲)에 실려 마치 머릿속 곳곳에다 숭숭 구멍을 뚫는 듯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윽박지르듯 내지르는 그의 노래 한 마디 한마디가 '촌철'이 되어 결국 내 심장은 한순간에 허물어지듯 '살인'되어 버리고 만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나도 모르게, 자막으로 나온 후렴구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I'm a dreamer란 가사가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나는 잠을 잘 때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이건 생물학적 꿈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물은 잠을 잘 수밖에 없고 잠을 잘 때는, 흔히 반의식(半意識)의 절반인 깨어있는 상태의 이지(理智)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바로 꿈의 형태로 발현(發現)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난 잠들기 전에 여러 가지 하고픈 일들을 상상하다가 잠들 때가 많은데, 보통 상상 속의 일들은 꿈으로 연장(延長)이 되어 때로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을 잠들기 전 기억해 두었다가 꿈속에서 마음껏 물리적으로 혼을 내며 통쾌해하기도 한다. 물론 잠잘 때의 나머지 반 쪽인 완전 무의식 상태가 되면 내가 생각조차 못한 일들이 꿈으로 발현되어 뜻밖의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의식이 깨어나 있을 때에도 꿈을 꾼다. 그런데 이는 생물학적 꿈이 아니다. 이를테면 몽상(夢想)과 가까운 것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허구(虛構)의 상상인데, 현실 속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생물학적인 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역시도 꿈이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어린아이들에게 '장래 네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제 꿈은 과학자입니다'라고 답하며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어떻게 보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품는 소망과도 같은 것인데, 문장 속의 '꿈'을 '소망'으로 치환(置換)해보면 그 맥락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별 차이는 없다.
그래서 깨어 있을 때의 나는 자주, 'I am a dreamer'이다. 어릴 때 꾼 꿈과 비교해 보면, 지금 꾸고 있는 꿈은 현실적 의미에서 보았을때 몽상에 보다 더 가까운 것이다. 즉, 어릴 적 한 때는 글을 쓰는 것이 실제로 나의 꿈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어른이 된 현실 속의 꿈은 보다 가상적(假想的)이어서, 눈앞의 전인권처럼 중년의 멋진 가수가 되어 담백(淡白)하게 내 지난 인생을 노래하고 싶다. 그렇다! 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아련한 꿈을 지금 꾸고 있는 것이다.
Dreamer(몽상가)가 된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우선, 생물학적 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그 스펙트럼이 넓다. 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 즉 깨어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이기 때문인데, 어떨 때는 잠을 자다 꾼 꿈을 현실 속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며칠 전 잠을 자다 아버지를 현몽(現夢)했는데, 오만 원짜리 신권(新卷)을 아들, 딸부터 손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꿈이었다. 깨어나서도 하도 기분이 좋아, 아버지가 돈 주신 이유를 현실적인 머리로 요모조모 따져가며 무엇에다 쓸까 궁리하다가 결국은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해 두기로 했다. 지난 꿈이 잠에서 깨어나서도 계속 상상으로 이어진 것이기에 이는 생물학적 꿈과 다름 아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 이어서 꾸는 꿈은 그때부터 의식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보다 현실적인 양상(樣相)을 띄게 되는데, 자칫하면 진짜로 꿈이 깨어지는 쓸쓸함을 맛볼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당장 필요할지도 모를 그 아쉬운 돈이 현실 속에서는 신기루(蜃氣樓)처럼 허망하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Dreamer가 되어 꾸는 꿈의 스펙트럼이 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이게 되면 아는 것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의식의 경계는 확장이 된다. 어린아이가 품을 수 있는 꿈과는 외연(外延)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 꾸는 꿈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실제로 장래 이룰 수 있는 꿈이기 쉽다. 이에 비해, 어른이, 아니 내가 지금 dreamer가 되어 꾸는 꿈은 주로 몽환적(夢幻的)인 것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질 때가 많다. 오늘 느닷없이 눈앞의 전인권이 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조금 전 동창생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중 3 때 한 반으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훌쩍 서울로 전학을 가버렸다. 이전에 쓴 '파자마 파티'란 글에 등장하는 강 변호사가 바로 그 녀석이다. 대뜸 5월 3, 4, 5일 가운데 이틀을 각자 형편에 맞도록 일정을 조율(調律)하여 1박 2일로 마찬가지 '파자마 파티' 속 partisan(同志)인 박 백수(白手)의 예천 집으로 놀러 가잔다. 분명, 공일(空日) 아닌 날이 끼어있음이 분명할진대 이렇게 일정을 잡으려는 것은 또 다른 백수의 의사(意思)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 함께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주는 안 백수의 보다 구체적인 계획과 그에 따른 맞춤 일정은 당장 내 마음을 진탕(震盪)하여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남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에, 은퇴한 사람으로서 뜻이 맞는 자(者)들과 함께 유유자적(悠悠自適)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나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인데, 이 얼마나 오랜 세월 오매불망(寤寐不忘) 꿈ㆍ꿔ㆍ왔ㆍ던 일인가!
머릿속 숭숭 뚫린 구멍 속으로 다시 한바탕 바람이 불더니 그 빈자리 속을 무엇인가로 그득하니 채우고 있다. 나도 모르게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기분 좋은 꿈이다. 다시, 하던 꿈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자.
꿈에는 참 종류가 많다. 그 가운데는 잠들었을 때 어쩔 수없이 꾸게 되는 생물학적인 꿈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선몽, 악몽, 흉몽, 태몽, 길몽, 예지몽, 현몽, 자각몽, 잡몽, 영몽, 역몽 등이 전자의 예라면, 백일몽은 후자에 가깝다. 이런 꿈들 중에서, 귀에 익숙지 않은 몇몇 꿈을 중심으로 꿈에 대해 간단히 부연(敷衍)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몽은 현몽(現夢)의 방언인데, 죽은 사람이나 신령(神靈)이 꿈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지몽(豫知夢)은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꿈인데, 신령이 깃들어 있거나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꿈을 꾸기 쉽다고 한다. 자각몽(自覺夢)은 꿈을 꾸는 중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인데, 선잠을 잘 때 꾸기 쉬운 꿈으로 나도 왕왕 자각몽을 꿀 때가 있다. 잡몽(雜夢)은 흔히 하는 말로 개꿈으로 의미 없는 꿈을 말한다. 영몽(靈夢)은 신이 꿈에 보이는 신령스러운 꿈을 말하고, 역몽(逆夢)은 실제 사실과 반대되는 꿈을 일컫는다. 악몽은 불길하고 무서운 꿈으로 흉몽(凶夢)과 그 궤(軌)를 같이하고, 길몽은 이에 반대되는 좋은 징조의 꿈인데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돼지꿈이다. 태몽(胎夢)은 글자 그대로 아이를 밸 것임을 미리 알려주는 꿈인데 재미있는 것은, 위에서 열거한 꿈들 가운데서 길몽과 태몽의 경우 남의 꿈을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는 것이다. 타인이 가질지도 모를 행운이나 이룰 수 없는 염원을 남의 꿈을 통해서라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꿈이란 결국 해몽(解夢)하기 나름이니 굳이 탓할 일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한낮에 꾸는 꿈이란 사전적(辭典的) 의미를 지닌 백일몽(白日夢)은, 위에서 여러 열거한 생물학적인 꿈과 달리 의식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꾸는 꿈인데,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데서 비롯된 말로, 헛된 공상임을 의미하고자 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좋은 의미를 품고도 있는 몽상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 도피(桃避)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상 속에서 허구로 그려내는 백일몽은 그래서 부정적인 측면을 지니기가 쉽다. 따라서 dreamer로서 내가 앞으로 꾸는 꿈은 몽환적인 몽상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꿈일 것이 분명하기에 결코 백일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전인권이 부른 노래의 노랫말을 한마디 한마디 음미(吟味)하면서, 함께 출연한 후배 가수들의 주옥(珠玉) 같은 노래에 젖어들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꿈같은 순간에 빠져들고 말았다. 두서(頭緖)도 없이 주절주절 생각을 늘어놓다 보니 제대로 정리조차 되지 않는 못한 글이 되고 말았지만, 늦은 밤, 끝내 이를 갈무리하고 맞게 될 단잠 속의 꿈이 벌써 기다려진다.
I am a dreamer. When I dream, I'll be such a happy dreamer who can do whatever l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