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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Dec 12. 2022

이발소

면도를 하다가

면도를 하다가 얼굴에 상처가 났다. 물끄러미 거울을 바라보는데, 하얀 종이 위로 빨간 볼펜이 스쳐 지나간 흔적처럼 옅은 핏물이 배어 나왔다. 쓰라린 통증이 따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오랜 익숙한 행동에도 오류(誤謬)가 생길 수 있는 나이구나, 세월 탓을 하며 면도를 마무리하려고 거울로 다시 눈을 돌리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무척 낯설어 보였다.


퇴직을 앞둔 몇 해 전부터 얼굴에 옅은 기미가 생기더니, 잇따라 깨알 같이 검은 점 몇 개가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박 속같이 흰 피부는 아니어도 잡티조차 눈에 띄지 않던 얼굴이었는데, 나이 들어 실 같은 주름이 눈가로 접히면서 그 아래 양볼 위몇 개의 점이 새초롬이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세면(洗面)과 함께 면도를 하고 난 뒤에는 약간의 피부 관리를 위해서 습관적으로 좋은 보습제(補濕製)를 얼굴에 바르거나 마스크팩을 함으로써, 주름 진 양 눈가로 더욱 깊이 파일 세월의 흔적을 감추거나 잠시 늦춰 보려 애를 쓴 적도 있었다.


다시 눈을 뜨고 거울을 본다. 마음속으로,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서 하나하나 자잘한 점들을 지워가며 양 눈가로 접혀 있는 주름을 펴자 스무 살 무렵의 해맑은 내 얼굴이 그곳에 있다. 문득, 어릴 적 동네 단골 이발소 생각이 났다.


이발이 끝나고 나면, 이발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편안히 천장을 보고 누운 자세가 된다. 난로에서 데운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면, 이내 내 가슴도 훈훈해졌다.


고향이 청송인 서른 안팎의 이발사는, 용케도 얼굴 반반한 면도사를 종업원으로 구하곤 했는데, 이번에 온 면도사는 나이도 어린 축에 들거니와 얼굴마저 고왔다. 이발의자 사이를 커튼으로 칸막이 한, 당시 유행하던 밀실 퇴폐 이발소와는 거리가  동네 이발소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발을 하고 나면 면도에다 귀지를 파주, 전신 안마 후에 마지막으로 손, 발톱까지 깎아주는, 가히 풀 코스나 다름없는 서비스이름 난 곳이었다.


 가운을 곱게 차려입은 면도사의 얼굴이 바짝 다가와서 나긋나긋한 손길로 얼굴을 매만지니 이내 콧김이 뜨거워진다. 이전, 몇 차례 내왕(來往)으로 안면을 튼 지라 면도를 하는 중에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지만, 면도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안마가 시작되면서 곳곳에서 예민해진 감각으로 인해 이미 대화가 겉돌고 있다. 미처 예상치 못한 자극으로 곤두선 신경과 그로 인한 분홍 수줍음을 감추려고 마음속으로 1에서 100까지를 헤아리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지만, 창날같이 일어 선 감각들은 좀처럼 수그러들려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략 난감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가난에 못 이겨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왔을 이 앳된 면도사는, 드물게 얼굴마저 예쁜 데다 마음 씀씀이도 고와서, 안마 중 젊은 손님이 어색한 몸짓으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릴 때면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민망한 순간이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당시 동네에는 두 곳의 목욕탕이 있었고, 이에 딸린 이발소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은 퇴폐 이발소였다. 한 달 전쯤 일이 있어 목적지인 칠곡으로 향하던 중, 일부러 경로를 바꿔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를 경유(經由)하였다. 재개발로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동네 곳곳에줄줄이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고, 도로를 경계로 하여 구역을 나누고 있는 맞은편에는 단골 이발소를 포함해서 옛 동네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지금 내가  곳이 어디쯤인 가를 정확히 알려주었다. 


낙원(樂園) 목욕탕과 낙원(Paradise) 이발소.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퇴폐 이발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젊은 시절 내게 있어서 한 때 낙원이자 파라다이스이기도 했던 단골 이발소는 비록 업종의 명맥(命脈)은 끊어졌지만 건물만큼은 고스란히 남아있어, 지난(至難)했던 세월의 흔적과 함께 설레고 아찔했던 젊음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다.


다시,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다. 다림질한 듯 반반했던 얼굴 위로 그늘이 고, 그 사이사이로 골이 파여있다. 세월의 그늘이고 고랑이다. 베인 곳으로부터 스며 나오던 피는 멈춘 지 오래지만 그 상처는 여전히 쓰라리다. 가만있자, 면도를 타인에게 온전히 맡겨 본 적이 과연 언제 적 일이었던가? 끝 모를 편안함에 묻혀서 나도 모르게 곤한 잠에 빠져들기도 했었던 지난날의 추억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것인가? 면도를 마무리하던 내 손길이 갑자기 서투르고 어지러워졌다.


사실, 이발소를 글감으로 떠올린 것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포항에서 저녁을 함께 하던 날, 낮에 미리 둘러본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이발소 때문이다. 이발 표시등(標示燈)의 빨간색(동맥), 파란색(정맥), 하얀색(붕대)이 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지만, 아침에 면도를 하다 얼굴이 베어 상처 난 자리에서 스며 나오는 핏빛을 보고는 며칠 전 마음속 깊이 눌러 두었던 이발소가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지난날 추억은 이미 지난 일이기에 그저 아름다울 뿐이라고 했던가? 젊은 날, 꽃다운 나이의 면도사의 미모(美貌)에 이끌러 이발소를 드나들던 추억까지 아름다왔노라고 강변(强辯)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거울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스무 살, 마음속 내 얼굴은 핸섬하기 그지없다.


그래, 누가 뭐라든지 자뻑한 이 순간만큼은!


이글은 작년 이맘때 쓴 글입니다. 올해 4월 이후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 지난 글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하던 차에 이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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