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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Dec 26. 2022

행님, 안녕하심까?

보통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대해 무덤덤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어떨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상견례를 한다던가 결혼식 당일 하객을 맞을 때가 그러하다. 특히, 머리가 백발이거나 머리숱이 적어 정수리가 훤히 드러날 경우에는, 난생처음 염색을 하거나 임시로 가발을 빌려 쓰기도 한다. 얼마 전 혼사가 있었던 내 친구가 그랬었는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친구는 가발을 쓰지 않는 편이 오히려 중후하면서 노년의 신사다운 면이 묻어난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으로 볼 때, 이 날 만큼은 듬성듬성한 머리숱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잠시 외출을 하려고 샤워를 하다 발목 아래까지 물이 잠기길래 욕조 아래를 살피니 머리카락이 얼키설키 얽혀 배수구를 단단히 막고 있다. 우스개 삼아 하는 말로, 물 샐 틈 없다더니 바로 그 꼴이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물기에 젖어 뭉쳐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사이드러난 정수리가 분홍빛 속살을 훤히 내보이는 것이 몹시 거슬려 보인다. 문득,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 송년회에서 가발을 머리 위에 얹고 나타난 친구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마음이 혹 해진다. 나에게도 장성한 아들이 있어 혼사가 바로 눈앞인 것이다.


올 초,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 동료교사이자 아끼던 후배 S 선생님이 결국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5년 가까이 폐암으로 고생을 하는 중에도 늘 당당한 모습으로 주위의 우려를 다독이며, 오히려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무진 애를 썼었다. 발병 후 병가를 내고 1년간 항암치료와 더불어 정양(靜養)을 하고 난 뒤에는 복직을 해서 오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S  선생님은 특히 손아귀 힘이 대단했다. 대학시절, 원형탈모(圓形脫毛)로 머리숱이 드문드문해지자 일찌감치 가발을 썼다는데, 모교로 교생실습을 왔을 때는 모두가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머리가 단정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가발 쓴 머리임이 밝혀지고 말았는데, 봄철 체육대회를 마치고 교사들끼리 단체로 어울려 대중목욕탕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이후, 한 번씩 가발과 관련된 이야기로 놀리면, 빙긋이 웃으며 다가와 손목을 꽉 움켜쥐는데, 워낙 아귀힘이 세서 이를 벗어나자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싹싹 빌어야 슬그머니 손아귀에서 힘을 풀어주곤 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S 선생님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어느 핸가 학년을 함께 할 때였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들이 백암으로 1박 2일 친목 여행을 갔다. 아마 1990년 경으로 기억되는데, 가는 길에 영덕 삼사 해상공원엘 잠시 들렀다. 출발 전에 미리 약속해 두었던 내기 족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10개의 반을 홀짝으로 나누고, 학년담당 부장선생님이 심판을 봐주기로 했다.


당시, 삼사 해상공원은 동해안 최고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기 위해 개발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울릉도를 왕복하는 헬기장이 만들어졌고, 공원 안 광장 둘레로 화려한 컬러 보도블록을 깔아 공원의 입체감을 돋보이도록 조경을 하던 중이었다. 주차선을 경계로 차를 양쪽에 세우고 학교에서 준비해 간 네트를 백미러에다 각각 묶어놓으니 그럴듯한 족구 코트가 되었다. 1인당 만원씩 거두어 부장선생님께 맡긴 다음, 3판 양승제의 족구경기가 시작되었다.


족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5인제 족구경기에서는 보통 앞 라인에 두 명이 서고 뒷 라인에는 세 명이 서는데, 앞 라인 좌측이 주로 배구의 센터 역할을 맡아 후방에서 올라오는 공의 토스를 하고 후방의 센터가 주로 공격을 담당한다. 전방의 우측은 팀원 가운데서 족구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 맡아 시합 중에는 사실 있는 둥 마는 둥 한데, 부득이 눈앞으로 오는 공을 처리할 때만 쓸모가 있다. S 선생님은 장대한 체구와는 달리 공 다루는 구기종목이 서툴렀다. 그래서 그날도 당연히 전방 우측자리는 S 선생님 차지였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했기에, 시합을 시작할 때는 2시를 이미 지난 후였다. 주차장 주변의 보도블록 사이사이로 웃자란 풀을 제거하려고 캡을 눌러쓴 할머니들이 뙤약볕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호미질을 하던 중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족구경기를 구경하게 되었다. 우리가 편을 갈랐듯이 할머니들도 편을 나누어 열띤 응원을 해 주었다. 서로 한 세트식 나누어 가질 정도로 시합은 박빙이었다. 애매한 판정에 대해서는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열띤 경기 중에도 느긋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S 선생님이었다. 공이 자기에게로 오면 알아서 미리 몸을 라인 밖으로 피하곤 했는데, 이는 후방의 센터와 미리 약속되어 있던 작전이기도 했다.


공격권이 상대 쪽으로 넘어가서 이번은 S 선생님 편이 수비를 할 때였다. 길고 강하게 찬 서브가 키높이의 포물선을 그리더니 바로 우측 라인 귀퉁이에 선 S 선생님 머리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비켜! 비켜!"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지만, 그보다는 엉겁결에 내지른 S 선생님의 머리가 더 빨랐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반탄력에 따라 공이 높이 솟아오르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검은 물체 하나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맞은편 선수들이 어리둥절하며 우왕좌왕할 때 주변 여기저기서 온갖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구메야! 이를 우짜노?"

"저! 저! 저런! 저건 도대체 뭐꼬?"


뜨거운 햇살 아래 나풀나풀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물체가 뭔지를 확인하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닥에 자지러지고 말았다. 얼굴이 불콰해진 S 선생님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가발을 주워 들더니 냅다 심판을 보던 부장선생님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땀으로 송골송골한 맨머리를 손으로 쓰윽 쓰다듬더니 이글거리는 눈길로 상대방 선수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부턴 절대로 안 봐준다. 공 다 내게로 보냇!"


그날의 승부가 어떻게 갈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의 명승부는 친목여행에 돌아오고 나서도 오랫동안 교무실에서 회자(膾炙)되었다. 물론, 덩달아 웃으면서 그날의 승부에 대한 해설과 함께 추임새를 넣는 것은 당연히 사람 좋은 S 선생님 몫이었다.


S 선생님과 얽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면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참여하는 친목여행을 떠나곤 했다. 요즘은 교육활동을 겸해서 팀별로 학회를 다녀온다던지 선진지 학교를 시찰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지만, 옛날 학교 단체여행은 친목회가 주관하는 오로지 친목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진 행사였다.


평소, 학교 친목행사 후에는 선생님들이 함께 어울려 대중목욕탕에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S 선생님 역시 가발을 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는 함께 목욕탕에 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과 어울려 목욕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 키도 훤칠하게 커서 굵은 금목걸이를 하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면 주위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눈길을 주곤 했다. 게다가 머리까지 맨머리이지 않은가! 머리가 아예 없는 대머리와 머리가 검숫검숫한 맨머리는 엄연히 다른 법이다. 조폭들의 말갛게 백구친 맨머리가 그래서 더욱 위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한 번은 S 선생님과 친구사이인 모 선생님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S 선생님이 목욕탕에 들어설 때 탕에서 불쑥 몸을 일으키며, "형님, 안녕하심까?"라고 배꼽 인사를 했다. 목욕하던 손님들이 일제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었던지 그날부터 다른 선생님들도 목욕할 때 S 선생님이 욕탕에 들어서면,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형님, 안녕하심까?"라고 함께 배꼽 인사를 하곤 했다.


동래 허심청으로 친목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온천장에 여장(旅裝)을 풀고 바로 탕에 들어서니 평일이어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먼저 들어온 우리 일행 예닐곱 만이 따뜻한 탕 안에 각자 몸을 담그고 여독(旅毒)을 풀고 있었다. 잠시 있으니 깍두기 머리에 온몸을 둘러 문신을 한 건장한 사내 둘이 탕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는 2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거침없이 탕 가장자리로 오더니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온몸에 끼얹고는 탕 속으로 덜렁거리며 들어왔다. 순간, 용의 눈초리와 뱀의 비늘, 독수리의 발톱이 따끔따끔 살갗을 찔러왔다. 이들은 잠시 온천물로 몸을 데우더니 몸을 일으켜 탕 언저리에 걸터앉았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의 S 선생님이 탕 안으로 몸을 드러낸 것은! 탕 속에 있던 우리들은 늘 그랬듯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형님, 안녕하심까?"라고 일제히 외치며 배꼽 인사를 했다. 그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탕 언저리의 깍두기들도 덩달아 함께 일어서더니 "안녕하심까?"라고 크게 외치며 배꼽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이들 깍두기들엉겁결에 S 선생님이 타 지역의 전국구 깍두기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힐끗,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대충 샤워를 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계면쩍어서였던지, 아니면 영업을 위해 업소 출근을 서둘러야 했던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깍두기가 빠져나간  안에서는 한바탕 웃음소리 만이 크게 출렁이고 있었다.


진작부터 글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지만, 고인이 된 S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이를 입 밖으로 꺼내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 급성폐렴과 코로나로 거의 생사의 기로(岐路)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벗어나고 보니 더 이상 이야기를 묵혀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S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 이야기들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이젠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사람 좋은 S 선생님이 그랬듯, 머리숱이 없어 보여도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얼마간 아팠다 볼살이 빠진 얼굴에 이젠 완연히 생기가 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지만 가르마를 한쪽으로 타자 내가 익숙히 보아왔 그 얼굴이 보인다. 가슴 한쪽을 짓누르던 납덩이가 쑥 내려가면서, 지긋지긋한 병마(病魔)에서 비로소 벗어났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한층 편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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