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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Dec 26. 2022

세모(歲暮)를 맞아

아듀(Adieu), 2021!

이 글은 작년 이맘때 쓴 글입니다. 올해 4월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 이전에 쓴 글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하던 중에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올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 새로운 감회로 2022년을 보내는 글을 곧 쓰게 될 것 같지만, 지난 글을 읽으니 참 세월이 유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를 즐겨 마신 지가 10년 가까이 된다. 사실, 스타벅스나 엔제리너스와 같은 커피 전문 브랜드가 포항의 목 좋은 곳에 입점(入店)할 때만 해도,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그처럼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내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자판기 커피를 즐겨 마실 때조차도 곁에서 전통차나 냉수를 마실지언정 일부러라도 커피를 입에 대는 일이 없었다.


어느덧 흐르는 세월 따라 곳곳에 커피 전문점이 들어선 거리 풍경이 일상화되고, 출근하는 내 손에는 늘 전날 매장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미리 얼려 둔 커피가 들려 있곤 했다. 졸업한 제자들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게 되면 흔히, "쌤요, 요즘에도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들고 출근하시능교?"라고 물어 올 정도였다. 특히, 잔뜩 얼린 그란데(Grande)나 벤티(Venti)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사이에 잔에 물을 다시 채워가며 한나절 내내 마시는 것이 나의 고유한 커피 음용법(飮用法)이었다.


아침에 아내가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바로 나의 외출 시간이다. 그윽한 커피 향이 실내를 적셔 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커피 향에 못 이겨 집 앞 상가로 향한다. 서로 취향이 달라, 좀처럼 뜨거운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부득불 손수 테이크아웃해야 할 불편을 감수(甘受)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위가 풀리는 듯하더니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운 것을 보니 세모의 한파(寒波)를 미리 예고한 엊저녁 기상예보가 새삼 머릿속에 떠오른다. 벌써 한 해가 칼바람 속에 고개를 숙이며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기상캐스터의 비감(悲感) 어린 멘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코로나가 다시 기승(氣勝)을 부림으로써 한껏 달아올라야 할 연말 분위기가 제풀에 꺾여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화사한 그녀의 웃음이나 옷차림과는 달리 바람처럼 휙휙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온몸을 오싹하게 할 만한 냉기가 서린 듯했기 때문이었다.


얼음으로 채우고 원액(原液)만 가득 부은 잔을 들고 있자니 제법 손은 시리지만 마음은 짙은 커피 향이 주는 포만감(飽滿感)으로 그윽하다. 어쩌면 해를 넘긴다는 것이 잔뜩 얼린 커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누구든 마음속에는 공고(鞏固)히 해 둔 다짐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음 녹듯이 그 다짐도 시류(時流)에 맞춰 풀릴 것이고, 원했든 원치 않았든 결심의 공고함은 커피의 농도가 옅어지듯 그 여물기가 시시각각 물러지게 될 터인데, 순간순간 음미(吟味)했던 커피의 맛이 다르 듯 다짐했던 결심의 결실 역시도 매 순간마다 각각 달라질 것이다.


내게 있어 올 한 해는, 여전히 종결되지 않은 교사로서의 커리어 선상(線上)에 놓여 있는 것 같다. 3월부터 교직을 완전히 내려놓았다고는 하나, 나의 행동거지(行動擧止)나 의식의 발현(發現)은 학교라는 공간의 언저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제한적이고 관성적(慣性的)이다. 제한적이라 함은 의식이 온전히 자유롭지 못함이고, 관성적이라 함은 행동이 틀에 얽매여 예전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종종 주위로부터 받는 이런저런 질타(叱咤)는 낯뜨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쉬이 녹지 않는 얼음덩이처럼, 교사로서 공고했던 나의 정체성으로 인한 것이기에  결코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 보여주는 어린애 같은 행동이 그 순간 낯 뜨거울 수는 있을지언정, 이것을 두고 수치스럽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오늘 마시는 커피 맛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다만, 얼린 커피가 입속에서 알싸하게 녹으며 사라질 때마다 잔에서 줄어드는 그 부피가 아쉬울 뿐이며, 새로이 채워질 내일의 잔이 그래서 오히려 더욱 기대가 된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억눌림 속에서 삶이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망각(忘却)은 매 순간을 녹이는 온기와 같은 것이어서 어제 같은 오늘이 지나자, 바야흐로 새로이 펼쳐질 한 해가 눈앞이다. 얼린 얼음이 녹으면 미각(味覺)으로 느끼는 농도만 다를 뿐, 내일 마실 커피라 해서 어제 마셨던 커피와 그 향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굳은 결심으로 새해를 시작한들 그 공고함이 일 년 내내 견고(堅固)하진 않을 것이나, 우리에겐 지금까지 인고(忍苦)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란 시간을 아우르는 강건(剛健)한 힘이 있다. 그래서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팬데믹(pandemic)이 극강(極强)의 영향력으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2021년,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저마다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시작했지만,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자 우리의 삶은 이내 너덜너덜해졌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통렬한 통증으로 우리의 온몸을 여전히 헤집고 있고, 구멍 숭숭 뚫린 가슴에 찬바람이라도 일면 그 고통은 한층 더 쓰라리다. 그러나 이런 신고(辛苦)의 어려움이 우리에게 항체(抗體)로 심어 준 지난(至難)한 세월은 다가 올 2022년, 임인년(壬寅년) '검은 호랑이(黑虎)'의 해를 무색(無色)케 한다. 되돌아보면,  '아무렴 이보다 못할까?'의 심정이지만, 기억 속에서 온전히 지워버릴 만큼 우리의 삶이 긍휼(矜恤)하진 않았으니, 이 또한 앞으로 다가올 삶의 부스터(Booster)가 될 것이다.


잔 속의 얼음은 그새 많이도 녹아서 커피 맛이 엄청 밋밋해졌다. 오늘과 내일의 세모는 다가 올 2022년 신년(新年) 새날을 맞아 비록 쓸쓸하게 그 유명(幽明)을 달리한다 해도, 이처럼 세월이란 공간 속에서 지난 삶의 흔적으로 희석(稀釋)되어 남을 것이다. 아픔을 간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연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해로서...


그래서 미련 없이 너를 떠나보낸다, 아듀(Adieu), 2021!


2021년 원단(元旦),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교직생활을 마감하면서 받은 훈장증
제자들이 보내온 퇴직 기념품 중에서
소나기가 지나간 후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영일대 풍경
영일만 풍경
포항 국제불빛축제
환호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본 영일대
구룡포 동백꽃 필 무렵 촬영 장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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