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로 살아보기

네발로 살아가기

by 박상진

어릴 적부터 나는 가로와 세로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이는 좌와 우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것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나는 아들이 귀한 집의 맏이로 태어났다. 이어서 여동생 셋이 더 태어났으나 바로 아래 동생과는 다섯 살의 터울이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들 사이에도 세대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보통 자식들이 많은 집안에서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운데 보편적인 삶의 지혜를 저절로 익히게 된다. 예컨대, 좌나 우의 방향에 관한 말이나 가로와 세로같이 좀 더 학구적인 용어까지도 위에서 아래로 마치 대물림처럼 말의 의미와 함께 생활에 적용되는 방식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왼쪽이 좌측이고 오른쪽이 우측임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사실상 전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았다. 집에서는 늘 어머니나 아버지가 항상 '왼쪽'이나 '오른쪽'으로만 방향을 지시하며 심부름을 시켰고, 내가 학교에서 치른 시험문제 속에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향을 물어 질문을 이어가는 문항은 있었어도 좌측이나 우측 운운하며 물어오는 문제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만일 그런 내용으로 묻는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만 해도 공부를 꽤 잘했던 내가 좌나 우를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4학년이 되고 두어 달이 지나자 반 아이들은 서로 친해진 아이들끼리 무리를 이뤘지만,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여전히 소 닭 쳐다보듯 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는 알 순 없었지만, 설사 담 하나 사이를 둔 이웃이라 하더라도 학교에만 오면 남자와 여자가 따로 나뉘어 서로를 엄혹하게 유별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여전히 봄날이긴 해도 여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봄 운동회라지만 연습을 위해 운동장에 나가면 늦은 5월의 뙤약볕 아래 아이들의 이맛살을 절로 찌푸려졌고, 이내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늘색 챙모자를 쓰고 하얀색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담임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어 아이들을 철봉대 앞으로 불러 모았다.


선생님의 설명이 길어졌다. 우선, 반장과 남자와 여자 부반장, 다른 여자 아이 한 명을 따로 불러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둥글게 원이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선생님과 함께 있어 부끄러움이 앞섰지만, 내심 좋아하던 여자 부반장이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양볼이 나도 모르게 확 달아올랐다. 운동회라면 그저 달리기나 줄다리기, 풍선 터트리기나 할 일이지 도무지 무슨 얄궂은 일이람.


"내가 호루라기를 불면, 밖에 원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은 옆걸음질로 왼쪽으로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돈다, 알았제? 그리고 짝 지은 너희들도 서로 마주 보고 있다가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서 먼저 우측으로 옆걸음질로 다섯 발짝 갔다가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다시 불면 원을 그린 아이들과 여기 짝지은 아이들 모두 이번에는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서는..."


갑자기 머릿속이 붕붕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은 달아오르다 못해 화끈거리며 핏빛으로 붉어졌다. '삣!', 쇳소리를 내며 호루라기가 불려졌고 눈앞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멈칫하는데, 마주 선 짝 지은 아이들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우측으로 옆걸음질 한다. 팔짱 낀 여자 부반장의 왼쪽 팔이 슬쩍 힘으로 툭 밀어오는데, 마침 눈앞의 짝을 맺은 아이들도 그리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삣! 삣!', 선생님이 연달아 두 번 호루라기를 불면서 율동을 중지시켰다. 그러시더니, 내 앞으로 오시더니 화가 단단히 나신 듯 위아래로 손가락질하며 다그치신다.


"반장! 넌, 도대체 우측이 어느 쪽이야?"


몰론,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우측이 오른쪽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젠 구별해서 알 만한 나이는 되었다. 좌와 우란 용어를 집에서는 잘 쓰지 않아 나에겐 여전히 익숙지 않은 말이었지만, 지금 내 옆에는 이 모든 행동을 함께 한 든든한 공범이 있지 않은가! 내가 슬쩍 밀려난 '우측'이 바로 그쪽인 데다, 그리고 남자 부반장이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흘리면서 마주 선 쪽에서 움직인 쪽도 그쪽이었다. 그렇긴 해도, 은연중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선 풀 죽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왼쪽 손을 들었다. ' 와!' 하는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오른쪽 이마로 선생님의 엄청 센 꿀밤이 잇달아 세 번이나 먹여졌다. 붉어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며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몰랐지만 한편으론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몹시 아프기도 했었다.


한동안, 좌측과 우측은 내게 있어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심지어는 중학교에 올라가서 배운 영어 단어, left와 right마저도, 잠깐 호흡을 고르고 나서야 left가 좌측이고 right가 우측을 가리킨다는 것이 겨우 생각날 정도였다. 정말이지, 생활하는 가운데 습관적으로 익히지 못하고 머리로 나중에 익힌 말은 누구에게나 헷갈릴 수 있고, 이런 내게 있어선 가로나 세로, 한자인 횡(橫)과 종(縱)이란 글자를 서로 혼동하는 상황 역시 전혀 낯선 것이 아닌 것이다.


현생 인류와 동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sapiens)는 직립 보행하는 동물이다. 말하자면, 횡적인 삶을 살아온 동물인 것이다. 모든 생활 도구들이 두발로 직립해서 걷는 일에 어울리도록 만들어졌고, 거기에 맞춰서 효용가치를 높여왔다. 말 조차도 직립보행의 공간 속에서 언어적인 발달이 시작되었을 테고, 문명의 발달에 따라 점차 그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그에 맞춰 미분화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관례와 관습으로 굳어지면서부터 행동의 양상도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정형화되었는데, 이는 곧 그 지역의 고유한 언어와 특색 있는 문명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특정 지역에 살면서 삶의 대부분을 말의 언어적 의미에 매몰되어, right와 left를 우와 좌, 즉 보수와 진보로 나눈 후에, 선(善)을 의미하는 right 쪽에만 올바름의 가치를 두고 세상을 판단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보수가 그 세력의 바탕이 되는 곳이고, 어릴 적 내가 받은 교육 대부분도 보수적 성향이 팽배하던 시기에 받았으니 사고가 한쪽으로만 직렬화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런지도 모른다. 그러데, 의식이 세태의 흐름을 쫓아가면서부터는 기존의 선과 악에 대해 쌓아 왔던 고정된 관념들이 아래쪽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음을 자인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스로 선택적 보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유행처럼 떠돌던 설문 도구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가 사뭇 흥미롭다. 사상적 성향을 몇 개의 선택적 현실 상황 속에서 판단하도록 설문하여 보수와 진보를 가늠해 보도록 것인데, 뜻밖에도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지를 받았다. 물론 교단에 서 있을 때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그 어떤 시사적 현안에 있어서도 학생들 앞에서 중립적 가치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믿음을 주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는 오히려 진보적 성향을 지닌 유력 정치인들이 여럿 있고, 이들이 지역의 현안에 대해서 올바른 소리를 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끼고 있다.


세로로 몸을 세워 두발로 걸을 때 보다도 가로로 몸을 눕혀 네발로 걸을 때가 훨씬 편할 수가 있다. 만약에 인간이 태어나서 걸을 수 있도록 훈련받지 않고, 손과 발 모두를 사용하여 동물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길러졌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을까? 인간이 몸을 세워 두발로만 걸음으로써 훨씬 자유로워진 손은, 진화한 두뇌의 도움으로 도구를 개발하여 그저 걷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 양손에 쥐게 됨으로써 그 본연의 힘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물론 손 자체만으로도 행할 수 있는 섬세한 행동들도 많기는 하다. 매만지거나 고를 수 있고 나누거나 자를 수도 있으며 움켜쥘 수도 있다. 하지만 이동할 때만큼은 네발일 때보다 두발이 민첩할 수는 없다. 그리고 먼 거리를 가야 할 때도 두발만으로는 힘에 부칠 때가 많을 것이다. 즉 네발로 가로로 몸을 눕혀 걸을 때가 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가까운 동네 산을 천방지축 돌아다녔다. 소싯적 생각을 해서 몸만 올려 보려 했다가 죽을 고생을 했는데, 두 개의 워킹 스틱을 손에 쥐자 모든 것이 편해졌다. 즉, 가파른 비탈길을 앞에 두고 마치 눕다시피 스틱을 쥔 두 손을 지탱해서 네발로 걸어 오르는데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었다. 가로로 걸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다시 세상 이야기로 넘어간다. 난 어려서 좌와 우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그리고 왼손은 거의 버려두다시피 하고 줄곧 오른손만 고집했었다. 그런데 팔씨름을 해보면 의외로 내 왼손을 당할 자가 별로 없었고, 오른손만 사용하도록 어릴 적 한때 그토록 구박했던 어머니는 알고 보니 태생이 타고난 왼손잡이였었다. 차츰 왼손에 길들여지니 좌우 균형 잡힌 양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제 난 좌와 우를 순간적으로 착각하여 분간 못할 만큼 어리지 않고, 나이가 이보다 훨씬 들어서는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다. 오로지 직립보행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가로로 산다는 것은 좌와 우, 위와 아래의 방향 만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즉, 가능할 수도 있는 삶의 다른 방식에 도전해보자는 의미인 것이다. 스스로 직립보행만을 고집하는 순간, 이내 그 공간적 한계는 자신을 구속할 것이다. 똑같은 두발 걸음을 두고 어느 한쪽은 수구꼴통이라 비웃고 반대편에선 좌빨이라는 멍에를 지우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두발이면서 네발로도 걸을 줄 아는 세상이라면, 어차피 다를 바 없는 두발 걸음을 두고 서로를 편협하게 비웃기만 하는 이 팍팍한 세상보다는 살아가기가 훨씬 더 편하지 않겠는가!


《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걸어가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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