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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r 24. 2023

봄비, 꽃, 바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봄비가 내리고 있다. 며칠사이, 날이 너무나 포근해져 집 안에머물러 있기가 아쉬워서 종종 바깥나들이를 했다. 하지만 맑은 날이 예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봄하늘은 그다지 청명(淸明)하지를 못했다. 날이 풀리면서 덩달아 황사(黃沙)가 심해지고 있 탓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집 앞 공원 곳곳에서도 봄꽃은 저마다 때를 맞춰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지만 자색(姿色)이 그리 고와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을 흐리게 만드는 미세먼지 때문임이 분명했다. 마치, 수년 전 비슷한 시기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서 처음 본 중국 하늘의 흐린 모습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개운 하지를 않아 안경을 벗고 렌즈까지 깨끗이 닦고 보았는데도 여전히 사물의 경계는 흐릿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북경의 악명 높은 황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젯밤엔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비소식이 들렸다. 봄냄새 폴폴 풍기는 화사한 옷차림의 기상캐스터가 전해주는 일기예보는 지켜기에 상큼하지만, 오늘따라 얼굴 표정마저 유달리 밝아보였다. 잦은 산불과 미세먼지로 덕지덕지 낀 마음속 묵은 때가 금방이라도 씻겨나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때맞춰 내리고 있는 봄비가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반가운 것이다. 베란다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 광장바닥의 보도블록이 빗물에 젖어 반지르르 윤이 난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반쯤은 입을 다물고 있던 꽃망울이 활짝 펴서, 멀리 보이는 벚나무의 자태가 무척 꿋꿋하면서도 화려하다. 물기 젖은 침의(寢衣)를 두른 요사스러운 여인을 훔쳐보는 뭇 사내의 심정이 이러할까, 비바람까지 맞으며 새초롬이 서 있는 벚나무를 보고 있자니, 열린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봄바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었다.


사실, 난 혼자서 나들이를 하는 것이 여전히 서툴다. 오랜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종일 수업이나 학교 업무얽매여 있어서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종종 출장을 거나 자주 외근하는 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선가 몰라도 퇴직을 한지 벌써 3년 차에 들지만, 아직도 아침 시간에 홀로 집 밖을 나서면 마음부터 두근거린다. 미지(未知) 낯선 세상이 눈앞에 활짝 쳐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 하는 외출은 조금 특별났다. 봄을 맞아 산책을 나선 길목 길목의 경이 눈에 한층  익숙해져서, 갖가지 봄꽃이 어디에서 피고 지는 지를 미리 짐작할 수 있었때문이었다. 우선, 우리 아파트 필로티 뒤편 화단의 두 그루 목련이 그저께부터 꽃망울을 트리고 다. 백목련은 이미 꽃의 잎까지 활짝 폈고, 자목련은 아직 입술을 단단히 오므리고 좀 더 날이 화창해지기를 벼르고 있는 중이다. 길을 좀 더 길게 늘여 공원 근처의 주택가로 들어서면 울타리가 낮은 담장 너머로 활짝 핀 매화나 동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닷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공원 산자락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개나리가 우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고, 세찬 바닷바람에 못 이겨 골목길 여기저기로 굴러다니고 있는 동백의 붉은 꽃잎은 아직은 눈에 담아두기가 차마 애처롭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 떨어지는 시기를 잘 타야 고운 꽃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 테니까.


이른 봄, 봄꽃의 아름다움에 어울릴 만한 시가 있나 검색을 해보았다. 눈과 귀에 익은 근현대시보다는, 낯설긴 해도 한자(漢字) 하나하나 속에 압축된 의미를 곱씹어 음미(吟味)하기에 적당한 한시(漢詩) 있을까 싶어 둘러보는데, 조선 중기 사람 우음(偶吟) 송한필의 시가 , 눈에 들어왔다.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
往來風雨重 (왕래풍우중)

어젯밤 비에 피었던 꽃
오늘 아침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
비바람에 오고 가누나

인생의 무상함을, 비바람 속에 잠시 피었다 지고 마는 봄꽃의 처연함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는 이 한시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간결함으로 봄꽃의 정서를 잘 그려내고 있다. 꽃이 온 사방에서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이른 봄, 시를 읽어내려가는 중에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스러진 육촌 동생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보다  살 아래인 상경이는 어려서부터 나를 잘 따랐다. 사는 동네가 달라 함께 어울려 놀은 기억은 별로 없지만 명절이나 기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어김없이 큰집인 우리 집에 들르곤 했었다. 남자 형제가 없이 바로 손아래 여동생과도 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 나에게, 상경이는 언제든 마음 털어놓을 수 있든든한 피붙이 다를 바 없었다. 내가 교사로 포항에서 하숙생활을 하던 그 이듬해, 전문대학을 졸업한 상경이도 이곳 포항으로 내려 제철 관련업체에 취직을 했다. 주말마다 각자 빨랫감을 갖고 대구 본가를 다녀와야 기에 평일 저녁에 포항에서도 한번 만나자고 여러 차례 약속을 했었지만,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느라, 상경이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으므로 서로 날짜 맞추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학교 가까이에다 얻어놓은 하숙집과 공단(工團) 안 기숙사는 거리와 위치가 서로 정반대였고 포항 지리에  밝은 편이 아니어서 적당한 약속 장소를 물색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던 어느 날, 상경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숙사 생활이 불편해서 평소 타던 낡은 오토바이를 버리고, 원거리 이동이 가능한 근사한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해시내 자취방으로 출퇴근한다는 소식이었다. 주말엔 오토바이를 타고 대구를 오가는데, 날이 풀려서 그런지 봄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가 그리 좋을 수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언제든 올 수 있으니 시간과 약속 장소를 정해달라고 졸랐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정신이 없었으므로, 보름 가까운 여유를 두고 4월 초순에 학교와 가까운 식당에서 만나기로 마침내 약속을 잡았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월요일 저녁으로 기억되는데, 자정을 막 넘긴 늦은 시간에 하숙집으로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박상경 씨를 아느냐고 묻고는,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내게 넘겨준 하숙집 아주머니도, 새벽잠에서 막 깨어나 어리둥절해 던 나도 이내 길한 걱정에 휩싸였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대구 본가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차마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야간 교대근무를 마치고 공단과 이어진 시내 외곽 도로의 교차로를 지나던 중에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화물차에 추돌(追突)당한 상경이가 자리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숙(堂叔)고인(故人)의 시신을 수습한 후 바로 대구로 옮겨가 장례를 치렀기에 사고현장을 찾아보기는커녕, 장례식조차 참석하질 못했다는 점이다. 당숙 어른이 아버지에게 날 오지 말도록 따로 청(請)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자라면서 나와 상경이는 얼굴 생김새가 무척 닮았는 소리를 주위로부터 자주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포항에서 사고가 난데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흉험(凶險) 자리에 굳이 아들 닮은 조카를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당숙을 뵙는 날엔 나도 모르게 어른의 표정부터 살피게 되었다. 원래 말이 없던 분이, 나와 시선조차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정황으로 미뤄 눈치챘을 무렵엔 당신의 이맛살 골이 예전보다도 훨씬 더 깊어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나이는 당시 당숙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지도 못하고 스러진 동생은 예순을 훌쩍 넘긴 형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지지 않는 어여 한 송이 꽃으아있다. 봄꽃이 비바람 속에 잠시 피었다 질지언정, 아름다움마저 스러지진 않는 것이다. 짧은 봄날의 미몽(迷夢)일지라도 그 꿈이 달콤한 건 꿈속에 남은 아스라한 기억 때문이다. 꽃이 꽃으로 막 피어나, 꽃으로 이름 불려질 때의 바로 그 아름다운 순간으로 말이다.


종일토록 내린 비가 자정이 가까워지자 잠시 멈췄다. 아직은 가지의 생기(生氣)를 더 머금은 벚꽃이 꽃비로 내리기에는 이른 시기일 것이다. 봄비가 마저 그치고, 불어오는 바람에 온기가 사뿐하게 더해질 봄날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호우가  <봄비>에서, '이 비 그치고 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라고 노래했듯이 그리움의 끝은 짙은 서러움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깊어가는 봄날의 밤이 왠지 모르게 사뭇 서럽다.


《길을 오고 가는 길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봄꽃을 한 자리로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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