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나 소설을 읽은 경험이 이후 문학적 감성의 토대가 되었음을 실토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서울서 변호사로 열심히 살아가는 강변이 그렇고, 국내 굴지의 S그룹 임원으로 퇴임한 후에 멋진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는 안 이사가 그러하며, 정치판에서 흔들림 없이 주어진 역할을 다 하다가 미련 없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정제된 생활의 길에 들어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교장선생님을 아내로 둔 박 사부(師夫)가 또한 그러하다.
몇 달 전 포항에서 늦은 밤까지 하루 저녁을 같이 지내면서 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인문사학적(人文史學的)인 소양을 확인하고는 내심 놀라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린 밤늦도록지난 학창 시절을 더듬어 순원이 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동리를 소환하였고, 목월을 이야기하면서 미당이나 한 발짝 더 나가서 릴케를 떠올리기까지 했다. 단순히 작가의 이름만 열거한 것이 아니라, 순원의 '나무들 비탈에서다'나 '독 짓는 늙은이', 거기다 까맣게 머릿속에 지워져 있던 '카인의 후예'까지 들먹일 때는, 분홍빛 열정으로 한껏 문학에 빠져들었던 까까머리 중학시절의 문학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 난 듯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그것이 강변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란 것인데, 이유는 바로 그가 중학 3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마치 옷감의 면을 비집고 나온 이쪽저쪽의 실밥을, 면이 헤질라 조심해가며 살살 당겨내는데 비록 염색된 색깔은 다를지라도 결국은 한 올의 같은 실밥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묘한 기분 말이다. 거의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서로 다른 업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으면서도 문학적인 취향이 판박이로 같은 데다가 한 때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 제목마저 여전히 줄줄이 꿰고 있다니!
또 안 이사는 어떤가! 최근 2, 3년간 주로 SNS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그가 올리는 글 하나하나를 블로그를 통해서 읽을 때마다 동서양의 관통하는 그의 전방위적 소양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오랜 해외 주재원으로서의 경험이 그의 글 속에 녹아있는 것이라긴 하지만, 그가 글을 통해 설파하는 단단한 종교적 믿음과, 음악과 미술, 미처 예상치도 못한 분야조차도 여지없이 통찰해 내는 그의 폭넓은 소양이 부럽고, 또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자기 계발에 열심인 그의 열정이 존경스러우며, 이를 뒷받침하는 능란한 글솜씨 또한 부럽기 짝이 없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국내 유적지의 소개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을 담당하는 한겨레 신문사의 기자와 함께 경북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특히 북동부 지역의 유서 깊은 서원(書院)을소개할 때는 안내인의역할을 도맡으면서도, 스스로 명문(名文)의 글을 여러 언론 매체에 기사로 올리는 프리랜서 문화 해설사 박 사부의 최근 행보도 그저 놀랍기만 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왕성한 활동력으로 나 같은 구들목 대장도 기꺼이 집 밖으로 이끌어 낼 줄 아니, 이 또한 놀라운 능력이 아니던가!
다시, 요즘 글을 자주 써서 여러 SNS에 올리는 나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사실 나는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기는 하다. 퇴직 이후로 갑자스럽게 주어진 엄청난 시간과 이만한 여유를, 살아오면서 나는 여태껏 누려 본 적이 없다. 이러던 차에, 이처럼 남아돌 만큼 여유로워진 시간을 글을 쓰는 원료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머릿속을 울린 것이다. 상상의 세상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그만큼 왕성한 시간적 소비를 필요로 하는 곳이고,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내가 어느 누구보다 엄청난 시간 부자라는 점이다.
어제는 사실상 가벼운 마음으로, 내게 있어 첫사랑의 실체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아니 감정적으로 그런 순간이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이를 글로 한번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막상 써 내려가기시작하니, 처음부터 끝으로 이어지는 첫사랑의 추억과 그 기억의 연장선 상에 여태껏 어지럽게 널려있던 감정들이 어쩐지 너무 초라하고 왜소해 보였다. 더욱이, 마음속 내밀한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 가운데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합리화한 의식을 작용시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거짓 감정들도 함께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 작가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겠구나. 그러자 비로소 씨앗 하나에 불과했던 지난 기억들이 상상력을 자양분 삼아 스스로 글이란 토양에다 뿌리를 내리고, 얼마 안 있어 움으로 솟더니 가지와 줄기로 자라나면서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었고, 그 주변으로도 푸릇푸릇 들풀이 자라나 어여쁜 야생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비로소 볼만한 한 폭의 풍경이 탄생한 것이다. 이 역시도 오롯이 나 만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긴 할 테지만.
꼬박 밤을 새웠다. 좋아서 하는 일로 밤을 새운 것이 도대체 몇 년 만인가? 아니 그런 일이 과연 있기나 했던 것인가! 따가워진 눈으로 썼다가 또 지우기를 반복했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나의 상상력에 의해서 글을 읽는 재미를느끼도록몰래 고랑을 일궈놓은 글의 고비고비를 읽으면서 더러는 공감하기도 할 테지만, 현실 속의 나를 염두에 두고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일수도 있을 여러 지인들 모습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또한 예상된 일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니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상상을 머릿속으로 못 박아 두고 쓴 첫 글이 바로 날 밤을 새워가며 쓴 글, '슬픈 페스티벌'이 아닐까 한다. 글의 마무리를 짓는 과정에서 글의 형식과 내용이 원래 의도한 생각과는 정말 다르게 전개되어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 되어 버렸지만 이 또한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글의 뼈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융합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효과적으로 발현되면 시공간적인 확장이 무궁무진해지고 이는 곧 허구의 세계로 무한정 그 경계를 넓혀나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제 이틀만 더 지나면 기존의 강변, 안 이사에다 치과 의사로 무척이나 바쁜 한 원장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예천의 박 사부 댁을 방문한다. 그동안 외조를 잘해서인지는 몰라도 교장선생님은 신랑을 우리에게 기꺼이 이틀간이나 조건 없이 내주신다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참에 동창생 녀석들의 지난번 마저 듣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를 상상력이란 MSG를 가득 가미해서 달콤 쌉살 한 새로운 이야기로 꾸며내 보고자 한다. 물론 그놈들에게 먼저 술을 잔뜩 먹여 마음속 내밀한 곳에 숨겨 둔 이야기를 저마다 자진하여 순순히 토설하도록 만들어야겠지만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그리고 그리워하며 상상할 수 있을 그 무엇인가를 가까이 두고 있다면 그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백수가 되어서도 함께 웃고 까불며 놀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이 역시도 두말할 필요 없이 축복받을 일이데, 그렇다면 나 역시도 전생에서 조그만 나라 하나쯤은 거뜬히 구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