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도 다 있다. 엄지의 살갗에 문질러지는 중지(中指)와 약지(藥指)의 손톱 느낌이 거슬려 오랜만에 손톱을 깎기로 했다. 그런데, 손톱깎기란 놈은 자주 쓸수록 날이 무뎌져서 딸깍, 딸그락 양날이 가끔씩 서로 엇물리기도 한다. 더욱이, 나이 들어 노안(老眼)이 심해진 이후로는 톡톡 잘려나가는 손톱 조각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조곤조곤 느낌만으로 왼손 검지 손톱의 모서리를 깎고 있는데, 딸깍, 모처럼 만에 날이 제대로 맞물리는가 싶더니 오른쪽 눈이 저도 모르게 끔뻑 감겼다. 잘린 손톱 부스러기가 눈 속으로 튀어 들어온 것인데, 눈 안이 까끌하게 몹시 거슬렸다.
눈을 감은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니 거추장스러운 이물감(異物感)이 느껴지면서 눈 안이 금세 물기로 촉촉해졌다. 손으로 눈을 잘못 비비면 손톱의 잘린 단면(斷面)에 각막(角膜)이 손상될지도 몰라, 조심조심 휴지를 뜬 눈에다 대고 살포시 눌러주었다. 거울을 보니, 눈 안의 이물감은 여전한데 발그라니 눈 속으로 실핏줄이 돋고 있었다. 흐르는 물로 씻어낼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 얼른 머리를 숙이고는 아래쪽에서 샤워기를 틀고 여러 번 눈을 크게 깜박였다. 다시, 마른 수건으로 눈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토닥여 보았지만 눈 안의 이물감은 여전했고,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눈 속이 계속 거슬렸다.
이런저런 부산을 떨다가, 아홉 시를 넘기고 나서는 결국 인근의 동네 안과를 찾았다. 하필이면 건물 지하에 주차장이 있어 내리막 찻길이 협소(狹小)한 데다 오르내리는 길이 편도(片道)였고, 길 양쪽의 턱까지 높아 운전하기가 몹시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가는 길 모퉁이 벽마다 범퍼를 긁어 생긴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고 주차장 입구 외벽은 아예 검스런 타이어 자국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했다. 브레이크에 발을 얹고는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는데, 마지막 내리막 커브길에서 오른쪽 타이어의 휠이 그만 턱을 건드리고 말았다. 운전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진정되었던 눈 안의 거슬림과 함께 억눌러 놓았던 짜증이 확 되살아났다.
의료용 검안(檢眼) 기구를 사이에 두고 의사 선생님과 눈을 마주하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거나 눈까풀을 위아래로 뒤집으며 눈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손톱 부스러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샤워기로 눈을 세안(洗眼)할 때 씻겨나간 것이었을 테지만 혹시 모를 염증에 대비해서 안약까지 처방을 받았다. 희한하게도, 병원을 나서자마자 그토록 거슬렸던 눈 안의 이물감이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마음속 생채기로 남아있던 타이어 휠의 긁힘마저도 주차장을 벗어나는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까마득히 지워졌다.
유월 초, 구미를 다녀왔다. 투표를 하려고 따로 시간을 내어 포항으로 온 아들이 대견스러워 굳이 구미까지 태워주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내친김에 구미에서 이틀밤을 함께 머물면서 장마가 오기 전, 늦은 봄날의 문경새재를 오랜만에 둘러볼 요량이었다.
다음날, 야간 당직을 선 아들이 아침에 퇴근해 올 시간에 맞춰 마중이나 나가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구미로 올 때부터 생각해 두었던 대로, 먼저 구미역 가까이의 구미천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잠시 물줄기를 거슬러 멀리 보이는 금오저수지까지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아서인지 이른 새벽, 강둑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포항 바닷가와는 달리, 호젓하게 강바람을 맞으며 홀로 걷는 기분이 색달랐다.
금오산 아래로 흘러내린 물줄기가 구미천으로 합류하는 곳 위로는 고가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 바로 아래 경사진 곳을 따라 마치 돌무지처럼 돌탑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는데, 심지어는 금분(金粉)까지 입힌 돌탑도 있었다. 계류(溪流)의 물살이 약해지는 얕은 강상(江上)에도 돌탑이 무리 지어 쌓여 있어, 잠시 쉬어가는 뚜벅이의 눈을 이리저리 이끌곤 했다.
구미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금오산 아래, 계류가 흐르는 산책로는 어느 쪽으로 걷든 정말 걷는 맛이 있다. 집밖으로 나온 지 한 시간 가까이 되니, 레깅스나 가볍고 산뜻한 차림의 옷매무새로 아침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산책로 이쪽저쪽에서 눈에 들어온다. 나처럼 배가 나온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슬며시 심통이 났지만, 그건 포항 바닷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오저수지가 가까울수록 날이 청명(淸明)해지면서 저수지 둑에 지천으로 널린 금계국(金鷄菊)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샛노랗게 만발(滿發)해 있었다.
지난번, 금오저수지 올레길을 온전히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넉넉잡아 40분이면 충분했었다. 오늘은 내친김에 부잔교(浮棧橋)가 있는 저수지 오른쪽 올레길을 택해, 데크길 막다른 곳의 금오산 품속 깊숙한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데크길로 이어지는 비탈진 언덕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울창한 수풀 사이사이로 우람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절구나 연자방아, 맷돌 같은 석물(石物)과, 대리석으로 조각한 양이나 개구리 같은 동물들이 길 양쪽을 늘어서 있었다. 얼핏 봐서도 숲 속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의 기세가 심상찮게 보이더니, 과연 아름답게 조경한 널따란 광장 입구에는 '경상북도 환경연수원'을 알리는 입간판이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경상북도 환경연수원은 본관을 위시해서 환경교육관이나 전통교육관, 환경감수성교육관, 탄소제로교육관 같은 교육시설과 수생태체험학습장과 자연사전시관, 환경교육센터 등의 체험시설과 함께 취영정이나 유붕원과 같이 정자나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물론, 연수원의 설립목적이야 입간판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듯 환경보전이나 자연사랑, 녹색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할 터이지만, 이처럼 훌륭한 시설이 외관으로 보이는 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하물며, 명색(名色)이 교사로 정년을 한 사람조차 오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그 존재나 실체를 체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군데군데 노화되어 있거나 돌보는 손길이 모자라 겨우 명맥(命脈)만 유지하고 있을 것 같은 잡다한 부대시설까지 눈앞에서 맞닥뜨리게 되니 더욱 그런 심증(心證)이 굳어졌다. 결국은, 실속 없는 보여주기식 외양의 관리보다는, 연수원의 애초 설립취지에 맞도록 사용자의 폭넓은 참여와 시설의 활용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 주는 것이, 앞으로 관리자들이 명심하고 지향해야 할 운영의 묘리(妙理)일 것으로 생각된다.
남아있던 반쪽 둘레길을 온전히 돌아 처음 오른 저수지 둑에 서니, 금오산을 이고 있는 저수지 아래로 그늘진 산 그림자가 옥색 물빛 사이로 슬그머니 스며들어 잔잔히 숨을 고르고 있다. 저수지를 에두른 비탈진 둑의 금계국이 가지런한 줄기마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바람에 헤살 대고 있는데, 그저 스치듯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진경(珍景)을 눈앞으로 연출하고 있었다.
문경새재 주차장 앞 광성식당에서 문경 약돌돼지 석쇠구이 정식으로 늦은 점심으로 먹고 나서는, 문경새재 영화세트장까지 운행하는 관람차에 올랐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지만, 이른 아침부터 금오산 올레길까지 2만 보 가까이 걸어서인지 식후의 노곤함과 함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도 함께 탄 기억이 없는 관람차를 이 나이가 되어서 오르려니 살짝 무안하기는 했지만, 앞뒤로 앉은 사람들 중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주중(週中)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입장권까지 끊고 들어선 영화세트장 안은 허허롭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했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 잠깐 내비치기도 했지만 돌아서서 맞닥뜨린 사람들은 바로 관람차를 함께 타고 온 노인네 뿐이었다. 다만, 야간촬영이 예정되어 있는지, 가슴 한쪽에 명표(名標)나 패찰(牌札)을 단 사람들이 드라마 촬영에 필요한 오색 깃발이나 소품들을 건물 여기저기로 분류해서 미리 정해진 장소에다 배치하고 있었다. 콧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사내를 붙들고 물어보니, JTBC에서 하반기에 방영할 사극을 촬영 중이라고 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비탈진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오래전, 드라마 '의적 일지매'를 찍은 산채(山寨)가 여러 채의 초가와 방책(防柵)으로 나뉘어 촌락(村落)을 이루고 있었다. 세트장의 맨 위쪽 막다른 곳에 있기도 해서 운동삼아 올라온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입장료가 아까워 본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되돌아 내려갈 때는 관람차를 타지 않고 걸어갔는데, 그 사이에 올라오는 관람차마다 사람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어 마음속으로는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전국적으로 알려진 관광명소를 둘러보면서 더 이상 촬영장이 군색(窘塞)해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경새재 관광의 마지막은 문경읍내에 있는 문경온천에서의 온천욕이었다. 몇 해 전에도 아들과 함께 들렀지만 때마침 보수공사가 한참이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칼슘 중탄산천과 알칼리성 온천수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복합 보양온천으로 알려져 있어 기대가 컸지만, 탕내(湯內) 시설은 평범하고 노후(老朽)했다. 하지만, 수질(水質)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온천수가 피부에 닿을 때의 스며드는 느낌이 미끌미끌하면서도, 온욕(溫浴)을 하고 난 후 개운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몸의 피로가 금세 풀리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들과 함께 한 이박삼일이 꿈 같이 흘러갔다. 오랜만에 먹을 음식을 두고 함께 인터넷을 검색하고, 더 맛난 먹거리를 찾아 서로 권하고 좀 더 편한 잠자리로 서로를 밀쳤다. 마지막 날은 늘그막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른 새벽이 되니 산(山) 만한 녀석이 슬그머니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코밀에서 느끼는 자식의 숨결과 온기가, 이후로 정말 깊고 편안한 잠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유월의 안온한 밤이 깊고도 유유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유월의 하루하루는 슬그머니 자라는 손톱과 같다. 5월처럼 다망(多忙)한 날이 이어지는 일이 없어서 분주하지 않고, 이어지는 7월같이 나날이 일기불순(日氣不順)한 경망(輕妄)스러움도 없다. 잘린 손톱이 느닷없이 튀어 들 때와 같이, 생각지도 못했던 대통령 선거나, 더러 이르거나 늦은 장마로 말미암아 잠시 신경이 거슬릴 때도 있지만 이 마저도 유유히 흘러가고 말면 그뿐인 것이다.
아울러 유월이 다른 달에 비해 유독 고적(孤寂)스러운 것은, 아마도 6월의 주요 기념일이 현충일과 6ㆍ25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절반이나 남은 유월의 하루하루가 조용하면서도 유유히 흘러가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