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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16. 2022

담배, 그 아찔한 유혹

금연(禁煙) 결심의 종(鐘)

포항 영일대(迎日臺) 앞에는 '금연 결심의 종'이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정신없이 걷다가 뎅그렁, 울리는 종소리에 고개를 드니, 해맑은 얼굴의 20대 커플이 종 지지대(支持臺)의 이편저편에 마주 보고 서서 종을 울립니다. 종을 울리기 전, '금연 결심, 사랑의 실천입니다'라고 종대(鐘臺)의 한쪽에 음각(陰刻)된 글을 먼저 읽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 내용이 종을 울리는 사람에게 의도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때의 일입니다. 학급 별 소풍 활동을 마치고 나서 각자 자유 시간을 가진 후 반 별로 해산을 했는데, 미리 약속한 몇몇 친구들은 바로 귀가를 않고 숨바꼭질하듯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가며 유원지 부근을 미적거렸습니다. 학년에서 잘 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친구들인지라, 야외전축을 비롯해서 몰래 감춰 놓은 여러 어른들 기호품(嗜好品)을 갹출(醵出)해서, 도로에서 볼 때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설악산으로 떠난 봄 수학여행에서 강원도 경월소주를 친구들과 돌려가며 마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과하지만 않으면 모여서 놀아도 학생의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수업 중, 쉬는 시간마다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가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기에, 담배를 입에 문 채 야전에 걸어 둔 LP 판의 'Keep On Running'이나 'Dizzy'에 맞춰 고고 스텝을 밟는 친구들 모습도 내겐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담배는 대학교에 가고 난 후에 필 거라고 단단히 결심을 한 무렵이기도 해서, 어울려 노는 중에 친구들이 한 번씩 피어 보라고 권할 때도 단호하게 뿌리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경산에서 열차로 통학을 하는 친구가 교련복 상의 주머니를 뒤적여서 짙은 고동색의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건네주는 겁니다. 불을 붙이기 전부터 이미 머릿속으로는 초콜릿 맛과 향기를 떠올리고 있던 참이라, 그 짙은 고동색이 빨갛게 타 들어가며 피어오르는 우윳빛 연기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찔한 유혹이 되어 내 마음을 홀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주도 두어 잔 받아 마신 후여서, 친구가 내민 손길을 따라 막 내 손 끝도 움직이려던 찰나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습니다.


'안돼! 참아야 돼. 여태껏 잘 견뎌왔잖아.'


뭔가 모를 마음속 끌림이 있어, 내 의지의 한쪽 끝을 단단히 부여잡고 간신버티나를,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래, 견디자!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돼.'


그 후로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담배를 피우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가 내게 건넨 그 담배는 당시로서는 구하기가 무척 힘든 '모어'라는 양담배였습니다.


내가 담배를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 것은, 본고사 준비를 하러 학원을 드나들다 생각지도 못했던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권해오는 담배를 결국 뿌리치지 못한 것은, 혹시라도 어리게 보이거나 약하게 비치지나 않을까 하는 삿된 호승심(好勝心)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바로 그날, 귀갓길 골목길 어귀에서 난생처음 사 본 거북선 한 갑을, 혹시라도 남이 세라 외투 안 주머니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었습니다.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85년 이후로도 한참 동안 교무실 책상 위에는 개인 재떨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 교무실에 올라와 계셔도 몸을 돌려 담배를 피우면 그뿐으로, 담배를 피우는데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은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오히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손으로 꼽기가 손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되었기에 교장선생님의 입장에선 휘하의 선생님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큰 딜레마였고, 마침 금연이 전국적인 캠페인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때라 수시로 선생님들에게 금연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침 10시쯤이나 되었을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한참 수업 중인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흰색 바탕에 유달리  적십자 마크가 선명한 봉고차 한 대가 경광등(警光燈)을 켠 채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더니 학교 현관에 우뚝 멈춰 선 것입니다. 문이 열리더니 운전석에서 흰 가운을 입은 운전수가 내리고 조수석에서도 마찬가지로 흰 가운에 널스 캡을 쓴 여자가 두툼한 봉투를 들고 뒤따라 내렸습니다.


이들이 대뜸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행정실이었습니다. 다짜고짜 행정실장에게 다가가서는 윽박지르듯 묻는 것이었습니다.


"준비가 다 되어 있지요?"


낯 선 사람이 느닷없이 하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행정실장이 되물었습니다.


"무슨 준비요?"


"아니, 공문 못 받았어요?"


"공문요? 무슨 공문 말인가요?"


"어허! 이런 답답할 데가!"


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이 나오시고, 그 남자는 자신이 학교로 방문한 목적을 교장선생님에게 이르는데, 다름 아닌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금연 교육과 홍보였습니다. 교장실에서 두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을 동안에, 수업 중이던 모든 선생님들이 호출되어 교무실로 허겁지겁 모이고, 스크린과 그들이 준비해온 영사시설이 이내 교무실 한쪽에 설치되었습니다.


그 남자가 행정실장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다 모였습니까? 빠진 선생님은 없어요?"


여전히 고압적인 말투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재촉하듯 행정실장을 바라보자, 행정실장은 얼른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며 대답했습니다.


"형산강으로 학생들 데리고 조정(漕艇) 훈련 나간 체육 선생님만 빠졌는데요."


"얼른 오라 하세요. 체육 선생님도 담배 필 거 아니에요!"


한바탕의 소란이 가라앉자, 그 사람은 자막에 띄운 여러 가지 직책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나서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금연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영사기가 돌아가고 스크린에는 흡연의 해악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간암에 걸린 흡연자의 절개된 폐와 간을 보여주는데, 폐윤활유 같은 진득진득한 니코틴이 겹겹이 눌어붙어 있는 장기(器) 보니 조금 전 아침 먹은 것이 역겨워질 만큼 비위가 상했습니다. 뒤를 이어 폐암이나 간암 환자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비치고, 그들이 금연을 제각각 호소하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화면 속 폐암 환자가 고통스러운 기침을 쏟아낼 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현재 목 상태를 가늠해 보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나도 가슴 한 곳이 불편하게 뻐근해지면서, 담배를 피운 이후 처음으로 금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습니다.


영사기가 꺼지자 교무실에 불이 다시 켜지고 커튼이 젖혀졌습니다.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교무실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다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근엄해졌습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경북 동부가 특히 흡연이 심한 지역이어서 금연교육을 하는데 고충이 크고, 담당해야 할 지역도 넓어 타 시도에 비할 바가 아니란 겁니다. 다시 한번 금연의 필요성에 대해 요약을 하면서, 여러 가지 금연 방법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손쉽게 금연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연단 옆에 쌓아 둔 금연 캔디를 가리키며, 이를 통한 성공 사례를 금연 성공자의 녹취(錄取)를 직접 들려주는 것으로 모든 교육이 끝났습니다.


뒤에 서 있던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 한 통에 얼마 합니까?"


여전히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교무실 좌우로 모든 선생님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오천 원입니다. 사실, 이 힘든 금연 교육의 재원을 금연 캔디충당을 하는데, 선생님들의 많은 협조와 지원을 바라겠습니다."


"전 두통 주세요. 여기 만원이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처음으로 선생님이 주문을 넣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선생님도 안팎의 두 어른 드린다고 네 통씩이나 구입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담배를 끊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내내 버티고 있다가, 근래 하루에 피는 담배 개비 수가 부쩍 늘었음을 깨닫고는 오천 원 버린 셈 치고 한통을 샀습니다.


올 때처럼 다시 경광등을 켜고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그들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다음 시간 시작종이 울리기를 기다리면서, 소란스러웠던 교무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누군가가 불쑥 한마디 던졌습니다.


"저 사람들 적십자에서 나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던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고? 혹시 약쟁이 아이가?"


"아까 본 그거 KBS에선가 어디선가 작년에 본 것 같던데, 아닌가?"


이런저런 의심스러운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할 때 수업 시작종이 울렸습니다. 평소처럼 교실로 가는 길에 담배를 입에 무는 대신에, 캔디를 한 알 꺼내서 입에 털어 넣는 선생님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때 내 뒤를 따르던 선생님 한 분이 불쑥 내게 말했습니다.


"박 선생, 담배 한 개비 나에게 줘. 그러면 내가 캔디 두 개를 줄게."


사실, 당장 이를 되물리고 싶은 심정은 나뿐이 아니었는가 봅니다. 이날부터 금연 캔디는 선생님들 책상을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애물단지가 되었고,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이 비단 우리 학교 일만이 아니었음이 알려졌을 땐 그나마 서랍 속에 남아 뒹굴던 캔디들도 모조리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 선생님들은 그놈의 '공문'에 그렇게 약했던 것일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흡연의 폐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교장선생님의 금연에 대한 각별한 관리 덕택에 흡연하는 선생님의 숫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까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시작한 흡연이 20년 가까운 세월 이어지다가, 이후 다른 우연한 계기로  담배를 끊은 것은 인생의 중반부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로 지금까지 자랑하고 싶은 일입니다.


'금연 결심의 종'을 지나치며 머릿속에 든 생각은, 무턱대고 종을 울릴 만큼 금연의 다짐이 가볍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연을 결심하는 종을 울림으로써, 당장 금연을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추후에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자정(自淨)의 울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금연 결심의 종' 앞에 섭니다. 어린아이 하나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가녀린 손으로 종을 울립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모이를 쫒던 비둘기가 제풀에 놀라 날아오르고, 조금 전 건물 뒤에서 몰래 숨어 담배 피우던 여자 아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종 뒤를 지나갑니다.


'금연 결심의 종'은 그새 울음을 멈추고, 다시 주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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