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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25. 2022

아버지가 꿈을 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 아이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오물오물 입맛까지 다셔가며 숨을 고르, 잠시 쉬었다가 길게 하품을 한다.  꿈, 언제쯤이면 깨어날까?


스페이스 워크가 환호공원의 핫스팟으로 리를 잡으면서, 주말이면 공원 주차장이 외지 차량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보강 공사를 마무리한 해안도로에도 임시 주차로가 그어지고, 자원봉사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교통정리를 하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오늘은 평일인데도 공원 안 주차장에는 이미 관광버스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다. 10시가 가까워지자 막 버스 한 대가 주차장안으로 진입하는데 '경남'으로 시작이 되는 번호판이다. 버스 문이 열리하나, 둘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부산스럽게 오가는 말이, 아니나 다를까 억양 강한 부산 사투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이나 울산처럼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포항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젠 이들, 남쪽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나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주차장 가까운 곳에서 에어건으로 등산화의 먼지를 고 있는데,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노부부가 있다. 조금 전 도착한 관광버스 바로 옆에 주차를 한 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인데, 얼핏 봐여든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앞장선 할아버지는 카메라 가방을 걸쳐 메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걸이로 미루어 관절이나 허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불편해 보인다.


얼핏 각나는 바가 있어,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과 이분들이 서로 뒤섞이기 전에 그 사이를 먼저 끼어들었다.


"스페이스 워크를 찾아오신 거지예? 계단 오르기가 불편해 보이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몇 달 전 등산로에서 내려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을 헤매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노모를 모시고 온 여자분과 어린 딸까지 3대가 일행이었는데, 공원 안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을 잘못 읽고 등산로의 가파른 오솔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샛길로 내려와 계단이 없는 미술관 옆 경사로로 이들을 안내해 주고 나서 이정표를 확인해보니, 여러 군데로 난 둘레길을 자세한 설명도 없이 진행 방향만 화살표로 표시하고 있었다.


 일이 있고나서부터, 공원을  산책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길을 잘못 들어선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오지랖이 발동하곤 했다. 어떨 땐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포항을 어설프게 자랑질할 때도 있는데, 늘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삶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계단을 보고 올라갈 엄두를 못 내던 차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때맞춰 나타났으니 고마운 마음이 앞서 두 분은 어쩔 줄 몰라했다. 서울에서 이른 새벽길을 나서 네댓 시간을 달려왔다는데, 이만한 연세로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잠시 길을 안내받고 나서 혹시라도 폐가 될까 봐 더 이상의 길 안내를 한사코 마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 건네는 말 한마디마다 교양이 넘치고 도무지 얼굴에는 그늘진 구석이 없다. 이들이 타고 온 차가 고가의 외제차여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입고 있는 유명 브랜드의 옷차림에서 엿보이는 그 어떤 부귀스러움 탓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기품, 그만한 나이테가 앞으로 내 몸에도 둘리게 될 때, 내가 굳이 아우성치지 않더라도 남들 눈에  비치길 바라마지 않는 그 워너비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계실 때,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지난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1년여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코로나는 그 시간마저도 내게서 거두어갔다.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다 한들 광명의 요양병원으로 과연 몇 번이나 발걸음을 할 수 있었겠나 마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그만한 수고마저 덜어주시려는 듯 마지막 가시는 걸음도 자식의 출입을 용납치 않으셨다.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병원에서의 면회가 이루어졌을 때도, 아버지는 꿈을 꾸고 있는 듯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뇌간이 막혀 생물학적인 자율신경이 모두 끊어져 의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도, 아버지는 삽관된 기도를 통해 내쉬는 고른 호흡과 입가에 짓잔잔한 웃음으로 자식들의 헛헛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버지의 평생 삶이 그러했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어도, 부족함 없이 우리들이 자랄 수 있도록 늘 자식들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다. 스스로를 치장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궁벽해 보이지 않았고, 찌푸린 얼굴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누구에게나 정 많고 속 깊은 어른이었다. 자식들 삶에 깊이 관여하진 않았지만, 바른 행동으로 스스로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분이기도 했다.


아버지 꿈을 꾼다. 아침에 본 두 어르신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아버지 얼굴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꿈속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아이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에서, 오물오물 입맛 다시는 모습을 보시더니, 아직은 그 불꽃 꺼지지 않은 귓불에 대고 어머니는 나지막이 한마디 하신다.


"무얼 그리 맛있게 자시고 있수? 이리 눕지 않았을 때 원도 한도 없이 실컷 드시게 해 드릴 걸."


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숨을 한차례 고르곤, 아버지는 길게 하품을 한다. 아버진 꿈에서 언제쯤이면 깨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젠 내게도 마지막으로 묻는다.


'과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나인가, 아버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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