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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20. 2022

그녀를 떠올리다

She always reminds me of my dead sister.

오늘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들을 글로 써보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때맞춰 며칠 전부터 제목으로 생각해 둔 영어 문장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She always reminds me of my dead sister.


영어로 문장을 쓰고 니 제목으로 삼기에는 길이가 너무 길다. 글을 읽는 입장에서 볼 때도, 전개될 글의 내용에 대한 함축성이 떨어지면서 제목으로서의 멋이라곤 1도 없다. 그래서, 문장 속 주어와 동사만 따로 떼내어서, 우리말 제목으로 삼기로 했다.


위에서 말한 영어 문장은 동사의 종류와 문장의 형식에 대해 설명할 때 흔히 들던 예문 가운데 하나이다. 말하자며, '문장 속 동사 remind는 목적어인 me를 수반하므로 타동사이고, 문장의 구성은 주어와 동사, 그리고 목적어로 되어 있는 3 형식 문형이다'라고 설명을 한다. 때에 따라서는, 문장 속 빈도부사 always의 올바른 위치는 문장에서 보듯 일반동사의 앞이고, 동사 remind와 전치사 of의 관용적인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부연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길 때는 '그녀는 나로 하여금 늘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처럼 문장 속 단어의 어순 만을 고집해서 우리말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문장과 같은 의미를 가진 또 다른 문장을 염두에 두고, '그녀를 볼 때마다 죽은 누이 생각이 난다.'와 같이 해석할 줄 아는 융통성이 있어야, 'Whenever I see her, I think of my dead sister.'나 I never see her but I think of my dead sister.' 같은 동일한 의미의 다른 문장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문장을 수업 중에 예문으로 들다 보면 한편으론 늘 께름칙해지는 것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칠판에 필기를 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문장 속으로 감정이 이입(移入)하기 시작한 것인데, 설명을 모두 마치고 나면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여동생들에게 괜스레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비록 수업 중의 불가피한 설명이라고는 하나, 차마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입에다 있었으니까.


그래서인, 한 번 씩 가다가는 주어인 She를 He로 바꾸고, 이어진 문장 속 sister를 문맥맞도록 friend나 teacher 등으로 바꿔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문장 속으로 감정이 이입된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설명이 끝나고 나면 친구나 선생님에게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매 한 가지였다.


오늘 글을 쓰면서, 어떻게 보면 교단을 떠난 후 처음으로,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여러 예문들 가운데 하나를 꺼내 가슴속 깊이 묻어 둔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는 여동생이 셋이지만, 안타깝게도 큰 여동생을 그만 병으로 잃고 말았다. 동생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야 하므로, 몇 년 전 써 둔 글이 있어, 그 글로 지금의 감정을 대신한다.


 선운사(禪雲寺) - 지난 이야기 


아는 분이 동백을 보러 선운사에 들렀다며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소식을 올렸네요. 나중에 마음속에 쌓인 슬픔이 진정되고 나면 글이라도 써볼미뤄놓은 일이었는데, 우선 마음 이끄는 대로 몇 자 적어 봅니다.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평소 동생이 좋아했던 대게 몇 마리와, (患) 중의 사람들 몸에 특히 좋다는 튼실한 문어 한 마리를 삶아 동생이 살고 있는 창원 들렀지요.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동생의 혀에는 온통 백태(白苔)가 꼈더라고요. 모래 씹 듯 입맛이 꺼끌 할 게 분명하건만, 오빠가 생전 처음으로 발라주는 대게 살인지라 입맛이 돌아왔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리저리 다른 찬(饌)을 젓가락질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먹어보려고 애를 씁디다.


평소와 다른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매제가, 몸이 나아져 종아리 살이라도 좀 붙으면 애들과 어릴 적 함께 나들이했던 남도 여행을 손잡고 다녀오자고 하데요.


그러자, 내 동생, 잿빛으로 흐려있던 두 눈에 생기가 돌더니, "그래요, 여보! 선운사에 애들 데리고 간 적이 있었지, 그지?"라며 한마디 거들더니, 느닷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송창식의 '선운사'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얼굴로는 웃으며 동생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론 가본 적조차 없는 그 선운사로 어찌나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지! 송창식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오버랩되면서 한참 동안이나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합디다. 결국, 이 노래는 난생처음으로 그 아이에게서 들은 노래이자 마지막 노래가 되고 말았지요.


선운사 가는 길로 예의 푸른 청보리가 피어, 저리도 청명(淸明)한 하늘과 아스라이 맞닿아 있네요. 그래요! 내 동생 미정이의 싱그런 미소가, 사실은 저토록 푸르디 푸른 청보리 빛이었다오.


큰 여동생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유명을 달리했다. 대체공휴일을 포함해 4일장으로 치르고 나서 맞은 첫 수업시간의 독해 지문 속에는, 글자 한자 어긋나지 않고 'She always reminds me of my dead sister.'가 포함되어 있었다. 해석을 하려고 책을 펼치는데 눈앞이 뿌예지면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문 속 문장과 가까워지면서 내용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서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추석 이전 수업에서 빠진 이유를 훤히 알고 있는 아이들의 빠른 눈치마저 피할 길은 없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지면서 울먹이있네. 두고 보자, 얘들아. 제발 조용히 해보란 말이야.' 눈앞의 아이들이 작당한 것처럼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란스럽던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문장을 한 줄 한 줄 애써 읽으려 해도 한번 잠긴 목은 좀처럼 트이려 하질 않는다. 기어이, 칠판 쪽으로 돌아서면서 애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다. 양해를 구하고, 교실을 잠시 벗어나 세면대에서 얼굴을 어푸어푸 씻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답답하던 마음이 풀리면서 일순 속이 후련해졌다. 아이들에게 저간에 있었던 일을 다 말해주고 나서야 아무 일 없었던 듯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단단히 옭매인 인연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러, 뇌졸중으로 일 년 여를  병상에 누워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숨을 거두셨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덮친 그해는 학생들과의 대면 수업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아이들 앞에서 문법을 폭넓고 깊이 있게 다룰 기회는 더 이상 오질 않았다. 하지만, 'He always reminds me of my dead father.'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기회가 지금의 내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아버지를 생각지 않고서는  문장을 설명 재간이 없다. 결국, 목소리는 갈라지면서 물기로 젖어들고 말 것이다.


5월 말로 접어들었으니, 학교에서는  중간고사가 이미 끝이 나고 5월의 여러 학내 행사 마무리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벚꽃이 다 지고 나면 운동장을 둘러싼 벚나무마다 검붉은 버찌가 열매로 맺히곤 했다. 달싹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한 버찌를 몇 알   속에다 넣고 씨를 발라낼 때면 늘 동생 생각이 났다. 이는 평소 동생이 좋아하던 맛이기도 했는데, 형제들 가운데서도 유달리 입 맛이 나와 비슷했던 것이다


Berries of a cherry tree always remind me of my dead sister.


내일은 꼭, 집 앞 공원으로 나가 낮은 가지마다 알알이 맺혀있을 버찌 열매나 듬뿍 따 먹야겠다.




청 보리밭을 밟는 사람들 》


https://youtu.be/e2rc8x0aCpk

선운사 by 송창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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