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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27. 2022

충전

보조배터리

오늘은 기어이 주문을 고 말았다. 스마트 폰을 다른 기종으로 갈아타고 나서 3년 가까이 사용하다 보니, 다른 것은 그러려니 도 배터리가 일찍 닳는  몹시 마음에 거슬렸다. 마침, 최신 하이엔드(high-end) 기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대폭 확대가 되어 몇 달만 높은 요금제를 사용하면 거의 공짜로 기종 변경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해 못 할 약정이 따를 것 같고 지금 사용 중인 휴대폰도 여전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리미엄 폰이기에, 최신 플래그십(flagship) 모델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보조배터리를 구입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 이었다.


아침 산책길에,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사진 몇 장 찍고 배터리 잔량을 확인해보면, 가는 길의 반환점에도 미처 이르지 못했는데 충전율이 50 퍼센트 아래로  떨어져 있다. 더욱이 잔량이 20 퍼센트 아래로 내려간 상태에서 불시에 블랙아웃이 되는 날이면, 건강관리 앱으로 자동 측정되어 누적되는 걸음걸이 수에서 막대한 손해가 다. 사실, 날마다 기록된 총 걸음걸이 수로 그날의 컨디션이나 건강 상태를 체크하 나로서는, 기록되지 않는 몇 천 걸음의 손해야말로 정말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할 때면 생각나는 것이 보조배터리이고, 또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이를 돈 주고 사려면 아까운 마음이 든다. 내게 있어선 usb와 보조배터리가 특히 그러한데, 이미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지만, 학교 홍보물로 대학에서 보내온 usb나 보조배터리가 서랍 속에서 넘쳐날 때도 있었다. 굳이 고 3 담임이 아니더라도 필요에 의해 서로 나눠 쓸 수 있는 것들이기에, 학교 업무를 보거나 입시 자료 등을 관리할 때 행정실에 아쉬운 소리를 않고서도 손쉽게 구해 썼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엔 아침 일찍부터 작정하고 집을 나섰지만, 반나절도 못 지나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서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한 달 전에는 20 퍼센트 아래로 잔량이 떨어지고 난 후 바로 이어 휴대폰이 블랙아웃되는 현상을 겪기도 했는데, 휴대폰에서 50 퍼센트의 잔량만 남아도 마치 내 몸에 충전된 에너지의 절반이 빠져나간 듯 헛헛한 기분이 들곤 했었다. 이날 저녁, 이커머스 쇼핑몰의 검색란에 보조배터리를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했지만, 마음에 드는 보조배터리의 가격을 확인하고 나서그만 마음을 내려놓고 말았다.


코로나 방역의 여러 가지 제약들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그간 미뤄두었던 옥외활동이 지난주부터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주말부터 6월 말까지는 거의 한 달 이상 쉬어가는 주도 없이 야외 활동이 이어지데, 몸이 일단 밖으로 나돌게 되면 우선적으로 걱정되는 것이 휴대폰을 충전하는 일이다. 한나절 찍은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이후 시간을 두고 찬찬히 글을 보충하는 일이 잦은데, 낮에는 매 순간 휴대폰을 켜 두어야 마음에 드는 장면을 제때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배터리 수명 때문에 휴대폰의 최대 시한이 3년에 불과하다는 말 허투루 들리지도 지만, 배터리 잔량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휴대폰을 용하기 위해선 오늘 내로 구입을 해야 다가오는 주말에 보조배터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2만 암페어 용량의 보조배터리 가격이 3만 원을  했지만, 마침 사용 중인 카드의 보너스 포인트가 넉넉히 남아 있어 이것으로 장바구니 속에 미리 넣어 둔 제품의 결제를 마쳤다. 이 모든 과정을 휴대폰 하나로 해결한 것이 스스로 생각해대견했지만, 벌써 몸속으로는 2만 암페어 이상의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는 듯 기운이 넘친다.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생기는 영양분처럼 생물학적인 에너지 말고도 몸에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요즘과 같이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만 가득한 세상에서, 비록 개인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도 행복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안분지족, 이는 퇴직하고 난 후로 줄곧 내가 모토로 삼고 있는 말이 아니던가.


다시 오늘 아침의 일. 배터리 생각으로 머릿속이 지극히 혼란스럽긴 해도, 죽천 바닷가의 육손 바위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사실, 지난밤엔 하는 일도 없이 컴퓨터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그만 새벽잠을 자고 말았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벌써 8시를 지나고 있었다. 몽돌이 잔뜩 깔린 육손 바위 근처에 이르니 죽천 바닷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데트라포트 위에 재미 삼아 쌓아 놓은 돌탑이 보인다. 며칠 사이에 누군가가 허물고 새로 쌓은 , 돌을 머리에 고 있는 데트라포트의 수가 늘어나기도 했는 마침, 참새 두 마리가 비어 있는 데트라포트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이들 돌탑을 쌓아놓은 자리는, 이른 봄 동네 할머니가 파도에 떠밀려온 미역을 줍던 곳이면서 캠핑카를 타고 온 노인이 며칠간 머물며 낚시를 하던 곳이기도 다. 그때는 이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떨어져 사진 찍던지, 아니면 그들이 물가로 나오지 않은 날을 골라 사진을 찍곤 했었다.


오늘은 주위를 오가는 사람이 없어 일부러 데트라포트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려 뒤를 돌아보니, 얼핏 보아도 일흔은 족히 넘을 듯한 노인이 스노클링 차림으로 가까운 바다를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양산을 펼쳐 든 부인이 길가에 서서 근심 어린 얼굴로  뒤를 쫓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려고 노인이 보이는 바다 쪽을 피해 구도를 잡으면서 그림이 될까 싶어 슬쩍 돌탑 뒤 노인 사진도 몇 장 몰래 찍어두었다.  


잠시 길가로 물러서서 생각했다. 데트라포트 위에 돌을 쌓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냥 재미로 쌓았을 수도 있고, 돌 위로 또 다른 돌을 공들여 얹으면서 어떤 소망이나 바람을 곁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공(積功)의 마음이 더해졌을 테니, 이를테면 이것도 일종의 마음속 충전이며 스스로를 리챠지(recharge)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다 저편, 지금은 물속으로 잠수해 뭔가를 쫒거나 찾고 있는 노인도 지금의 일을 노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충전하기 위해 하는 일일 런지 모른다.


돌탑과 노인과 멀리 있는 바다를 한 자리에 모으려고 휴대폰의 카메라 앱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 잔량이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며칠 사이, 새로운 기종 구입을 포기하고 장바구니 속에 미리 담아둔 보조배터리를 휴대폰으로 결제만 하면 되기에 적이 마음이 놓였다. 벌써 2만 암페어의 충전이 이뤄진 것 같아 마음이 이미 넉넉해진 후였다.


글이 마무리되면, 오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물론 이것 역시 나를 리챠지 하는 일로, 지난 며칠 간의 새벽잠으로 쌓인 피로를 덜어 줄 것이다. 어차피 사람 몸이란 기종 변경이 불가하니 적당한 보조배터리를 택해 기존의 배터리 수명을 늘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동이든, 충분한 수면이든, 안빈낙도의 내려놓는 삶이든 제 몸에 맞는 보조배터리를 택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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