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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29. 2022

낮술

낮술은 황홀하다.

황홀함의 끝을 미리 알면서도, 

치명적 유혹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


오늘은 월례회가 있는 날이다. 10년 이상 이어져 온 골프 모임인데, 나로선 교직(敎職)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개인적인 인연끼리 맺어져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소중한 동호인 모임인 것다.


동네 골프 연습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서 우연찮게 한두 번 자리를 함께 가지다 시작된 모임이, 로의 사람 됨됨이에 이끌려 하나의 이름으로 뜻을 모으고 어느덧 세월이 쌓였다. 개중에는 은퇴한 교장선생님과 포항의 산업 일꾼인 포스코맨을 비롯한 관련 산업 종사자들, 교사나 항운 노조원 등 다양한 직군(職群) 사람들이  골프 연습을 하다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인데, 여느 모임이 다 그렇듯이 이런저런 말 못 할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에야 마침내 지금의 붙박이 멤버들로 모임이 성되었다.


골프가 대중화되고, 때맞춰 스크린 골프가 널리 보급되면서 한때는 거의 날마다 모여 게임을 하고,  뒤풀이를 했다. 골프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골프 자체보다는 친목 도모가 우선이기에, 서로 웃어가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크린 골프가 모임의 취지로 볼 때는 더욱 제격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회원들이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앞으로 , 두 해만 더 지나면 다른 건 몰라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 속에 골프를 즐기 되리 서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나이 순서대로 은퇴가 시작된 그 해부터 코로나가 터지고 말았다. 더욱이 포스코를 비롯해서 재취업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아직까지는 나이나 능력으로 보아 일할 여력이 충분하였으므로, 평일날 함께 모여 시간을 가지려던 계획은 일단 유보되었다. 대신, 예전과 마찬가지로 주말이면 어김없이 단골 스크린 골프장에 모여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래 2, 3년간 주말마다 생기는 여러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월례회를 제외한 주말 모임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못해서 다른 회원 분들께 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지난 월례회에서는 사무국장님의 제안으로, 다가오는 주말부터 포항 영일대를 깃점으로 해서 북쪽 해파랑길을 일주하여정(旅程)이 마련되었다. 목표 지점까지 한나절을 걷고 되돌아와서는, 식사 후 스크린 골프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인데,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흔쾌히 동의를 해 주어 마침내 오늘부'해파랑길 걸어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은, 1박 2일의 일정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문경새재를 걷기로 한 약속과 겹쳤지만, 첫날의 해파랑길 걷기 일정을 먼저 제안하고 계획을 했던 입장에서, 부득이 오늘만큼은 회원 분들과 하루를 함께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술 마시지 않게 된다면 오후 늦게라도 문경으로 출발해서 동생들과 합류할 생각이었다.


전날, 출발지로 정해놓은 일대 누각에 이르니, 전국 소년체전 3종 철인경기가 마침 시작되고 있었다. 시도를 대표한 학생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영 종목부터 시작하는데, 바로 눈앞의 반환점을 돌아 헤엄쳐 나오는데도 선수들 사이의 격차가 상당했다. 선수 개인별로 미리 준비해 둔 사이클을 타고 선두가 출발하고 나서, 그 한참 뒤에 마지막 선수가 물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우리 일행 역시 해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오늘 자리를 함께 한 사람열한 명의 회원 가운데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다.


생수와 막걸리를 사서 두 개의 배낭에 나눠 넣고, 여남 끝의 스카이 워크를 돌아본 뒤 바로 앞 능선을 넘어 산판길을 우회해 다시 바닷가로 돌아 나오는 길을 택했다. 산판길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어가는데, 막상 막걸리를 따른 잔을 눈앞으로 맞으니 찰나 지간의 번민마저 마음속에서 싹 달아나 버렸다. 혹시라도 음주운전의 유혹에 빠질지도 몰라, 내친김에 연거푸 넉 잔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문경행을 마음속에서 깡그리 지울 수 있었다.


낮술은 치명적이다.

낮술은 작정하고 마시는 술이기에, 

취하고 나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황홀하기만 하.


옛날, 놀토가 아니던 시절의 토요일은 낮술을 즐기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날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서, 선생님들과 함께 걸어서 퇴근을 하다 보면 학교 앞 주점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몹시 힘이 들었다. 결국, 한두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좀 더 늦은 퇴근을 하는 선생님들이 누구라도 있을까 궁금하여 안팎을 기웃거리곤 했다. 결국 술자리로 이어지면 저마다 낮술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는데,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모(某) 선생님이 분가(分家)를 하게 된 사연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선대(先代)부터 절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녀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을 했고, 기독교를 참 신앙으로 여기는 초등학교 선생님과 연을 맺는 것이 당시 집안의 공공연한 으뜸가는 결혼 조건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교회 장로님으로 봉직하셨다고 하는데, 특히 건장한 체격에 완력이 대단한 분이셔서 교회 안팎 대소사에 몸을 아끼지 않아 따르는 신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 역시, 어려서부터 보아 온 아버지의 돈독한 믿음과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신하게 생활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몸에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결혼 후에 본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사모님이 합가 해서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에 선뜻 동의를 하셨고, 얼마간 본가에서 함께 생활하며 어른들로부터 신혼살림을 배운 후에 분가하는 것이 당시의 자연스러운 풍토이기도 했었다.


토요일인 그날도 함께 어울려 낮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술잔을 받을 때마다 평상시와는 달리 선생님이 무척 조심하며 술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몇 순 배 더 술잔이 돌고 나자,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마음속 궁금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형님, 요새 많이 약해지셨네요. 신혼이라 형수님에게 꽉 잡히셨나, 주는 술잔을 다 마다 하시는 걸 보니."


이 말에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 힐끗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박 선생, 니는 모리고 있었나? 나 이번에 분가했다. 니, 내가 우째 분가했는지 모리제?"


당연히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선생님은 손에 쥔 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으면서 그야말로 그간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울 아부지가 내가 결혼해서 제일 걱정되는 일이 대낮부터 술 묵고 들어오는 거라. 총각 때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결혼까지 했으니, 동네 사람들도 다 알 것 아니냐. 내가 이전에도 몇 번 낮술 묵고 집에 들어 간 적이 있는데, 아부지가 불러서 한 말씀하시더라.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사람인 거 다 아는데, 남사스러운 꼴 보이지 않도록 낮에 술 먹고 들어 올 때는 조심하라고."


"그래서요?"


선생님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부릅 떠지더니,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 나는 듯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달 전쯤인가, 우리 그날도 같이 낮술 묵었제, 그렇제? 그날따라 소주와 맥주 섞어서 우리 마이 안 묵었나. 집까지 우째 갔는지도 모르고 동네 골목길로 막 들어서는데, 우리 집 앞에 산 만한 사람이 딱 버티고 서 있데. 그래서 내가 빈정이 상해, 니가 뭔데 우리 집 대문을 막고 서 있냐고 한마디 안했뿟나!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다짜고짜 달려들더니 내 뺨을 후려갈기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들어 쳐다보이 바로 우리 아부지 아이드나. 그래서 그날로 바로 집 알아보고, 분가해뿌맀다."


정말이지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나 역시도 낮술을 마실 때는 맛있다고 이 잔 저 잔 겁 없이 받아 마시다 필름이 끊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밤 중에 갈증을 느껴 깨어나 보니, 하숙집 내 방이 맞기는 하는데, 술을 마시고 일행과 헤어져서 지금까지의 일이 마치 먹물로 지워진 듯 까맣게 블랙아웃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낮술이 일찍 끝나 오랜만에 대구 본가나 갈 요량으로 학교 앞 간이 버스 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술을 마셨으니, 미안스러운 마음에 비어있는 중간 자리를 마다하고 맨 뒷자리에 앉아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옆자리에서 인기척이 들려 눈을 떠보니, 경유지인 경주에서 스님 두 분이 버스에 올라 나란히 비어 있는 두 자리를 찾아 맨 뒷좌석까지 온 것이었다. 스님과 함께 옆자리에 앉아 가는 경우는 난생처음이었기에, 그만 술김에 오지랖이 발동되고 말았다.


당시는, 조계종 종정이던 성철스님이 뭇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 큰 스님의 신년 법어나 어수선한 시국이 염려되어서 한 말이 언론에 보도가 되면, 이는 곧장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성철스님에 더해서, 스님이 출가 전 인연으로 낳은 딸인 불필스님과 장좌불와(長座不臥)의 수행법에 대해 아는 척한 것도 모자라, 언론에 보도된 일부 스님들의 탈선 행각에 대해 술냄새 풀풀 풍기며 성토까지 해댔으니, 대구까지 가는 길이 이 두 스님에게는 무척 고행길이었으리라.


결국은 그들 중 한 스님이 내리면서 벌컥 화를 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뺨 맞고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나 역시 낮술로 풀린 정신의 고삐가 바짝 조이는 것이었다. 며칠을 두고 얼굴이 불에 덴 듯 화끈거리면서 두 분 스님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혹시라도 만날 수나 있을까 싶어, 토요일 대구로 갈 때는 일부러 경주를 경유하는 버스를 타곤 했었다.


역시 기대했던 그대로, 점심으로 물회를 먹으면서 반주로 곁들인 소주 맛은 참으로 이슬처럼 감미롭다. 게다가 낮술이다. 사실, 최근에는 블랙아웃 될 정도로 술을 마시지도 않지만 마실 일이 드물기도 했다.


내게 있어 낮술은

여전히 황홀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나를 붙들고 있다 .

속 쓰려 잠 못 드는 밤은

더욱 깊어만 가고

낮술의 여운, 아직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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