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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04. 2022

막다른 골목길, 그녀

내가 어릴 적 살던 골목길은 작은 차도 들어갈 수 없는, 그야말로 양팔을 벌리면 닿을 만큼의 폭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길입니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전봇대가 오롯이 서 있고, 밤이 되면 전봇대 아래만 흐릿한 불빛는, 그래서 혼자 걷기가 가끔씩 겁이 나는 그런 길이기도 했습니다.


큰길에서 골목길로 접어드는 길 양쪽 어귀에는 작은 약국과 식당이 자리 잡고 있고,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만화방이 있습니다. 만화방을 끼고 샛길이 하나 나 있지만 그 골목길로는 좀처럼 다니질 않아서, 언제나 처음 와 본 처럼 낯설기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던 길로 왔던 만큼 안으로 더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우리 집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 집 담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 길을 택해서 가든 그 길을 죽 따라가다 보면 골목길 어귀로 다른 도로의 큰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희한한 것은, 이 작은 골목길에 적지 않은 수의 여관이나 여인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근에 공용주차장이 있어, 외지에서 올라와 지낼 곳이 마땅찮았던 버스 운전사와 차장, 조수나 정비사가 숙소로 이용했던 곳으로 짐작되는데, 아침 등굣길에 이들과 나란히 골목길을 함께 나섰던 일이 기억납니다.


'삼호 여관'은 막다른 골목길의 어귀에 자리를 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뒤편, 오른쪽 갈래길로 이어진 담을 따라 서너 집을 더 가면 좁은 골목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3층 여관이 나오고, 그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100미터쯤 더 들어가면 바로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길이 더 좁아진 그 골목길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담벼락 아래로 장미꽃 화단이 줄지어 예쁘게 꾸며져 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사촌 형이 게 접은 손 편지를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두 살 위인 형이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일 니다. 여관 길, 막다른 골목 안쪽에  있는 여학생에게 편지를 주고 오라는 것인데, 여학생의 동생이 바로 내 친구였던 것입니다. 살고 있는 골목이 달라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누나가 없는 나로서는 사실 그 녀석이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누나는 누가 뭐라 하든 골목 안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날 부러워했나 봅니다. 우리 집과 같은 담을 쓰는 바로 뒷집, 고모님 댁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사촌과, 그위로 또 연년생인 사촌 형 둘이 더 있었는데, 손에다 편지를 쥐어준 형은 바로 큰형이었습니다. 사촌 형제들끼리 어울려 골목길에서  놀고 있으면 내 친구는 전봇대 뒤편에우두커 서서 이를 지켜보다 슬며시 사라지곤 습니다. 한 번은, 형이 없을 때 친구를 불러 함께 논 적이 있었는데,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형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크게 우릴 나무라면서 한 번만 더 친구를 끼워 놀면 같이 혼을 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머쓱해한 적도 있습니다.


형이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우리와 함께 어울려 노는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관을 낀 막다른 골목 안에서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을 보고도 아무 없이 지나칠 때가 많았고, 특히 친구네 집 앞으로는 웬일인지 얼씬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그 골목은 막다른 길이었으니 달리 이유 없이 오고 갈 리가 만무였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올 쯤이, 어느새 집으로 돌아와 갈아입었는지는 몰라도 몸에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골목길을 이리저리 뜀박질해대고 있었는데, 구슬 따먹기나 딱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 우리 옆을 지나칠 때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띠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은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형이 아침부터 나를 찾더니 친구 집으로 얼른 놀러 가라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안 그래도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친구 집에 가면 예쁜 누나를 맘껏 볼 수 있었기에, 점심때가 되기까지를 기다리다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랴부랴 서둘고 있는 등 뒤로, 놀러 가거든 우선 누나가 뭘 하고 있는지부터 자세히 알아봐 달라는 것인데, 사실 그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누나가 집 밖으로 나갈 기미라도 있으면 몰래 뒤꽁무니나 쫒으려고 하는 짓임을 내가 모르고 있었는 줄 알았나 봅니다. 바보 같은 자식! 벌써 동네방네 소문나 있는 걸, 그걸 모르는 건 도대체가 자기 자신뿐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을 망설이다 말고, 결국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 들어, 애지중지하는 구슬이나 두툼하게 모서리 지게 잘 접은 딱지를 제 동생들도 아닌 내게 물려줄 때는 이상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지만 다 꿍꿍이 속이 있었던 니다. 어찌 되었건, 뭔가 모를 소중한 것을 도둑맞고 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당장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구슬과 딱지의 유혹은 당시의 어린 나로선 뿌리치기 힘든 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평소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거침없이 드나들던 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날은 문밖에 이르자 말자 손에 쥔 편지 생각이 났고, 오늘만큼은 친구의 눈길을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괜히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누나의  방은 마당 오른쪽의 마루로 이어진 작은 방이었는데, 마침 살짝 문틈이 열려 있었고, 인기척을 내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냅다 편지를 방문 틈으로 던져놓고 문밖으로 뛰쳐나올 때는 정말이지  정신은 하나도 없이 가슴만 산 만하게 부풀어 올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막상 편지를 전해주긴 했어도, 사실은 믿는 구석은 있었습니다. 한 때 형이 내 친구를 미워한 것처럼, 누나도 형을 정말 미워했습니다, 사실 형이 작은 키에 비해 또래보다 몸이 굵어 싸움은 곧잘 했지만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에서 부반장을 도맡아 했던 누나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우리끼리 놀고 있는 마을 놀이터의 한쪽 모퉁이에서 동네 여자아이들이 모여 고무줄놀이나 공깃돌 놀이라도 할라치면 그걸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고 훼방 놓던 것도 사실은 형이 주동한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쪼르르 달려와 팔짱을 끼고 형에게 조목조목 앙팡지게 따지며 대들던 누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형은 그저 눈만 꿈벅거리며 그 자리에선 암말 못하고 듣고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제사 누나에게 화풀이하듯 친구와 절대 놀지 말라고 우리에게 우격다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바로 여자의 마음인가요. 어느 날인가, 만화방에서 빌린 만화를 서로 돌려보려고 밤늦은 시간에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껌껌한 막다른 골목 전신주 아래 구석진 곳에는 마치 숨바꼭질하듯 어둠 속으로 얼굴만 감추고 서 있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서 있긴 했지만 멀리서 얼핏 보아도 낯익은 모습들인데, 몸에 착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은 머슴애와 검은색 주름치마를 입은 계집애였습니다. 인기척을 내지 않고 몰래 지켜보고 있자니, 확 부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그 자리에 없는 내 친구에게도 짜증이 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누나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바보 같은 놈! 그 순간, 화가 나서 싫어지기는 친구 누나도 매한가지였습니다. 키도 작달막하고 공부도 못하는 놈이 뭐가 그리 좋다고! 괜스레 속이 상하더니, 그 자리를 되돌아 나오는 순간엔 눈물마저 핑 돌았습니다.


그해 가을이 다 지날 때까지도 친구와는 서먹한 사이로 지냈습니다. 더 이상 편지를 몰래 전할 일이 없게 되었으니 형이 일부러라도 나를 찾을 리 없었고, 우리들끼리 어울려 노는 일에는 진작부터 시큰둥해져 있었습니다. 간혹 골목길을 오가다 누나와 마주치게 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멀리서부터 모른  고개를 숙이던지 해서 속 마음과는 달리 딴청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습니다. 12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눈 내리는 일이 유달리 잦아졌는데,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무릎 깊이로 발이 쑥쑥 빠질 만큼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골목길에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골목길의 갈림길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제법 큰 눈사람이 동그마놓여 있었습니다. 여관 길, 골목 어귀에서 기다렸다는 듯 친구가 쌓인 눈 위를 한발 두발 어기적거리며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툴툴거리는 말투지만 오랜만에 아는 척을 하며 먼저 말을 건넸지만 녀석의 표정이 별반 밝아지질 않았습니다. 친구의 어깨너머론 골목길을 나서다 말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빤히 나를 바라보며 멈춰 선 누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 집 울산으로 이사간데이. 아부지가 현대조선으로 직장을 옮기셨다 카네. 누나도 이제 3학년 올라가고, 나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아이가. 여름방학 때 벌써 갔어야 했는데, 누나와 내가 끝까지 싫다 안 캤나. 아부진 여학생이 여관이 있는 골목길로 드나드는 게 몇 년 전부터 디기 싫었다 카네. 나와 누나도 싫었던 건 마찬가지고. 니가 너거 사촌들하고 놀 때 나 끼워줄라꼬 애쓴 거 다 안데이. 싫지만 누나가 네 사촌 형 만나 준 것도 그 때문이고. 사실은 누나가 니가 공부도 잘하고 귀엽게 생겨, 저번에 니가 몰래 편지 던져 놓고 간 걸 알았을 땐 어이가 없긴 해도 니가 쓴 편진 줄 알고 좋았다 카더라. 나도 니가 어느 날부턴가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누나 방 기웃거리는 걸보고 어느 정도 눈치는 챘지만, 설마 우리 누나가 너거 사촌 형 좋아한다고까지 니가 오해할 줄은 몰랐다 아이가."


하긴, 그날 골목길 전봇대 아래서 두 사람 만나는 걸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으니 친구나 누나나 생각이 거기까진 미치지 못했을 겁다. 속속들이 속내를 다 들키고 나니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누나가 이를 보고 박속같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데, 눈이 환히 부신 건 밝게 내리비치는 햇살 때문인지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어서인지 어질어질해진 마음으론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결국 친구는 이사를 가고야 말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른 아침부터 사촌 형이 밖으로 나와 이삿짐 실은 손수레를 밀어주곤 있었지만, 이를 팔짱 낀 채 바라보고 있는 누나의 눈길은 매서운 겨울 날씨처럼 여전히 차가워 보였습니다. 나는 그런 누나의 눈을 감히 마주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한 번씩 곁눈질하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 누나가 살포시 웃어 주는 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몇 해 전 여름철에 해수욕하러 간 방어진이란 곳울산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오는 여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울산을 찾겠노라고 머릿속 계산을 미리 해두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당시 내 마음속으로는 친구 누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절실한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로 가니, 내 손에 통지표를 한 장을 쥐어주는 겁니다. 말하자면, 6학년 때 친구의 담임선생님은 3학년 때 나와 친구의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던 것인데, 당시 가정방문을 했을 때 나와 친구가 서로 이웃에 살고 있는 걸 기억해냈것입니다. 전학 간 학교서 졸업을 하게 되니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나, 친구의 6학년 통지표를 마무리했는데도 이를 전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혹시라도 친구가 대구에 왔다가 나를 찾으그때 전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끊어졌던 인연이 통지표로 인해 다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오히려 감사마음으로  이를 받아두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친구의 통지표는 나와 동생들 통지표 틈에 섞여 어디로 이사를 가든 서랍 속에 소중하게 보관이 되어 었습니다. 한 번씩, 친구의 통지표가 생각나 이를 꺼내때마다 친구 얼굴보다는 누나의 얼굴이 더 아련하게 떠오르곤 했지만, 간혹 사촌들끼리 어울려 지난 이야기를 할 때는 뭣도 모르는 사촌 형이 누나의 이름을 들먹이며 첫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자랑삼아 떠들어 대했습니다. 누나가 먼저 자신을 죽자고 따라다녔다 이야기할 때는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지만, 전후 사정을 알리 없는 형은 오히려 한껏 이야기를 부풀리며 입에 거품을 물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본가에서 서랍을 정리하다가 문득 친구의 통지표 생각이 났습니다. 여동생들이 시집을 가며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챙겨 갔으므로, 과연 본가에 남은 것은 지난날 나의 기록뿐이었습니다. 친구의 통지표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는데, 아마도 어머니가 이사를 앞두고 서랍 정리를 하다가 낯선 이름의 통지표를 보고는 아무런 생각 없이 버렸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젠 친구의 얼굴도, 누나의 예쁜 미소도 전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여관을 끼고 안으로 돌아들어가는 막다른 골목길, 그 길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던 그녀와의 아련한 추억이 여전히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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